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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soceo May 21. 2020

애증의 대상 회사

슬럼프에 빠진 사업자

    회사에 다니고 있지 않지만 회사에 다니고 있는 듯한 일상. 이러려고 퇴사를 한 건 아니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시나리오도 아닙니다. 미생에서 나왔던 "회사는 전쟁터이지만 회사 밖은 지옥이다."는 말을 공감하지 못했던 것도 아니고, 더 편해지려고 퇴사를 했던 것도 아닙니다. 어차피 힘들 거, 더 힘들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힘들자는 생각으로 결정한 퇴사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단지 회사 다니기 싫어서 내린 결론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간사하게도 내가 현재 좀 어렵다고, 힘들다고 생각했던 과거를 오히려 좋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절대 아니고, 절대 다시 회사에 돌아가지 않을 거지만 그래도 그때 좋았던 점이 분명 있었고, 현재 없는 것들이 그 당시에는 있었고, 앞으로 필요한 것들을 회사에서는 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당장 해야 될 일들이 쉽게 풀리지 않아서 멍 때리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서 그냥 생각을 한번 해봤습니다.


[좋았던 점]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는 그 스트레스의 원인을 없애버려야 합니다. 잠시 보류하고 쉬거나 뒤 돌아보는 시간으로는 그 스트레스의 일부도 없애지 못하는 성격입니다. 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한 어떠한 액션을 취하지 않고 있으면 또 그게 스트레스가 되어 버립니다. 그런데 회사에 다닐 때는 같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고, 좋든 싫든 매일 만나는 사람들과 술 한잔 하면서 무책임하게 일을 뒷전으로 획 던지기도 했었습니다. 그다음 날의 숙취로 더 힘들었던 경험이 많아서 퇴사한 지금은 힘들면 힘들수록 더 술을 마시지 않지만 그때는 왜 그렇게 마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그 원인을 모르지는 않지만 단지 지금은 그러지 않고, 그럴 수도 없습니다.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여서 한숨이 입 밖으로 퍽퍽 나올 때 시계를 보고 제 주변을 봅니다. 시간은 오전이거나 오후이니 당연히 사람들은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제 주변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혼자 일하니깐. 시간도, 일도 원하는 대로 보낼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과 동선이 겹치지 않고, 생활 방식이 다르다 보니 사람 한 명 만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일 하다 같이 커피 마실 사람도, 일 끝나고 간단하게 맥주 한잔 마실 사람이 없습니다. 이런 패턴의 일상이 이제는 익숙하기까지 하지만 가끔은 무리에 속해 있고 싶기도 합니다. 


[현재 없는 것]

일을 하다 보면 벌거벗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모든 책임은 120% 내게로 돌아오고, 어떠한 커버나 필터링 없는 비난이 다이렉트로 저에게 날라 옵니다. 도저히 해결 방법이 없는 상황이 닥치면 비빌 곳도 없고, 물어볼 곳도 없습니다. 그 상태 그대로 시간이 지나면 그 모든 것의 결과는 바로 저한테 비수가 되어 돌아옵니다. (형식적으로라도) 조언이나 위로도 없고,  공감과 같은 감정적인 교류는 말할 것도 없으며, 심지어 논리도 없습니다. 그저 자신의 이익과 상황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저도 그렇게 되어 가고 있습니다. 회사를 다니면서 번 돈으로 소비를 하는 입장에서는 돈을 받고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그것들의 대부분을 제가 이해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앞으로 필요한 것]

무엇을 배우기에 가장 좋은 곳은 회사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많은 시간을 회사에 할애하면서 일을 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데 그때처럼 단기간에 그 많은 것들을 돈(월급)을 받으면서 배울 수 있는 시기가 없을 겁니다. 7년 동안 다닌 회사에서 배운 것들을 퇴사 이후에 사업을 하면서 정말 많이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3년 동안 정신없이 사용만 하다 보니 어느 날 문득 곧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이 바닥이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닥이 드러나기 전에 다시 뭔가로 채워줘야 하겠다는 위기감을 꽤 오래전부터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그러지 못하고 있습니다. 회사처럼 강제성도 없고, 지원도 없습니다. 게다가 지금 제 상황에서 뭔가 채울 수 있는 행위를 하면 그거에 대한 기회비용으로 바로 내일의 매출/수익의 감소가 발생합니다. 회사에서는 월급 받으면서 일이라는 형태로 뭔가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간접적으로 제공이 되었지만 지금은 내가 더 독하게 노력하고 별도 비용과 시간을 할애하지 않으면 저를 지적/감정적으로 채울 수 있는 어떠한 결과도 만들어 낼 수가 없습니다. 회사를 다닐 때보다 더 빈번하게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고 있는 것을 보면 이제는 무섭기도 합니다. 바뀌어야 된다,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은 하지만 퇴사하고 혼자서 일하는 지금의 제 상황이, 또 정신적으로 방전되어 버린 제 상황이 그걸 행동으로까지는 옮기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퇴사는 했지만 회사에서의 일상과 큰 차이를 아직은 만들어 내지 못했고, 회사에서 배운 것들로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퇴사는 했지만 아직도 회사의 울타리에서 100% 탈출하지는 못한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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