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는 사람을 남기는 거라고 하던데
[컨설팅받는 IT 비전공자]
영어 학원 선생님으로 일하다가 IT 분야로 전업을 하기 위해 저한테 컨설팅을 받고 있는 분이 한 분 있습니다. 벌써 2년째인데 그 사이에 개발 회사에 취업을 했고, 최근에 입사 1년 차가 되어서 이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너무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저도 하나라도 더 도움이 드리려고 했고, 연초에는 제가 먼저 제안을 해서 함께 정부지원사업도 지원을 했었습니다. 개발 분야에서는 이제 1년 차 신입이지만 경력이 있고, 없고는 굉장한 차이입니다. 그 1년에 차이로 작년과는 달리 이직을 준비하는 지금은 이미 합격한 회사도 있고, 면접 날짜도 계속 잡히고 있어서 여유 있게 이직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분은 IT 분야에서 자리를 잡았고, 원래 전공이 중국어인데 영어까지 잘하는 IT 개발자이기 때문에 앞으로 잘 될 일만 남았습니다. 이 분이 지원하거나 서류 합격한 회사를 보면 IT 회사인데 모두 영어가 필수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국내에 IT 개발자는 많지만 영어까지 되는 개발자는 많지 않을 겁니다. 영어, 중국어가 가능한데 1년이라는 IT 경력까지 생겼으니 이 분은 이제 취업을 고민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게다가 심심치 않게 외국에 나가서 일을 하는 자리도 제안을 받고 있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1780825?e=24673870
앞에서 잠깐 말씀드렸던 것처럼 이 분과 함께 정부지원사업을 지원했었고, 그 이유도 언급했던 것처럼 뭐든 열심히 하는 모습이 너무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 이 분이랑은 뭔가를 해볼만 하겠다.. 아니 하고 싶다!!'
그래서 제가 먼저 제안을 했는데 그걸 또 좋다고 받아줬고, 심지어 열심히 하더라고요. 하지만 정부지원사업에 선정되지는 않았고, 이분은 이직 준비를 하고 있고, 어쩌면 외국으로 나갈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제 역할은 그분이 IT 경력을 잘 쌓을 수 있게 컨설팅을 해주는 겁니다. 당연히 외국으로 간다고 하면 그 상황과 회사에 맞는 조언을 해주고 계획을 제안해 줘야 합니다.
이분에게 컨설팅을 해주고 있지만 저는 사업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컨설팅을 해주는 입장에서는 이 분이 외국으로 가는 걸 도와야 하지만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는 제 일적으로 뭔가를 함께 해보고 싶은 사람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외국으로 취업을 하겠다는 이 분을 제가 잡을 수 있는 능력과 당위성이 없습니다. 그냥 제가 부족해서 그럴 수가 없는 겁니다.
[신입 개발자]
스타트업 회사에서 관리자로 잠깐 일하면서 알게 된 개발자 동생이 있는데 성향/학교/사는 곳이 똑같아서 지금까지도 연락하면서 함께 프로젝트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 친구도 중국어와 외국어가 가능한데 앞의 분과의 차이는 중국인이라는 점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원래 계획보다 오래 한국에 있게 되면서 저와 함께 이것저것 하고 있고, 그러다 보니 이 친구도 취업보다는 사업적으로 무엇인가를 해보려고 하는 중입니다. 저는 이미 그러고 있지만 아쉽게도 제가 이 친구를 이끌어 줄 역량/능력/여유까지는 없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기만 하니 자연스럽게 이 친구도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이 친구도 외국어가 유창한 개발자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한국에서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외국에서 취업을 할 수 있을 겁니다. 굳이 한국에서 구직자 행세를 하고 있을 필요가 없는 거죠.
취업을 해야 하나?
외국으로 다시 나갈까?
아쉽게도 이 친구도 제가 잡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지금이야 제가 연차가 더 있고, 경험이나 기술적으로 조금 더 나을 수 있지만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이 친구가 굳이 저한테 아쉬워할 것도 없고, 저와 일 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즉, 제 입장에서는 지금 아니면 이 친구를 잡을 수 없는데 처음 분과 마찬가지의 이유로 저는 이 친구도 잡을 수가 없습니다.
[뜻이 맞는 학교 선배]
보통 취업을 하고, 가정이 생기면 그때부터는 사업을 하고, 미혼 상태인 저와는 접점이 많이 사라지고, 현실적으로 자주 만나기도 어렵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게 수순입니다. 그런데 저보다 나이 많은 선배를 학생일 때보다 오히려 최근 1년 동안 더 자주 보고 있습니다. 그것도 그 선배가 더 적극적으로 원하고 있고, 해외에서 주로 일을 하셨던 분입니다. 이유는 당연히 저와 뜻이 잘 맞아서 그런 건데 회사를 다니고는 있지만 이 분도 사업을 구상하고 있고, 실제로 회사 이외의 많은 일들을 벌이고 있기도 합니다. 솔직히 그분 입장에서도 자신이나 저와 같은 사람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으니 당연히 자주 보게 되고 대화하면서 이것저것 같이 하면서 일을 만들어 왔습니다. 게다가 작년에는 외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와 일을 하면서 더 자주 만나서 소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서로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신기하게도 사업적으로는 공통분모가 많았고, 계획에서 끝나지 않고 실천까지 이어진 일들이 꽤 많았습니다. 퇴사하고 사업을 하면서 정기적으로 만나는 사람이 정말 얼마 없는데 그런 분 중의 한 분일 정도로 자주 만났습니다.
'와.. 이 선배는 가정까지 있으면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지?'
'나보다 더 독특하네...'
주변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 제가 좀 특이한 애였는데 이 형과 있으면 제가 평범해지는 느낌까지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이 형과는 서로가 서로한테 부족한 장점을 서로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뭔가 해봄에 있어서 거침이 없어서 좋았습니다.
그런데... 이 형님도 외국으로 가게 되었네요. 뭐 원래 담당이 외국에서 일을 하는 거니 이건 예상하지 못한 시나리오는 아닙니다. 결국 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이 형님의 성향상 외국으로 간다고 해도 사업적으로 하던 일은 당연히 계속하고, 오히려 외국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일을 더 벌일 겁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저는 또 좋은 사람을 잡을 수 없다는 무력감을 한 번 더 겪게 됩니다.
[혼자에 익숙해진 줄 알았는데]
'남의 일을 남과 하지 말고, 내 일을 남과 함께 하자'
퇴사를 했을 때 목표였습니다. 하지만 개념 없고, 비논리적인 사람들과의 분쟁을 지속적으로 겪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와 그냥 나 혼자 해버리자...'라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럴 수 있는 사업을 하자는 거였죠. 분명 한계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이야기도 아닙니다. 아직 그 한계까지도 도달하지 못한 상태이니까요. 쓸데없는 일로 사람들이랑 시간/감정 낭비하지 말고 지금 나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해서도 할 수 있는 일은 많습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그렇게 생각하면서 뭔가를 하는 과정에서 앞에서 말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겁니다.
그리고 퇴사했을 때 목표로 했던 내 일을 함께 할 '남'이 바로 이런 사람들이었다는 걸 깨달은 겁니다. 다 체념하고 혼자 하려고 하니까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주변에 나타난 겁니다. 생각이 바뀌어서 혼자 하겠다고 결심은 했지만 주변 상황이 이렇게 되면 제 입장에서는 또 욕심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부족한 제 능력과 상황 내에서 소심하게 이 분들과 일을 만들어 봤던 건데 잘 안되거나 아직 의미 있는 결과까지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정말 신기하게도 이 사람들이 동시에 다 외국으로 나간다네요.
그렇게 되면 평소처럼 그냥 저 혼자 하면 되는데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 그리고 처음 퇴사했을 때는 '내 일을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다'라고 생각했던 입장에서는 아쉽고, 무력해지고, 공허해지네요. 그렇게 많이 지원했던 정부지원사업 중에 단 한 개도 선정되지 않은 게 너무 원망스럽고, 나와 함께 일하고 싶어 하고, 또 나도 함께 일해보고 싶은 사람들한테 오히려 다른 회사로의 취업을 도와주고 있다는 게 너무 웃깁니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저와 뜻이 잘 맞는 사람은 기약 없이 외국으로 일하러 나가고...
더 슬픈 건 그 당사자들한테는 그렇게 하는 게 개인적으로/가정적으로, 그게 아니더라도 저를 포함한 누가 봐도 옳은 선택이라는 겁니다. 만약 제가 이 사람들을 잡는다면 오히려 그들의 발목을 잡게 되는 겁니다. 무력하고 또 무력합니다.
결국 다시 제 일을 저 혼자 하게 될 겁니다. 그저 내가 빨리 크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외국으로 나가는 그들보다 더 많이...!! 그래야 나중에라도 그 사람들을 잡을 수 있고, 그렇게 못하거나 그들이 거절하더라도 제가 이런 상황을 또 겪지 않을 테니까요...!! 차라리 이렇게 되니 제 일에 더 집중이 되고, 동기 부여도 된 거 같습니다. 이왕이면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상황이 되어서 자극을 받아 내 일에 더 집중이 되고, 동기 부여도 됐으면 좋았겠지만 지금의 상황은 바꿀 수 있는 게 없으니 빨리 상황 파악하고 현실에 맞춰 나가면서 나중을 기약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