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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소 Mar 27. 2020

고마운 마음


나이가 든다는 것은

나이가 든다는 것, '늙음'이란 무엇일까요?

『고마운 마음』의 작가 델핀 드 비강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잃어버릴 줄 아는 것이다. (...) 주어졌던 것을, 쟁취했던 것을, 투쟁했던 것을, 영원히 가지리라 생각했던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 144p.

델핀 드 비강,『고마운 마음』, 레모, 2020.


아이와 어른의 만남

『고마운 마음』  미쉬카는 오랜 시간 동안 신문사에서 교정교열 업무를 담당하 단어에 능통했던 사람이지만 점차 나이가 들어가며 실어증을 앓게 되고, 그로 인해 조금씩 단어를 상실해 갑니다. 그러나 그녀의 에는 어린 시절 조울증을 겪는 엄마로부터 방치되어 살아오다 이웃이었던 미쉬카를 만난 후 서로 의지하며 살아온 마리, 그리고 미쉬카의 실어증을 치료하는 요양병원의 언어치료사 제롬이 함께 합니다.


과거 마리가 불의의 사고로 인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그녀의 곁을 지켜온 미쉬카 할머니는 이제 마리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입장이 되었지만 그녀에게 병원에 자주 찾아오지 말라고 얘기합니다. 실어증으로 인해 자신이 평생을 사랑해온 단어가 하나 둘 사라지다 결국 모든 단어를 완전히 잃게 되고, 점점 쇠약해져 가는 몸으로 인해 마리에게 계속 부담을 줄 거라는 생각에 걱정되고, 견디기 힘들어서 그런 거겠죠. 하지만 마리는 어린 시절부터 줄곧 자신의 곁을 지켜준 할머니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결코 저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할머니가 말을 잃고 쇠약해져 가는 모습을 보며 마음 아파하면서도 가능한 한 자주 미쉬카를 만나러 옵니다.


한편 언어치료사 제롬은 미쉬카 할머니가 겪는 실어증의 속도를 최대한 늦춰보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사라지는 단어를 붙잡을 수 없음을 인지한 미쉬카는 제롬의 아버지에 대한 얘기 등 그와 사적인 대화를 이어가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고마운 마음』에서는 마리와 미쉬카, 제롬과 아버지, 2차 대전 당시 유대인이었던 어린 미쉬카와 그녀를 3년이란 시간 동안 아무런 대가 없이 돌봐준 부부 등 아이와 어른의 관계를 많이 다룹니다.


미쉬카 할머니는 자신의 세계에 모든 단어가 사라지고, 죽음을 맞아 영원히 침묵할 수밖에 없는 시간이 오기 전에 그 부부를 찾아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름을 제외하면 알고 있는 정보가 너무 부족해 그들을 찾기 위해서 신문에 광고를 내는 등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했지만 찾을 수 없었는데요. 어서 빨리 미쉬카 할머니가 어린 시절 자신을 돌봐준 부부를 만나 고마운 마음을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읽었던 것 같습니다. 얇은 책이고, 가독성이 좋아빠르게 읽혔지만 사실 책을 다 읽어가는 게 아까워서 조금 더 느릿느릿 보려고 노력했 작품이었어요.


눈부시게 아름다운 낱말들

그만큼 이 책을 읽는 내내 모든 문장이 아름답다고 느꼈습니다. 미쉬카 할머니가 실어증으로 인해 자신이 생각하는 적절한 단어를 지 못하고 다른 식으로 얘기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웃음을 주는 동시에 서글픔을 느끼게 합니다. 어쩌면 제가 글을 쓰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어서 더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미쉬카 할머니와 마리, 제롬. 그들이 나눈 대화가, 모든 말과 문장이 먹먹하고 눈부셨습니다. "언어가 없다면, 과연 우리에게 무엇이 남을까?"라는 질문에 대해 생각하다 잠시 아득해지기도 했고요.


그리고 한편으로는 책을 번역한 번역가가 정말 고생을 많이 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프랑스어를 좋아해서 조금씩 배우고 있는데, 언젠가 원어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제게는 너무나 좋은 작품이었어요.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는 것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또 가지는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정도로.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을 거쳐 마음을 전한 후에는 한결 더 자유로워질 수 있겠죠? 말과 마음, 그리고 마음을 주고받을 사람이 사라지기 전에 진심을 전해주세요.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으니까요.


오늘 밤엔 저도 곰곰이 생각해봐야겠습니다.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었지만 어느새 조금씩 희미해진 인연들, 그리고 지금 내 곁에서 나를 지켜주고 있는 고마운 사람들을요. 그전에 우선 이 말부터 해야겠네요. (미쉬카 할머니 방식으로요.)


"그냥요.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심께, 진심으로 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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