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기대어 잠들던 아버지
기록적인 폭염이었던 그해.
역대 가장 더운 여름 중 하나였던 그해, 그 무지막지했던 더위가 가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막 불기 시작했던 그때,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알코올중독이었던 아버지는, 술로 인한 간경화로 오랫동안 병원신세를 졌고, 퇴원과 입원을 반복했다.
그리고 그 잠시의 퇴원기간에도 어김없이 아버지는 술을 찾았다.
내 기억 속의 아버지는 항상 술에 취한 모습이었고, 술값이 없을 때에는 어린 딸에게 조차 술값을 달라고 했다.
이미 술에 취해 있었지만 아버지는 더 취하기 위해 또 술을 마셨다.
왜 그렇게 취해야 했을까..
나는 그런 아버지가 너무 싫었다. 정확히 말하면 증오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폭력적이거나 식구들을 괴롭히거나 그런 건 전혀 없었다.
충분히 술에 취하면 그저 안방 한구석에서, 이불을 둘둘 말아 다리사이에 끼우고, 마른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잠에 들었다.
이런 아버지에 대한 엄마의 타박은 끝이 없었고, 말수가 없던 아버지는 한마디 대꾸도 없이 멍한 눈으로 방바닥만 바라봤다.
싸움이라기 보단 엄마의 일방적인 감정의 폭발에 가까웠고, 집안은 온종일 아버지의 술냄새와 그런 아버지를 쉴 새 없이 몰아세우는 엄마의 높은 소리로 가득했다.
그리고 나는 이 모든 원인은 아버지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고소한 전냄새가 가득했다.
"왔구나"
엄마는 부엌과 베란다를 오가며 분주히 제사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고, 나는 조용히 내가 할 일을 찾아 거들었다. 먼저 와있던 언니는 제기를 꺼내어 준비된 음식을 차곡차곡 담고 있었다.
팔순이 넘은 엄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지금까지 수 십 년을 한 번도 빠짐없이 꼬박꼬박 제사를 지내고 있다. 올해도 역시 한가득 제사상을 차렸다.
'1인분치고 너무 많네..'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향냄새 가득한 제사상 앞에 섰다.
아버지는 좀처럼 자기 생각을 드러내지 않는 분이었다. 말수가 없고, 화를 내는 일도 거의 없었다.
그래서 모든 결정은 거의 엄마가 했고, 아버지는 모두 따랐다. 그게 마음에 들던, 그렇지 않던.
물론 그게 집에서 뿐은 아니었다. 안팎으로 아버지를 늘 따라다니던 꼬리표는 그저 착한 사람이었다.
그런 착한 사람에게 술은 어떤 의미였을까..
얼굴과 성격 모두 아버지를 많이 닮은 나는 이제 조금 아버지를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밖으로 표출할 수 없었던 마음 한가득의 응어리를 술로써 잊어보려고 했던 걸까.
그 한가득의 응어리를 풀어줄 수 있는 사람이 가족 중 아무도 없었으니까.
엄마도, 나도, 언니도, 동생도..
그래서 그렇게 취하고 또 취해야 했었는지 모르겠다.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였다면, 아버지와 나는 서로에게 위로가 될 수 있었을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 오랜 세월 동안 나는, 아버지가 보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
꿈속에서 조차 아버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스무 해 남짓 함께한 뒤 떠나보낸 아버지.
그리고 이제 아버지보다 한살이 더 많아진 지금, 나는 비로소 아버지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