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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Oct 16. 2023

나는 죽었지만, 다시 산다 #4

첫 미션 회고와 새로운 선택지

 회사에 출근해서 제대로 된 회사 일은 하지 않았지만 일을 할 때보다 피로도는 훨씬 더 높았다.


 그도 그럴 것이 여자로 살다가 갑자기 남자가 되었고 내 몸이 아닌 다른 사람의 몸, 

내가 다니던 상사의 몸으로 살게 되었으며 하루라는 사람이 임관홍으로 사람들과 함께 하고 

대화해야 했고 그 대화 속에서 내가 죽게 된 사건의 진실을 발견하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시켜야 했다. 


 그 가운데서 이 회사 사람들의 본모습을 하나둘씩 발견하기 시작했고 

내가 믿었던 동료들조차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나를 그 위험 속으로 밀어 넣었다는 사실에 충격도 적잖치 않게 받았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벌써 퇴근 시간이 다가왔다. 


 어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 쉬고 싶은 생각뿐이었고 퇴근 준비를 서둘렀다. 퇴근하기 위해서 사무실 문을 향해 걸어가는데 부장님과 마주쳤다. 


 “관홍아 퇴근하는 거야? 오늘은 일찍 가네.” 


 이 회사는 나이 든 사람들과 꼰대 문화가 가득한 곳이라 정시 퇴근이라는 개념이 없었고 

정시 퇴근 하는 사람은 마치 퇴근시간이 아닌데도 먼저 퇴근하는 사람이라는 듯이 생각했다.


 “아.. 네 오늘은 몸이 좀 안 좋아서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어, 아니야. 퇴근 시간이니까 집에 가야지. 가서 푹 쉬어라.” 

“넵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 드디어 이 지옥 같은 회사에서 벗어나서 바깥으로 나가는구나 하면서 살짝 좋아진 기분으로 정문을 향해 가려는데 다시 한번 오 부장이 나를 불러 세웠다. 


 “관홍아, 나도 밖에서 커피 한 잔 하려는데 같이 나가자.” 


 ‘퇴근 시간까지도 그냥 보내주지를 않는군.’ 


 “네. 그럼 제가 커피 타서 오겠습니다.”


  커피 두 잔을 들고 오 부장과 함께 회사 정문으로 걸어 나갔다. 


 침묵 속에서 걷는 도중에 오 부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관홍아 아까 보니까 정대리랑 최주임, 채주임이랑 회의실에서 이야기하는 것 같던데 무슨 일 있었니?” 


 오 부장 자리에 씨씨티비 화면이 항상 띄워져 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이렇게까지 감시하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아 보셨어요? 부장님이 회의실에서 나가시고 나서도 다들 안 나오시길래 무슨 일 있나 싶어서 슬쩍 봤는데 분위기가 너무 심각해 보이길래 여쭤봤어요.” 

“어. 그거, 하루 자리가 비어있어서 다른 공정에 차질 생기면 안 되니까 그 얘기한 거야. 다들 뭐라든?”


 “별말씀은 없으셨고 부장님이 업무적으로 하루 씨 빈자리 어떻게 할지 이야기하셨다고 들었어요. 근데 아무래도 일도 있었고 레일이 고장 나서 또 문제 생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으신 것 같더라고요.” 


 원래 임관홍이었다면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오 부장에게 고자질을 했겠지만 

말을 전해서 굳이 좋을 것은 없어 보였다. 


 누군가를 적으로 둔다는 것은 나에게 불리한 조건이 될 테니까. 대신 임관홍이 하던 대로 어느 정도는 보여야 하기 때문에 중요한 내용들은 빼고 몇 가지만 전달했다. 


 “역시 그렇지? 근데 뭐 나로서도 최선의 선택이야. 일단은 한 사람이 맡는 거 보단 돌아가면서 담당하는 걸로 결론 지었어.” 

“지금 상황에서는 그게 제일 베스트긴 하겠네요. 부장님도 진짜 힘드시겠어요. 고생 많으십니다.” 


 [“너라도 그렇게 생각해 주니 다행이다··· 사실 나도 어쩔 수가 없는 입장이야.

 아이들 이제 초등학교 4학년 5학년인데, 월급쟁이 부장이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니..” ]


 부장님의 솔직한 고백에 순간 마음이 약해졌다. 

인간이란 존재는 참으로 이기적이면서도 나약하구나. 약한 모습을 감추기 위해 더더욱 강한척하고, 남들까지 신경 쓰고 챙길 여력이 없기 때문에 알면서도 이기적인 모습이 되어 가는 걸까.


 “저도 더 좋은 방법이 있을지 같이 고민해 보겠습니다.”

 “그래, 고맙다. 이제 집 가서 쉬고 내일 보자.” 

“네 알겠습니다. 부장님도 얼른 집에 들어가셔서 아이들이랑 시간 보내세요.” 


 오 부장과 대화를 끝으로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오늘 하루가 유독 길게 느껴졌다. 새로운 몸에 적응하느라 긴장했고 하루가 아닌 임관홍으로 보이기 위해 고군분투하느라 오전을 보냈고 회사의 여러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그 안에서 나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온갖 감각을 총 동원했고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분노와 슬픔이 더해졌으나 또 한편으로는 공감하기도 했다. 


 나는 흔들리고 요동치는 감정을 잠재우고 이성을 앞세워 첫 번째 미션을 완수할 수 있을까··· 


 “벌써 집 앞에 도착했네.” 


 집에 도착해서도 마음 편히 쉴 수가 없었다. 하루에 한 번뿐인 ‘오늘’과의 만나는 시간에 무엇을 물어보고 이야기해야 할지도 고민해야 했으니까. 


***


 11시 50분. 곧 오늘과 만나는 시간이다. 과연 어떻게 나타나게 될까. 그리고 나에게 주어지는 10분은 어떻게 흘러가게 될까. 시간이 다가올수록 왠지 모르게 긴장이 됐다. 괜히 자세도 바르게 고쳐 앉았다. 


 12시가 되자, 갑자기 눈앞이 흐려지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정신을 잃게 되었다. 

나를 부르는 소리에 눈을 떴다. 


 “정신이 드니? 하루야.” 

“어? 뭐야. 집에서 만나는 거 아니었어?” 


[“나는 영의 공간에서 할 일이 많아. 

아무 때나 육의 공간으로 갈 수가 없다고. 영의 공간으로 처음 넘어오게 된 영혼들 뿐만 아니라 그 영혼이 택한 사람의 영혼, 그리고 너처럼 육의 공간에서 지내고 있는 영혼들과의 미팅까지. 


너는 퇴근이 있을지 몰라도 나는 퇴근이 없어.” ]


“그거 노동력 착취 아니야?” 

“인간이라면 그렇겠지. 우리 같은 영들은 그런 거 없어. 그나저나 이렇게 쓸데없는 이야기로 시간 보내도 괜찮겠어? 우리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계속 흘러가고 있는 걸.” 


“그러네. 오늘 회사에서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꽤 많은 수확이 있었어.”

 “그래? 진실에 대해서 어느 정도나 알아냈니?”


 “일단, 내가 죽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나의 부주의가 아니라 내가 올라탄 전동 레일의 고장 때문이었어. 그런데 회사 사람들 모두가 처음부터 레일이 고장 났다는 사실을 나에게 숨긴 채 업무를 담당하게 했고 그로 인해 결국 나는 죽게 된 거지.”


 “하루 만에 꽤 중요한 것을 알아냈구나. 생각보다 빠른걸?”

 “나를 어떻게 생각했던 거야. 나도 한다면 하는 사람이라고.”


 “그런데 표면상으로 보이는 것만이 진실의 다는 아니야. 그 속에 숨겨진 이면을 알아내야 해. 겉으로 드러나는 이야기 말고 마음 깊은 곳에 감춰둔 비밀을 파헤쳐야 하는 거야.” 

“사실, 내가 정확하게 어떤 걸 알아내야 할지. 그 이면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겠어.” 


“사람들이 너와 대화할 때 전부를 말하는 것 같아도 실상 100%는 아니라는 뜻이야.

 너는 지금까지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 알아낸 거고 그 사람들에게서 100%를 끄집어내야 해.” 


“일단 최대한 노력해 볼게. 그런데 혹시 시간의 제약은 없는 거야?” 


[“육과 영의 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지. 


우리는 육체의 공간에서 육체가 죽은 후 백골화가 되는 기간을 기준으로 최대 기간을 설정했고 그 기간은 2개월이야. 


 2개월 안에 하루 너는 모든 미션을 완수해야지만 성공인거지.” ]


 2개월이라··· 어떻게 보면 긴 것 같기도 하지만 그 기간 안에 나에게 주어진 미션들을 완벽하게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짧은 시간이었다.


 [“근데 이 조건들이 나한테 너무 불리한 조건인 것 같아. 


물론 새로운 삶에 대한 기회가 나에게 주어지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고 쉽게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혼자서 미션을 수행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은 걸.”]


 [“그 부분에 있어서는 또다시 네가 선택을 해야 해. 


2개월 안에 너 스스로 미션을 수행하던지, 영의 공간에 갇혀있는 임관홍의 영에게 도움을 받는 대신 기간을 1/2로 단축시키는 거야. 어떤 걸 선택할래?”]


 “둘 다 별론데 다른 선택지는 없는 거야? 나한테 어떤 능력이 생긴다거나 그런 건 안 되는 건가.” “너 진짜 아직도 현실이 뭔지 모르겠니? 이건 드라마가 아니라니까!”


 “혼자서 해결하기에는 너무 힘들 것 같은데, 임관홍에게 도움을 받고 싶진 않아.

그리고 임관홍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도 알 수 없는데 기간이 단축되는 것도 나한텐 너무 큰 리스크고.” 


[“하나를 얻는 대신 포기하는 것도 있어야지. 


 그렇다면 마지막 선택지를 줄게. 이제 더 이상 다른 선택지는 없어. 네가 원하는 한 사람의 속마음을 볼 수 있는 권한을 줄게. 


 그 권한을 쓰기로 한 그날로부터 한 달 전까지의 속마음을 볼 수 있어.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너에게 달린 거야. 대신 딱 한 번만 사용할 수 있고, 기한은 하루. 그 안에는 무한으로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속마음을 확인하고 싶은 부분을 선택해서 볼 수 있지. 


 기한 안에 너의 능력에 따라 전부 확인해 볼 수도 있고 필요할 것 같은 부분만 확인해 볼 수도 있어. 쉽게 말하자면 일종의 인간 씨씨티비를 돌려보는 이치랄까.”]


 “진작 이걸 알려주지 그랬어~ 마지막으로 선택할게.” 

“역대 인간들 중에 네가 제일 관리하기 힘들다···” 


“티키타카가 잘 되는 게 아닐까?” 


[“그래··· 그렇다고 치자. 

사용법은 사용하고 싶은 날 자정 12시에 날 만났을 때 말하면 돼. 


 그러면 하루동안 그 사람의 속마음을 마음껏 볼 수 있게 되는 거야. 대신 여기서도 명심해야 할 것은 네가 속마음을 보고 있는 하루 동안에도 시간은 계속 흘러간다는 거야. 


 그러니까 언제로 할지 그 하루를 정하는 것도 신중해야 해. 


 하나 좋은 점은 기한이 끝나는 시점까지 그날 당일의 속마음도 모두 확인할 수 있다는 거? 

과거를 집중해서 보느냐, 현재에 초점을 두고 보느냐. 전략적으로 분석해서 선택할 필요성이 있어. 


 약간의 팁을 주자면, 위험 부담이 있긴 하지만 속마음 확인권을 사용하기 전 날에 그 사람을 자극해서 그 뒤부터의 속마음을 집중적으로 볼 수도 있는 거지. 


 하지만 뭐 그다음부터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도 네가 책임져야 하겠지만?”]


 “아니 도대체 선택을 몇 번이나 더 해야 하는 거야. 이러다 선택 장애가 오겠어!”

 “그건 니 사정이고. 이제 시간이 다 됐으니, 더 할 얘기가 있거든 내일 하자.”


 오늘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라고는 하지만 선택해야 될 것들이 너무 많아서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게다가 오늘 뭐 먹지, 뭐 하지? 수준의 선택이 아니라 나의 삶과 죽음이 걸린 중대한 선택을 매번 급하게 해야 했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겠지? 살면서 짧은 시간에 이렇게나 많은 생각과 선택을 한 적이 있었나. 진이 다 빠져버렸다. 오늘은 더 이상 머리를 사용할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내일 출근 걱정을 해야 한다니, 어쩌면 케이 직장인으로 사는 게 더 힘들 수도··· 

모르겠고 일단 잠이나 자자.” ]


 눈을 감자 마자 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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