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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soceo Jul 12. 2018

법 없어도 산다던
내가 법원을 갔다 온 날

나를 원고로 만드는 피고

정말 복잡하고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일에 엮이는 것을 너무 싫어합니다. 그런 일에 엮이는 것보다 차라리 제가 좀 손해를 보고 맙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좀'입니다. 만약 납득할 수 없거나 대화가 통하는 않는 경우에는 그 사람과는 관계를 칼같이 정리해 버립니다. 지금까지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퇴사 후 제 일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제가 좀 손해를 보거나 인간관계를 정리해도 풀리지 않는 문제들이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적지 않은 돈이 걸린 경우가 있고, 잘못을 한 사람이 오히려 더 당당하게 나오는데 이런 사람들은 인연을 끊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좋게 좋게 넘어가거나 그냥 무시하려고 해도 상황이 그럴 수 없고, 억울하고 힘들고, 말이 안 되더라도 누군가 한쪽을 강제로라도 받아들이게 만들어야 합니다. 결국 저는 법 없이는 살 수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스스로 법 없이 없어도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말에 깔린 전제는 제 스스로 법이라는 것을 어길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법 없이 살 수 있으려면 제가 법을 어기지 않는 건 기본이고, 법을 어기는 사람과도 엮이지 않아야지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거짓말을 하는 경우는 너무나도 자주 겪어 왔고, 저부터도 그래 왔습니다. 하지만 큰돈이 문제가 되거나 법에 문제가 될 수 있는 수준까지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저와 엮이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너무나도 뻔뻔하고, 말이나 행동을 너무 쉽게 바꾸며, 논리 없는 주장만을 펼치는 그런 사람들... 당연히 다시는 보고 싶지 않지만 단순히 보지 않는다고, 전화번호를 지우고, SNS 계정을 차단한다고 그 사람과의 모든 관계가 정리가 되지 않습니다. 그냥 내가 좀 손해보고 말 수도 없습니다. 그 손해가 '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국 퇴사한 지 8개월 동안 사기, 전자소송, 민사소송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기약 없이 긴 시간이 필요하고, 스트레스와 짜증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우울해집니다. 절차는 너무 까다롭고, 복잡하며, 비용도 적지 않게 듭니다. 


그 과정은 복잡한 과정과 비용, 시간, 어려운 용어들로 가득 채워져 있고, 

나중에는 이런 것들이 오히려 가해자들을 보호하는 장치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피해자인데 이런 어렵고 짜증 나는 과정들은 내가 혼자 짊어지고, 직접 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다 한다고 한들 내가 원하는 결과를 받아낸다는 보장도 없었습니다. 누가 봐도 선과 악이 분명한데 잘못한 사람을 잘못한 사람으로 결정짓고, 그 사람이 그 사실을 억지로라도 인정하게 하려면 잘못하지 않은 선의 몸과 마음이 축나야만 했습니다. 착하게 살면 바보라는 말, 크게 사기치고 감옥에 갔다 오는 것이 현명하다 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알 거 같았습니다. 잘못한 사람은 대가 없는 이익을 얻은 후 즐기다가 무죄가 될 수도 있고, 피해 본 사람은 자신이 이겨도 얻는 거라고는 피해본 만큼도 되지 않습니다. 이런 바보보다는 손가락질받는 뻔뻔한 사람이 더 좋겠다는 생각뿐입니다. TV에 나오는 그 사람들이 그렇게 뻔뻔하고, 거짓말하고, 버티는 이유가 다 있던 겁니다. 결국 피해본 사람만 어리석고, 불쌍한 겁니다. 사회 자체가 그런 걸 부추기고 있네요...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절차인가?

정의 구현? 평등?


퇴사 후 피해자의 입장에서 지낸 몇 개월 동안 피해자를 위한 어떤 것도 쉽거나 친절하거나 납득이 되는 것들이 없었습니다. 피해자를 도와준다는 곳들도 결국에는 사람 사는 곳이라 자기 일 외에는 하지 않으려고 하고, 똑같은 말들만을 반복합니다. 피해를 입힌 가해자가 아닌, 피해를 본 내가 그저 잘못했고, 멍청했습니다. 피해자들을 위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고, 애초에 그런 것들과 엮이지를 말아야 합니다. 남의 큰 사건, 사고보다 내 작은 상처가 더 신경 쓰이고 더 아플 뿐입니다. 주변 사람들은 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위로는 하지만 대신해 줄 수도 해결해줄 수도 없는 마당에 얼굴만 몇 번 보고, 연락처만 알며, 계약서 상으로만 관련이 있는 남은 말하 것도 없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착한 것, 이타심, 배려라는 것들의 의미가 없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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