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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 Jul 15. 2022

방학에는 뭐해요?

방학의 무게

지인 : (까똑) 방학인데 아이와 어떻게 지내요?
나 : 별다를 거 있나요? 놀기도 하고, 공부도 하면서 지내네요.
지인 : (까똑) 다들 그런 거 알면서도 궁금하네요.
나 : 심심하다고 할 때도 있는데... 하루는 참 부지런히 빠르게 지나가네요. 


방학의 무게가 느껴지는 아이 친구 엄마의 연락을 받았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 귓가에 하루 종일 들리는 "심심해 심심해 심심해..." 나라고 방학이 별다를까. 방학 전부터 두 달의 여름방학을 도대체 뭘 하면서 보내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하루하루 시간은 잘 흘러가고 있다. 중간에 애매하게 2주간 한국 방문 일정이 있어서 방학 특강 보내는 것은 포기하고, 방학은 방학답게 조금 심심하더라도 여유롭게 보내기로 했다. 


주변의 한국 가정 대부분은 방학을 하자마자 한국에 갔다. 다들 코로나로 인해 2, 3년 동안 가지 못한 한국을 벼르다시피 해서 아이들 방학과 동시에 그날 밤 비행기로 떠났다. 만날 친구가 없으니 심심하긴 하지만, 늦잠 잘 수 있는 방학을 외동아이는 느긋하게 즐기고 있고, 아이와 내내 붙어있어야 하는 나는 평소보다 조금 더 분주해졌을 뿐이다.

방학에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아도 돼서 좋다. 새벽부터 스쿨버스를 놓치지 않으려 종종거리지 않아도 되고, 외출했다가 아이 하교 시간에 맞춰 급하기 들어오지 않아도 된다. 요일마다 다른 아이의 하교 시간을 기억하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고, 학교에서 자주 날아오는 이메일을 혹여나 놓칠까 봐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 아이는 마음껏 놀아서 좋고, 나는 긴장을 풀 수 있어서 좋은 방학이다.


매일 아이를 등교시키고 하던 조깅은 아이에게 간청해서 일주일에 두 번 정도 같이 나가서 뛰고 있다. 조깅의 정착지는 언제나 놀이터다. 기운이 넘칠 때는 아이가 노는 동안 놀이터 주변을 뛰고, 보통은 아이 근처에 앉아서 구경한다. 공원에 나가자고 간청을 하는 것도 나였지만, 제발 좀 집에 가자고 애원하는 것도 결국 나다. 나도 어렸을 때 저렇게 에너지가 넘쳤을까 싶을 정도로 아이는 더운 날씨에도 쉼 없이 뛰어다닌다. 나는 그런 놀라운 능력을 가진 아이를 보며 격하게 박수치기도 하고 웃어주기도 하며 환호해주는 방청객이다.

장을 보는 횟수도 방학 전보다 잦아졌다. 아이와 집에 있으면서 되도록 집밥을 먹으려고 하니 냉장고를 채우기 바쁘다. 먹는 양도 적고, 간식도 잘 안 먹어서 또래보다 작고 마른 아이가 이번 방학에는 밥을 먹고 돌아서기만 하면 배가 고프다고 아우성이니 얼씨구나 장 보러 간다. 하지만 결혼 13년 차, 베트남 생활 13년 차가 되어도 여전히 장 보는 일은 어렵다. 베트남의 낯선 야채들 가운데 반가운 건 오이와 배추다. 그렇다고 아쉬울 것도 없으니 장보기 실력도, 요리 실력도 늘지 않고 늘 익숙한 것만 찾는다. 밑동이 붉그스름한 팔뚝만 하게 긴 시금치를 종종 사고, 된장국에 넣으면 아욱국 비슷한 맛이 난다는 야채를 가끔 산다.   


아이와 함께 장을 보러 간 날 저녁 메뉴는 월남쌈. 면을 사서 물에 불려 삶고, 자랑할 것 없는 여러 야채를 썰고,  간 고기에 불고기 양념을 재워 볶고, 어른과 아이 취향에 맞는 크기의 라이스페이퍼를 준비했다. 요즘은 CJ 베트남에서 만든 라이스페이퍼를 사 먹는데, 잘 안 찢어지고, 식감도 더 좋다. 


월남쌈에 대해서는 억울한 게 좀 있다. 야채를 배불리 먹었을 뿐인데, 다음 날 아침 몸무게를 재보면 늘 1킬로가 올라가 있다. 코끼리도 풀만 먹고 살쪘다더니, 방심하고 너무 먹었는가 싶지만 억울한 건 억울한 거다. 


방학 동안 아이는 나와 같이 주말 수업하는 미술 선생님 찬스로 그림을 그리러 간다. 미술학원에서 아이는 또래 아이들과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 시간에 나는 근처를 배회하며 구경하기도 하고, 책을 읽는다. 가끔은 아이들 틈에서 5년째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는 그림 작업을 한다. 사연 많은 그림이지만, 버리기에는 소중한 아이의 추억이 담긴 것이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이번 기회에 완성하기로 했다. 그림도 그리고, 수업 중간중간 쉬는 시간에 미술 선생님과 주말 수업 의논도 하고, 밀린 이야기도 나누다 보면 또 방학의 하루가 훌쩍 지나간다.


아이와 외출할 때면 책을 다섯 권쯤 들고나간다.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을 읽게 된다. 나는 책을 읽는다지만, 아이 눈에는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엄마일 수 있으니, '엄마는 핸드폰 하면서 나에게만 못하게 한다'는 서로의 억울한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모범을 보이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꽂아두기만 하고 읽지 못하던 책들을 읽어나가는 시간이 방학이기도 하다. 


아이는 컸다. 그래서 방학인가 보다. 더 잘 먹고 잘 자라고, 좀 쉬라고 주어진 시간.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던 아이는 어느새 나를 배려하는 아이가 되어 있고, 마트에서 무엇을 사야 하는지 조언을 해주는 그런 아이가 되어 있었다. 


아이 : 엄마, 아빠가 한국에 가면 운동화 사달래. 운동할 때 신을 가볍고 시원한 운동화.
나 : 그래?
아이 : 그리고 아빠가...
나 : 왜 네 아빠는 너한테만 그런 얘기를 하니?
아이 : 그야 내가 물어봤으니까 그렇지.


아이는 나뿐만 아니라 아빠도 배려하고 있었다. 혼자 베트남에서 지내고 있을 아빠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따뜻함이 아이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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