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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 Mar 01. 2022

네가 가면 나는 걷는다.

길고 길었던 온라인 수업의 끝. 


어린이는 10개월 만에 등교를 시작했다. 그 사이 9월 개학에 맞춰 학교도 옮겼지만, 온라인 전학이었기에 이제야 전학을 실감하고 있다. 작은 학교에서 큰 학교로 옮겼으니 매일이 재미있고, 매일 새로운 친구를 만나는 것이 즐겁다고 한다.


"엄마! 오늘은 친구들이랑 점심 먹으러 가는데. 나처럼 다 전학생이었거든? 한 친구가 길을 안대. 그래서 세 명이 같이 갔는데, 막다른 길이었어. 우리끼리 엄청 웃었다니까."


매일 집에 온 어린이가 조잘조잘 들려주는 학교 이야기가 재미있다.


어린이가 등교하면서 나의 일상도 회복되었다.

코로나 확산으로 외출이 허락되지 않았던 긴 시간을 버티기 위해 시작한 새벽 일상은 2차 코로나 백신을 맞은 다음 날부터 끝나 버렸다. 새벽은커녕 아침에도 일어날 수가 없었다. 하루 종일 몸은 계속 깔아지고, 어린이 오후 수업을 준비해주고는 바로 침대에 쓰러지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3차 접종을 맞고는 우울감도 심해졌다. 생각이 멈춰버린 듯했다. 외국인도 부스터 샷까지 무료로 맞춰주는 건 고마웠지만, 이런 후유증이 있을 줄 알았다면 맞지 않았을 것이다. 1년 내내 더운 베트남에서 추위를 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도 발이 시리고 추워서 에어컨은 뜨거운 공기를 차갑게 해주는 용도로만 잠깐씩 틀고 있다. 아이와 남편은 덥다 하고, 나는 춥다 하니 서로 모이기보다 각자의 방에서 흩어져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힘든 시간들이었고 회복이 쉽지 않았지만, 모든 것을 한 방에 해결해준 것은 어린이의 등교였다. 학교에 가려면 7시에는 셔틀버스를 타야 하니 아침을 먹여서 보내려면 부지런히 새벽에 일어나야 했다. 학교까지 거리가 멀어서 늦잠 자면 학교 못 간다고 어린이에게 엄포를 놓았지만, 못 일어날까 봐 걱정하는 건 나였다. 그런 내가 해내고 있다. 스스로는 할 수 없던 일이 환경의 변화로 회복되고 있다. 

첫 주는 아이를 일찍 재우고, 잘 먹여서 제시간에 버스를 태워 보내는 일에 최선을 다했고, 익숙해진 둘째 주부터는 걷기 운동을 시작했다. 아이가 탄 버스가 떠나면 바로 집에 들어오는 게 아까워서 집 앞 공원으로 향했다. 첫날은 즉흥적으로 신고 나온 그대로 슬리퍼를 신고 걸었고, 둘째 날부터는 운동화를 챙겨 신었다. 

공원에 가서 느끼는 아침의 부지런한 기운이 좋다. 나만 빼고 다들 이미 부지런했던 건지, 이른 아침부터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이 신기하고, 부지런히 연을 날리는 사람들도 신기하다. 아침 7시인데도 이미 운동을 끝내고 돌아가는 사람들을 우러러보게 되었고, 걷기 2주 차가 되니 나 홀로 익숙해진 낯익은 걷기 동료들도 보인다. 


다시 시작된 새벽 일상이 반갑다. 바깥으로 나가는 아침 일상이 좋아졌다.

어린이도 대견하고, 나도 대견하다. 


늘 조급했던 마음을 이제 내려놓고 천천히 가려고 한다. 지금보다 한 시간쯤 더 일찍 일어나고 싶지만 아직은 욕심이라는 것을 안다. 대신에 놓치고 있었던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회복해가려고 한다. 체력도, 시간도, 부지런함도, 글쓰기도...


어린이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덕분에 걷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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