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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 Dec 07. 2021

두 달 동안 고기를 먹지 말라고?

9살의 다이어트 솔루션

종종 아이들은 수업 시간보다 빨리 온다. 가끔은 30분이나 빠르게 오는 친구도 있다.

1층 현관문이 열리는 종소리가 들리면 단박에 우리 아이들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올라오는 아이들의 발소리에 유심히 귀 기울인다. 오늘의 발걸음은 경쾌한가 무거운가. 그리고 아이들보다 먼저 1등으로 인사하기 위해 노력한다.

안녕~ 왔어?


아이들이 엄마와 헤어지면서 신나게 손 흔들고 교실로 쏙 들어가면 그렇게 기분이 좋다. ‘오늘도 기분 좋게 기대하며 와 주었구나.’ 

아이들이 수업 시간보다 많이 일찍 오면 잠깐 고민도 되지만, 수업 시작할 때까지 교실에서 기다리라고 말하기에는 좀 미안하다. 그래서 수업 시간보다 일찍 온 아이들과는 이런저런 수다를 떨게 된다. “밥 먹었니?” “뭐 하다가 왔니?” “오는 길은 더웠니?” 사시사철 더운 여름이기에 땀 흘리며 올라오는 아이들이 많아 오는 길 걱정하는 건 단골 질문이다.


가끔 아이들 컨디션이나 분위기가 다운되어 있는 것 같으면 괜히 없는 고민을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상담을 한다. “얘들아, 선생님이 고민이 있어. 요즘 살이 2키로나 쪘지 뭐니.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럼 단박에 모든 아이들이 상담자를 자처하며 나에게 해결책을 내놓는다. “운동을 하세요.”, “우리 엄마가 요가 가르치는데 요가를 하세요.”, “앞으로 2달 동안 고기 먹지 마세요.”, "매일 공원을 2바퀴씩 도세요.” 등등. 모두 도전하기 힘든 해결책이지만, 아이들의 이야기는 늘 진지하게 듣는다.

이럴 때 아이들의 해결책은 말로 끝나지 않는다. 모두들 나의 전담 트레이너를 자처하며 각자 제일 잘하는 운동 동작을 알려준다. 다이어트와는 크게 상관 없는 동작들이지만, 나를 지켜보는 아이들의 눈빛을 보면 저절로 열심히 따라하게 된다. 운동 신경이 없다보니 아이들이 가르쳐주는 동작도 엉망진창으로 따라하게 된다.  배우러 왔다가 선생님을 가르치고 있다는 생각에 아이들의 어깨는 한껏 우쭐거린다. 이렇게 웃고 떠들면서 분위기가 달아오르면 수업 준비 완료.


한 주가 지나고 또다시 수업하러 온 아이들이 자리에 앉자마자 묻는다. “선생님, 고기 안 먹었죠?”, “매일 운동했어요?”, “공원 두 바퀴 돌았어요?” 쏟아지는 질문에 정신을 못 차리다가 뒤늦게서야 '아차' 싶다. 아이들의 기억력이 이렇게 좋구나. “어… 선생님이 너무 힘이 없어서 고기를 먹었어. 너무 바빠서 공원도 못 걸었네. 어쩌면 좋니. 이번 주에는 꼭 걸을게.” 선생님의 고민을 끝까지 책임지고 해결해주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생각해서라도 이번 주에는 꼭 걸어야겠다. 거짓말하지 말자는 책을 읽으면서 거짓말하는 독서쌤이 될 수는 없으니 말이다.


어느 날은 아이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아침 먹고 왔니? 뭐 먹었어?” 아이들의 대답을 다 듣고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한다. “정말 좋겠다. 선생님은 오늘 세상에서 가장 맛없는 쌀국수를 먹고 왔어.” 그럼 또 아이들이 묻는다. “왜요?”

“아마, 식당 주인이 오늘 많이 졸렸나봐. 설탕을 조금 넣어야 하는데 꾸벅 졸다가 왕창 넣은 거 같아. 엄청 달았거든. 게다가 주인이 꾸벅 꾸벅 계속 졸았는지 국물이 너무 짜게 졸았더라고. 너희 엄청 달고~ 엄청 짠 쌀국수 먹어봤니?” 안쓰러운 눈빛으로 이야기를 듣던 아이들은 또 어느새 자기들의 맛없는 음식 경험을 쏟아낸다. 그리고 자기가 오늘 아침 먹은 게 얼마나 대단한 음식이었는지를 얘기한다. 또 수업 준비 완료.


수업 전 분위기가 늘 이런 것은 아니다. 일찍 온 아이들끼리 마음이 맞는 날에는 수업 시간 전까지 자기들끼리 놀겠다며 교실에서 쫓겨나기도 한다. 이럴 땐 매우 억울하고, 서운한 표정으로 교실을 나온다. 낄끼빠빠를 아는 쌤이다.


독서 수업을 하는 나와, 미술 수업을 하는 미술쌤의 주말 콜라보 수업에서 인기있는 건 독서가 아닌 미술이다. 아이들이 그 날의 미술이 뭐냐고 물어도 질투심 많은(?) 나는 모른다며 시치미를 뚝 뗀다. 기대감 상승시키기 작전이다. 독서 수업에서 아이들의 생각을 잘 이끌어내야 연계된 미술 수업도 시너지 효과가 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요즘은 종종 독서 수업이 끝나고 미술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교실 문 밑으로 종이 한 장을 슬쩍 밀어넣는다. 그 날의 수업 내용으로 만든 방탈출 미션이다. 아이들은 이런 작은 재미를 즐거워한다. 나도 즐겁다. “선생님, 또 없어요?”

선생님들은 이제부터 간식을 먹을거야. 곰젤리 냠냠냠~ 먹고 싶니?
그럼 암호를 풀어야해.
너무 늦어지면 안 돼. 그럼 곰젤리는 쌤이 다 먹어버리고 없을거야.


주말마다 정신없이 흘러가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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