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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 Oct 20. 2021

걱정이 많아서 걱정이다

마이 네임 이즈 걱정이

정말이지 나는 걱정도 후회도 미련도 많은 사람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컴퓨터를 쓸 때도 늘 한 번은 후회한다. 좀 더 가벼운 걸로 살 걸. 왜 좀 더 신중하지 못했을까. 매일 밤 잘 때는 아이에게 좀 더 다정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줄 걸 하며 미안해한다. 친구에게 보낸 메시지 하나에 혹시 감정이 상했을까 연연해한다. 그날 입은 옷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집에 들어오는 그 순간까지 마음이 편하지 않다. 책도 마찬가지다. 나름 고민하고 생각해서 산 책인데도 이거 말고 저거 살 걸 그랬나 후회한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는 건 당연하다. 아직 넉넉하게 200장도 넘게 남은 마스크가 떨어질까 봐 걱정이고, 아직 1킬로나 남은 커피 원두를 언제 새로 시켜야 하나 고민이다. 내가 내려갈 때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많을까 봐, 내가 올라올 때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몰릴까 봐 외출도 잘 안 한다. 피곤하긴 하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잘 살아왔다. 사람이 걱정하는 일은 대부분 일어나지 않는다는데도, 그냥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혼자서는 이런 걱정들을 때로는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때로는 무시하면서 살아갈 수 있겠는데 아이가 커갈수록 걱정이 드는 게 지금 나의 걱정이다.

열 살 어린이를 키우면서 가장 큰 걱정은 학습과 친구다. 온라인 수업을 하면서 아이의 수업 태도와 학습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보는 건 나에게 너무 버거운 일이다. 바르게 앉으라고 말하고 싶고, 온라인 수업 시간에 같은 친구에게 메시지 보내지 말라고도 얘기하고 싶고, 좀 더 적극적으로 선생님의 질문에 반응하라고도 얘기하고 싶다. 하지만 이제 자기도 4학년이라며 나의 간섭을 싫어하니 꾹꾹 참았다가 한 두 번 아이에게 말을 하고는 또 후회한다. '그냥 자율적으로 하게 둘 걸 그랬나? 학교 가면 태도는 금방 잡힌다는데.' 그런데 그놈의 학교는 대체 언제 간단 말인가! 벌써 6개월째 온라인 수업만 하고 있다. 물론 중간에 두 달의 방학은 있었지만.

급한 성격 때문에 문제 잘 풀어놓고 마지막에 덧셈 실수가 잦은 것도 걱정이다. 수준을 알 수 없으니 프랑스어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도 걱정이고, 영어 시간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 걱정이다. 이 모든 걸 아이에게 표현할 수는 없다. 그래서 가끔 수업이 끝나면 슬쩍 물어본다. "오늘 수업은 어땠어? 0부터 10까지 있으면 얼마 정도 이해하는 것 같아?" 이번 주는 시험 기간이었다. 어제도 오전에 시험을 봤다. 어땠냐는 질문에 쿨하게 웃으며 "괜찮았어"라고 대답한다. 늘 언제나 자신감 충만한 녀석이니까. 늘 언제나 고민하고 걱정하는 건 우리 집에서 나 혼자다.

학교를 바꾸고 학년이 올라가면서 아이는 아빠에게서 태블릿 PC 선물 받았다. 분명한 목적은 '학교 수업에 활용하라'였다. 하지만 여전히 온라인 수업은 익숙한 노트북 컴퓨터로 하고, 태블릿은 게임과 영상 전용이었다.  태블릿이 생기기 전에는  핸드폰을 빌려서 썼는데 요즘은 자기 것이 생기니 좋긴 좋은가보다. 코딩, 가상현실, 메타버스, 인공지능... 아이들이 커서 살아갈 세상은 지금과 다를 거라지만, 오늘날을 살아가는 나는 틈만 나면 태블릿을 붙잡는 아이를 보며 "너무 일찍 사준  같아."  후회고 걱정이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걱정하고 있을 수 없다는 것도 안다. 다행히 걱정 많은 내게도 잘하는 게 있다. 그 중 하나가 뭔가 프로그램을 짜는 것이다. 태블릿에 빠진 아이 문제를 고민하다가 용돈 대신에 스바트폰 사용 쿠폰을 만들기로 했다.  주에 용돈처럼 태블릿 30 이용 쿠폰을 주고, 매일매일 해야  과제를 마치면 추가 쿠폰 지급하기로 했다. 집안일을 돕거나 스스로 약속을  지켰다면 부모 사인을 받고, 사인이 다섯 개가 모이면 10분짜리 쿠폰을 준다. 아이도 나도 만족스러운 우리 집만의 규칙이다.

사실 봉쇄로 인해 용돈을 주는  아직 10 아이에게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한국처럼 경제 교육을 시키기에 아직 베트남은 혼자 돈을 쓰러  일도 없고, 딱히  것도 없기 때문이다. 대신 현금이 필요하면 쿠폰을 돈으로 바꿔 주기로 했다. "엄마  30분짜리 동영상 쿠폰 쓴다" "잠깐 기다리는 동안 10분짜리 쓸게." 쿠폰마다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아이도 스스로 자신이 하는 시간을 알고 있고, 어느 정도는 컨트롤하고 있다. 적당히  감아주다 보면 쿠폰보다  많은 간을 하기도 하지만, 쿠폰을 아끼기 위해 자제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좋게 생각하려고 한다. 아직 어린 열 살에게 통하는 방법이라 다행이다.


걱정은 늘 많지만, 나름의 해소 방법도 있다. 전적으로 누군가의 응원과 격려가 필요하거나, 같이 욕해줄 사람이 필요할 때는 친구를 찾는다. "우리 집도 그래" "건강하면 됐지" 아니면 "아, 정말 화나네. 도대체 누가 그랬대!" 그래도 이 방법은 최대한 아끼고 있다. 친구들이 나 때문에 지치면 안 되기 때문이다. 나는 나에게 얼마 남지 않은 친구들을 소중하게 지키고 싶다.

때로는 먹는 걸로 걱정을 털어낸다. 마음 불안할 때는 쫄면처럼 매콤한 걸 먹거나, 얼큰한 짬뽕을 먹는다. 스트레스가 심한 날에는 치킨, 삼겹살, 족발과 같은 고기를 잔뜩 먹는다. 술은 마시지 않는다. 내 몸에서 알코올 분해능력이 어느 날부터인가 사라진 듯해서 술은 포기했다. 그래도 가끔 더운 날의 시원한 맥주 한 잔은 그립다. 대신 집에 늘 떨어지지 않게 라임청을 만들어 두고 속이 답답할 때마다 탄산수와 함께 마신다.

베트남이 과일이 저렴하다. 가끔 베트남의 저렴한 과일들을 사다가 하루 종일 과일청을 만든다. 한 통에 5백 원 정도 하는 파인애플, kg에 2천 원 정도 하는 라임과 패션푸르츠, 깔라만시를 사다가 씻고, 자르다 보면 어느새 묵은 걱정이 가라앉는다. 걱정이 많을 때는 이렇게 소소하지만 중요한 일에 집중을 하는 편이다. '이건 내가 잘하는 일이야'(자신감), '한 통은 친구 줘야지'(설렘), '당분간은 든든하겠어'(안정감), '벌써 시간이 이렇게'(성취감). 작은 집안 가득 퍼지는 상큼한 향은 덤이고.

집안 대청소도 걱정 털어내기에 좋지만, 오히려 화가 솟구치는 경향이 있어서 자제하는 편이다. 내가 대청소를 시작하면 우리 집 아이는 긴장한다. 정리하라는 잔소리를 들어야 하니 말이다. 그중에서도 이제 필요 없는 장난감은 과감히 없애자라는 말을 가장 싫어한다. 의견 존중, 취향 존중이라는 말을 마음에 수십 번 새기며 참는다. 열 살이니까.

걱정을 덜어내는 또 하나의 선택은 새벽이다. 혼자 시간을 보내고,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안정감이 드니 걱정과 불안에 흔들리지 않는 듯하다. 요즘은 새벽을 얼마나 알차게 보내느냐에 따라 나의 하루 컨디션이 결정되기도 한다. 그래서 꼭 새벽을 깨운다.


한국어가 익숙하지 않은 12살 학생과 온라인 개인 수업을 하고 있다. 지금은 서로 농담도 주고받고, 게임도 할 정도로 한국어가 유창해졌다. 이 친구와 수업을 하다 보면 당연하고 익숙하게 써오던 단어들을 풀어서 상황을 예로 들어가며 이해시켜줘야 할 때가 많다. 이번 주에 그 친구가 새로 알게 된 단어는 '긍정'이었다. 반대말인 '부정'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 나누었다. "네 생각에 선생님은 긍정적인 것 같아, 아니면 부정적인 것 같아?" "선생님이요? 당연히 긍정적인 사람이죠." 이번 주 내내 이 말은 내게 힘이 됐다. 수많은 부정적인 생각이 걱정인 내가, 누군가에겐 당연한 긍정적인 사람으로 보인다는 말이 좋았다. 나 그래도 꽤 괜찮은 사람일 수도 있겠구나. 걱정 한 시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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