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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소 May 15. 2020

일의 기쁨과 슬픔

얼마 전, 4월 말부터 5월 초까지 이어진 긴 연휴가 끝났다. 나는 쉬는 동안 착실히 집순이 생활을 했고, 언제나 그렇듯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일상을 이어가는 일은 행복했다. 하지만 끝날 것 같지 않던 연휴도 결국 지나가고 우리는 또다시 회사로 출근을 한다.




오늘은 우리가 깨어있는 동안 어쩌면 집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회사, 그리고 그 곳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일을 통해 느끼는 감정들을 다룬 책 『일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한다.

장류진,『일의 기쁨과 슬픔』 , 창비, 2019.


2018년 창비신인소설상으로 등단한 장류진 작가의 첫 번째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에는 직장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8편의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각 소설이 지닌 매력이 저마다 다르고, 글을 읽으며 느껴지는 감정 역시 달랐지만 8편의 소설 속 존재하는 인물들의 모습에서 모두 조금쯤은 내 모습을 떠올리게 되어 좋았고 한편으로는 서글프기도 했다.


직장인인 우리가 사회에서 마주하는 웃픈 현실들

8편의 소설 중 가장 먼저 수록된 작품인 「잘 살겠습니다」에서는 결혼식을 사흘 앞두고, 3년간 교류가 없었던 직장 동기인 '빛나 언니'의 연락을 받은 후 청첩장 약속을 잡게 된 ‘나’의 이야기를 다룬다. '빛나'라는 독특한 캐릭터가 인상 깊었고, 가까운듯 먼듯 애매한 관계의 '직장 동기'가 주는 느낌과 직장 내 경조사를 대하는 직장인의 자세같은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작품이었다.


표제작인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는 카드회사 공연기획팀에서 일하던 중 회장에게 미움을 받아 월급을 카드 포인트로 대신 받게 된 ‘거북이알'이 주인공인 '나'의 회사에서 운영 중인 중고 거래 어플에 글을 도배하다시피 하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았다. 이 작품에서는 직장 상사에게 갈굼을 당해 곤란해지지만 저마다의 방법으로 힘든 상황을 극복해나가는 직장인의 웃픈 현실을 흥미롭게 그려냈다.


너무 재미있어서 읽는 내내 킥킥댔던 작품인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 속 지훈은 한때 직장에서 애정기류를 형성했던 지유를 만나기 위해 그녀가 남편과 사별한 후 혼자 지내고 있는 일본으로 충동적인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오랜만에 만난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지만 함께하는 내내 성적 긴장감을 유지하던 지유와의 관계는 결정적인 순간을 눈앞에 두고 예상치 못한 국면을 맞이한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회사에서 묘한 애정기류를 형성하는 관계'에 대해 유쾌하게 그려낸 것이 이 작품의 묘미인 것 같다.


「백한번째 이력서와 첫 번째 출근길」에서도 역시 재미있는 상황이 그려진다. 구직난에 시달리다 가까스로 합격한 회사에 처음 출근하는 날, ‘겨땀’과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대해 고민하는 주인공의 모습 속에는 녹녹찮은 직장인의 여름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었던 작품인 「다소 낮음」의 주인공 장우는 오래 만난 여자친구 외에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무명의 뮤지션이다. 그러나 낡아빠진 냉장고를 대상으로 장난처럼 만든 노래가 유튜브에서 대박나면서 그의 인생에도 잠시나마 쨍하고 볕이 들게 된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고지식함과 순진함으로 인해 상황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자신을 잠시나마 반짝이게 해준 낡아빠진 냉장고 안에 머리를 두고 눕는 장우의 모습을 보며, 나는 삶의 고단함과 먹먹함을 느꼈다.


그 외에도 「도움의 손길」속 주인공이 애써 마련한 집을 더욱 잘 관리하기 위해 가사도우미 아주머니를 고용하게 되며 형성되 두 사람 간의 묘한 긴장감이나 온라인상에서 음란 광고를 필터링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새벽의 방문자들」속 주인공이 어느날부턴가 새벽마다 처음 보는 남자들이 자신의 집을 성매매지의 주소로 착각하고 찾아오는 일을 겪으며 느끼는 불안함 역시, 결코 낯설지 않은 '사회에 대한 긴장감'으로 느껴져 마음에 와닿았다.


「탐페레 공항」은 다큐멘터리 피디를 꿈꾸지만 별 볼 일 없이 살아온 청춘의 이야기를 그린다. 핀란드의 탐페레 공항에서 만난 노인과 짧지만 멋진 인연을 맺게 되는 주인공은 시간이 흐른 후 한국에 돌아와 받은 노인의 온 편지에 반가움을 느낀다. 하지만 취업준비생 신분으로 매일 반복되는 분주함과 불안감이 곧 그를 다시 현실로 돌아가게 했다. 그 후 꿈을 포기하고 현실을 살아가주인공의 일상이 가슴 아팠지만 말미에는 결국 뭉클한 마음을 느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의 편지가 꼭 '얀'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노인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며 책을 덮었다.


나와 닮은 그들이 건네는 담담한 위로

책을 읽을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목차를 확인하는 것이다. 여러 단편이 수록된 소설집인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각 소설의 순서를 결정하고 전체적인 구성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책을 만드는 이들이 전하고자 하는 방향성과 구성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가진 또 하나의 스토리에 대해 내 나름대로 가늠해보는 것이다.


동일한 관점에서 「탐페레 공항」이 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봤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일의 기쁨과 슬픔』속 인물들은 모두 조금쯤 나와 닮아있다. 그들의 찌질함과 유쾌함,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불안과 공포, 꿈에 대한 좌절과 이를 딛고 다시 한 번 일어서려는 희망,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어느 순간 느껴지는 타인의 위로까지도.


하루하루 일을 하며 느끼는 크고 작은 기쁨과 슬픔들을 마주하며,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담담히 위로를 건네는 장류진 작가의『일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 소개하는 것을 끝으로 또 하나의 오늘을 마무리하려고 한다...라고 썼지만


사실 나는 한 시간 전까지 외근을 하고,

과장님과 함께 늦은 저녁을 먹은 후

집에 가기 위해 나와 비슷한 표정을 한 사람들을 마주하며  

지하철 4호선 의자에 몸을 맡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은 즐거운 토요일이니까.


오늘도 부디, 우리 모두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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