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행기 : 먹는 게 남는 거다.
나 : 한국에 가면 제일 먹고 싶은 게 뭐야?
아이 : 글쎄...
나 : 잘 생각해봐. 먹어봤던 것도 있을 거고... 텔레비전에서 본 것도 있을 거고...
아이 : 음... 제일 먼저... 구슬 아이스크림을 먹을 거야!
나 : 겨우 아이스크림?
아이 : 응. 베트남에 있던 건 없어졌고, 못 먹은 지 3년 됐잖아.
나 : 음식 말이야 음식. 생각해봐.
아이 : 음... 음... 배스킨라빈스? 한국은 맛이 다양하다며.
나 : 아이스크림뿐이야?
아이 : (골똘히...) 냉면? 냉면 먹고 싶다!
8월.
한국에 다녀왔다.
베트남에 있는 다른 한국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한국 가서 먹고 싶다는 게 많다는데 우리 집 어린이는 먹고 싶은 게 없단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베트남으로 뭘 보내줄까 물어봐도 고작 삼촌들에게 말하는 것은 솜사탕이고, 초콜릿이다. 그 덕에 가끔 항공택배를 받을 때면 박스 안에는 빠짐없이 솜사탕과 초콜릿이 들어있었다. 하지만 그 사이 어린이의 팔랑거리는 취향은 변해버렸고, 거들떠보지 않아 집에 쌓여가는 솜사탕과 초콜릿은 내가 수업을 하며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다.
해외에 살다 보니 어린이의 한국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것은 어쩔 수 없다. 한국에 가면 뭘 하고 싶은지, 어디에 가고 싶은지 물어봐도 대답은 단순했다. 아트박스에 가서 슬라임만 사면 되고, 애버랜드에만 다녀오면 된다고 한다. 아는 게 없으니 그럴만하다. 3년 동안 베트남에 꼼짝없이 갇혀있는 동안 애써 쌓아 둔 추억들마저 희미해졌으니 말이다. 열한 살의 기억이란 그런 것이다.
아이와 달리 한국에서 30년 넘게 산 나는 추억 부자다. 먹고 싶은 것도 많고, 가고 싶은 곳도 많다. 새로운 음식, 유행하는 메뉴도 많다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고 나니 기억에 남는 것은 추억의 음식이었고, 함께한 사람들이었다.
#우리 젊은 날의 닭갈비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같이 다닌 고향 친구 미영이를 만났다. 장소는 13년째 변함없는 닭갈비집에서였다. 철판에 볶아 먹는 뼈 없는 닭갈비는 다른 사람이 아닌 미영이와 먹어야 제맛이 난다. 대학교 다닐 때부터 결혼해서 베트남에 오기 전까지 가장 많이 먹은 음식이니 우리의 만남에 닭갈비가 빠질 수 없다.
우리가 간 날 아침에 에어컨이 고장 났다며 식당 안은 더웠다. 폭염의 날씨에 불 앞에 앞에 앉아 있는 것이 조금 힘들긴 했지만, 그럼에도 지금도 변함없이 먹으러 갈 수 있는 닭갈비집이 있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나 왔어."
"닭갈비 먹어야지."
"당연한 거 아냐?
우리 젊은 날의 닭갈비. 뭐 그리 재미있다고 닭갈비 앞에서 그렇게 까르르까르르 웃었는지.
#홍천에서 만난 숯불닭갈비
어린 시절 우리 가족의 단골 외식 메뉴는 숯불닭갈비였다. 산 중턱에 지어진 옛날 집을 그대로 사용한 식당에서 숯불에 뼈 있는 닭갈비를 구워 먹고 마지막에는 닭죽을 먹는 코스였는데, 산속에서 뛰어놀기도 하고 맛있게 먹을 수도 있으니 우리 삼 남매에게는 최고의 외식 메뉴였다.
언젠가부터 더 이상 우리 가족은 산 중턱 숯불닭갈비 집에 가지 않았다. 산을 재정비하면서 식당이 없어졌다고 했다. 그 후로 어른이 되어서까지 숯불닭갈비를 먹을 기회는 없었다. 가물가물하게만 남아있던 추억의 음식을 친정 식구들과 홍천 여행 갔다가 들린 식당에서 만났다. 산 중턱은 아니지만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이 생각날 만큼 맛있었다. 엄마 아빠를 따라다니던 꼬꼬마들이 어느새 커서 부모님을 모시고, 자식까지 데리고서 3대가 숯불 앞에 모여 닭갈비를 뜯고 있을 줄이야.
어린이에게 "라떼는 말이야~"하며 추억의 맛을 전수해주고 싶었지만, 식당 가는 길에 큰 외삼촌의 짓궂은 장난에 눈물을 터뜨린 어린이는 맛있는 음식을 눈앞에 두고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눈물 콧물만 훌쩍이던 녀석과 음식에 대한 추억을 쌓기 위해 다시 한번 먹으러 가야겠다.
#. 여름은 막국수
베트남에 살면서 한국 가면 꼭 먹고 와야겠다고 비장한 다짐까지 하게 되는 음식은 막국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우리 집에 첫 자동차가 생겼다. 빨간색 프라이드. 아빠는 그 작은 차에 삼 남매를 태우고 참 많은 곳을 다니셨다. 일하면서 틈만 나면 비행기를 타고 떠났던 내가 누굴 닮았나 했더니 아빠를 많이 닮았나 보다.
아무튼 우리 가족이 자주 갔던 곳은 천서리 막국수촌이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그 이름 봉천막국수, 홍원막국수. 어린 나이에도 식당에 자리 잡자마자 주전자 가득 뜨끈하게 주는 육수가 좋아서 몇 컵씩 마시곤 했다. 식구는 다섯인데 딱 하나밖에 시키지 않았던 수육은 왜 이리 입에서 살살 녹으면서 맛있는지. 한 점 더 먹고 싶은 마음도 육수를 호록 호록 마시면서 달랬다.
막국수집을 가기 위해 차를 배에 태워 강을 건너는 재미도 있었지만, 시원하게 감칠맛 나는 그 집 막국수는 주기적으로 먹지 않으면 서운할 만큼 맛있었다. 지금도 입안 가득 맛이 맴돈다.
몇 년 전 한국에 오니 친정 집 근처에 맛있는 천서리 막국수집이 생겼다. 냉면이 먹고 싶다는 어린이를 데리고 막국수를 먹으러 갔다. 그리고 그 집에서 어린이는 그 시절의 나처럼 막국수와 사랑에 빠졌다. 그 후로 어린이는 먹고 싶은 음식이 뭐냐고 물으면 늘 "막국수!"를 외쳤다.
한국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먹고 싶은 음식도 역시 막국수였지만, 빠듯한 시간 때문에 다음 한국 방문을 기약하기로 했다. 호치민에 한인 식당이 많이 생겼어도 막국수 맛을 제대로 내는 집은 아직 없다. 일 년 내내 한국으로 막국수 먹으러 갈 날을 기다리는 동지가 생겨서 기쁘다.
벌써 베트남으로 돌아가야 돼?
떠나는 게 아쉽다며 어린이는 울었다. 제법 큰 녀석은 이번 여행에서 나만큼이나 한국을 즐겼다. 열한 살 '자기 주도 여행'의 시작이다.
눈만 뜨면 어디로든 나갈 수 있는 한국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바쁘게 다니고, 열심히 먹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포켓몬빵 사는 대열에도 동참해보고, 눈에 띄는 대로 구슬 아이스크림도 사 먹었다. 내 눈에는 안 보이는 구슬 아이스크림 냉장고는 왜 그리 어린이의 눈에만 잘 띄는지. 포켓몬빵은 결국 얻지 못했지만, 베트남에서는 할 수 없는 경험들이 새로웠다.
가족들을 만나고, 엄마의 친구들을 만나 다양한 음식을 맛보면서 어린이는 어른의 식성을 배웠다. 겁 없이 도전한 매운 비빔면도 좋아하게 되었고, 뼈해장국을 즐겨 먹었다.
다시 돌아온 심심하고 단조로운 일상에서 이제는 말 좀 통하는 어린이와 계속해서 한국의 추억을 곱씹는다. "그거 참 맛있었는데..."
역시 먹는 게 남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