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엄마 나 사랑해?
어젯밤, 아이에게 얼른 자라고 하고는 방문을 닫고는, 같이 주말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친구와 온라인 회의를 했다. 회의가 끝나니 밤 10시가 한참 넘은 시간. 아이가 빼꼼히 방문을 열고 웃으며 들어왔다. '엄마 이제 다 끝났어?'라는 얼굴의 아이에게 나는 "아직도 안 자고 뭐했니. 얼른 가서 자."라고 다그쳤다. 지치고 피곤한 마음에 쏟아낸 가시 같은 말. 아이는 내 책상에 종이 한 장을 내밀며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는 후다닥 잠을 자러 자기 방으로 도망갔다.
아이가 준 종이에는 어제 꺼내 준 알록달록한 반짝이 펜으로 쓴 편지였다. 아침에 일어나서 다시 앉아서 아이의 글을 읽었다. 편지라기보다는 <엄마 테스트>였다.
[문제]
엄마에게
문제를 푸시오.
1. 엄마, 늦은 밤이어도 _________________ 사랑해
2. 엄마, 이른 아침이어도 _________________ 사랑해
3. 엄마, 나 잊으면 안 돼!
대답 : _________________________
4. 엄마, 오늘까지 짜증 낸 나를 용서해줘.
대답 : __________________________
5. 엄마, 호옥시 나 1초라도 싫어한 적 있어?
(동그라미 하시오) 응 / 응! / 엄청! / 아니
6. 엄마, 나는 엄마한테 어때?
(동그라미 하시오) 싫어! / 쓸모없어! / 내가 사랑하는 딸 / 모름
7. 엄마, 나 엄마 마음속에 저장했어?
대답 :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바쁠 때면 어쩔 수 없이 아이에게 소홀해지는데, 어제는 많이 서운했는가 보다. 아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문제들을 읽고 바로 대답을 써 내려갔다.
1. 아주 많이 사랑해.
2. 나의 기쁨이 되어준 너를 사랑해.
3. 그럼. 너는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이야.
4. 백 번, 천 번, 만 번 그 이상도 용서해. 너에게 짜증 낸 나도 용서해줄래?
5. 아니(Never!)
6. 내가 사랑하는 딸(곱하기 구골만큼 더)
7. 네가 엄마 뱃속에 온 그 순간부터 저장했어. 이 저장 장치에 단 하나만 남는다면 그건 너야. 사랑해. 구골플렉스보다 더더더 많이.
마음이 투명한 아이다. 즐거우면 온 몸으로 즐거워하고, 화가 나면 온 몸으로 화를 뿜고 다닌다. 걱정이나 불안이 있어도 움츠러든 게 다 보인다. 서운한 일이 있으면 주변을 서성거리며 자기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어 한다. 혹여 그런 마음을 엄마인 내가 눈치채지 못한다면, 이렇게 편지든, 쪽지든 어떤 방법으로든 해결하려고 한다. 늘 감정을 꾹꾹 눌러서 힘든 엄마보다 백 배 천 배 훌륭한 아이다.
늦은 시간 문구 박스를 정리하다가 아이가 예전에 선물 받았던 반짝이 펜 세트를 꺼내서 준 건 나였다. 내가 일하는 사이 아이는 그 펜을 써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펜으로 처음 쓴 건 엄마에게 주는 편지였다. 그런 아이에게 안 자고 타박을 했으니 서운해하며 잠들었을 게 분명하다. "아직 안 잤어?" 웃으며 건네는 너그러운 한 마디가 그렇게 어려웠을까? 한 번씩 이렇게 중요한 것을 놓치는 어리석은 나를 늘 이 녀석은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미안하고 고맙다.
문제를 다 풀고 한편에 쓰여있는 낙서 같은 낙서 아닌 것을 보았다. 'Look behind the paper.' 종이를 넘겨보았다.
시영이에게
아... 화답하는 문제들을 써달라는 거구나. 아이가 일어나기 전에 답장 문제를 만들어야겠다. 아침에는 머리 안 쓰고 쉬고 싶었는데, 내 모든 능력을 다해 아이가 행복해하고 웃을 수 있는 문제를 만들어야겠다.
1. 나는 최근에 엄마를 보면
행복하다 / 좋다 / 사랑스럽다 / 안아주고 싶다
2. 나는 우리 엄마가 ___________________라고 생각한다.
3. 내가 엄마와 함께 하고 싶은 일은 _________________________
4.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을 숫자로 표현해 보시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5. 엄마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색깔은?
정말로, 최근에 우리가 알게 된 구골플렉스보다 사랑해.
글씨가 삐뚤빼뚤해도 마음은 삐뚤지 않고 단단한 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