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그들보단 내가 낫다.

교양의 얼굴이 무너진 밤 - 더 파티 2017

by 소소

'그래도 우리가 제일 낫네'

막장으로 치닫던 파티의 절정에서 자넷의 친구 에이프릴은 자신의 파트너를 보며 이렇게 말한다.


흑백 화면 속, 한집에 모인 7명의 인물들.

집주인 이자 유망한 여성정치인인 자넷의 보건복지부 장관 지명을 축하하기 위해 파티가 열린다.

자넷 부부를 포함해 초대된 친구들은 교수, 여성학자, 은행가, 유명세프 등 소위 잘 나가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처음으로 도착한 친구는 축하의 말을 건네긴 하지만 왠지 진심으로 들리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후 도착하는 친구들 또한 축하보다도 뭔가 개인적인 일들로 정신이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영화 초반부터 이 파티가 과연 어떻게 흘러갈지에 대한 궁금증과 함께 긴장감마저 느껴지게 된다.


축하의 말은 잠시, 그들은 정치, 경제, 진보, 윤리 등에 대한 얘기를 자연스럽게 나누며, '배운 사람들'이라는 모습을 일단 관객에게 보여준다.

하지만 파티에 모인 7명의 교양인들은 자넷 남편의 폭탄선언으로 관계가 무너지기 시작하며, 마치 꼬리에 꼬리를 물듯 모든 인물의 민낯이 드러나는 막장으로 흐르게 된다.

서로를 존중하는 척하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공격적으로 변하고, 정의롭던 언어는 자기 합리화를 위한 도구가 된다.

물론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갈등은 충격적인 사건 이긴 하지만, 갈등의 크기보다 흥미로운 부분은, 갈등 앞에서 드러나는 소위 교양인들의 태도 때문이다.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각자를 방어하기에 바쁜 사람들은 상대의 민낯을 들춰내며 비겁하지만 그럴듯한 논리로 자기 자신을 포장한다.


모두가 똑똑하고 사회적으로 안전한 언어를 사용할 줄 알지만, 자신에 대한 위협을 느끼는 순간 그들의 껍데기뿐이었던 지식과 인격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

책임을 져야 할 때는 침묵하고, 불리해지면 말을 바꾸며, 상대를 자극해 위기를 모면하려고 한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교양의 얼굴을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그들에 의해 그날 밤 그 파티는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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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파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명장면은 은행가 '톰' 역할을 맡은 킬리언 머피의 욕실 장면이다.

도착하자마자 불안하고 초조한 모습으로 축하의 인사를 건네는 둥 마는 둥 하고 욕실로 향한 그는 제일 먼저 문을 잠그고, 불안정하고 흥분된 모습으로 좁은 욕실을 왔다 갔다 하다가 거울을 보고 머리를 쓸어 넘긴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코카인을 꺼내 욕조 가장자리에 놓고 흡입한다.

그리고 '넌 그녀를 잃게 될 거야 톰.. 다 잃게 될 거야 톰.. ' 이란 말을 중얼거리며 몸에 지니고 온 권총을 점검하고, 거울을 보고 손가락으로 양치를 한 후 세수를 한다. 마지막으로 욕실장에 있는 뭔지 모를 스프레이를 꺼내 몸에 뿌리더니 싸구려 냄새라며 욕을 한다.


이 장면은 파티 공간에서 벗어난 좁은 욕실 그리고 흑백화면, 킬리언 머피의 불안, 초조, 분노가 뒤섞인 한 편의 모노드라마 같은 완벽한 연기까지, 이 영화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명 장면이다.

냉철한 금융가였던 톰은 자기 부인을 잃게 될 거라는 생각, 그리고 이 파티에서 자신이 누군가를 죽임으로써 모든 걸 잃게 될 거라는 공포와 불안, 분노가 뒤섞여 날것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다.

어찌 보면 이 장면은 이 영화 전체를 압축한 한 컷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교양이라는 얇은 껍질이 벗겨지는 순간, 그 아래에는 누구나 감당하기 버거운 본능이 있다는 사실. 그래서 그 버거운 본능을 억누르기 위해 좁은 욕실에서 발버둥 치는 인간의 모습은 그들이 교양인이건 지식인이건 그렇지 않건 간에 다 똑같다는 걸 보여준다.


그래서 영화 속 에이프럴의 말처럼 나도 같은 생각을 한다.

그래도.. 저들보단 내가 낫지 않을까..


나는 저들만큼 세련되지도, 많이 공부를 하지도 못했고, 또 언제나 옳은 말을 골라하지도 못한다.

대화 속에서 자주 머뭇거리고, 명확하게 내 의견을 말로써 표현하는 것도 서툰 편이다.

하지만 껍데기만 정의로운 척하는 저들과는 달리, 나는 내 실수를 인정하고 부끄러워할 줄 안다.

내 책임을 포장해서 남에게 떠 넘기지도 않고, 비겁하게 변명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적당히 포장할 줄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내 감정과 내 행동에 너무나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책임을 진다.

그래서 껍데기와 본능의 민낯사이, 그 엄청난 괴리감에 스스로 괴로워하는 저들보다는

껍데기와 민낯이 거의 비슷한 내가 저들보다는 훨씬 낫고 덜 괴로운 삶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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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지식인을 조롱하지 않는다. 대신 ‘지적임’이 얼마나 쉽게 가면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말이 우아하다고 해서 태도까지 성숙한 것은 아니고, 옳은 주장을 한다고 해서 옳은 인간이 되는 것도 아니다. 품위는 말의 수준이 아니라, 균열이 생겼을 때 드러나는 태도에서 결정된다.


영화 '더 파티'의 막장파티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는다.

또 하나의 마지막 반전을 암시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마치 이들의 가면 쓴 삶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어쩌면 체면과 교양, 정의로운 말들로 무장한 채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도 파티가 아닐까...

옳은 말을 하는 사람이 늘 옳은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고, 지적인 언어를 쓰는 사회가 반드시 성숙한 사회인 것도 아니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무너지지 않은 척, 들키지 않은 척, 괜찮은 사람인 척하며 끝나지 않는 파티에 참석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미지출처 : 영화 더 파티 스틸컷 (배급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