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 번 먹자
스물다섯. 참 좋은 나이.
25살 한국인 인턴과 점심을 먹었다. 밥도 사고 커피도 사주었다.
“커피는 제가 살게요.”
“아니야. 오늘은 내가 다 사준다고 했잖아요.”
오랜만에 일을 하다 보니 25살에게 말을 놔도 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마음 편히 존댓말을 쓰고 있다. 이럴 땐 영어가 편하다. 팀원들 모두 나보다 어리지만 존댓말 없는 영어로 소통하다 보니 나이차를 생각하지 않게 된다. 물론 그런 자세한 걸 신경 쓸 만큼 언어가 여유롭지도 않다.
그 친구를 보면 종종 그 나이였던 내가 생각난다. 열심히 일하고, 재미있게 살았던 그 시간들이 떠오른다. 잊고 있던 내 젊은 청춘을 기억하게 해 줬으니 밥 한 번쯤 은 크게 살 수 있다.
팀에서 막내였을 때 선배들은 나에게 ‘밥 잘 사주는 고마운 선배들‘이었다.
“나중에 너도 선배 되면 후배들한테 사주면 돼.”
주머니 사정 가벼운 나로서는 그 말이 참 고마웠고, 나도 그런 선배가 되고 싶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 나이에도 어쩌다 보니 속해 있는 교회 소모임에서 막내다. 만나면 그분들은 나이 40 넘은 나를 막내라며 예뻐해 주시고, 밥도 사주시고 커피도 사주신다. 과분한 사랑이 늘 감사하다.
어린 스물다섯 살 친구에게 밥을 사주는 것도 내가 받은 것들을 흘려보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이런 한국의 정 문화가 좋다. 따뜻하다. 윗사람이 아랫사람들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는 느낌이 참 좋다. 선배라고 항상 다 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어리다고 늘 받기만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때때로 느껴지는 그 마음 씀씀이가 좋다. 선배의 허세라는 말은 쓰고 싶지
않다. 강요가 아닌 자발적 씀씀이라고 해야 할까?
택시비가 아까워서 오토바이 택시를 탈 때가 많지만, 이렇게 밥 한 끼 사는 돈은 아깝지 않다.
해외에 있으면 한국의 소식은 주로 인터넷으로 알게 된다. 사회가 개인주의적인 분위기로 변해가는 듯한 뉴스를 보면 아쉬웠는데, 이 인턴 친구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아서 다행이다.
“오늘 너무 감사했어요. “
“나도 그동안 그렇게 받고 살았는데요. 받은 대로 또 이렇게 하는 거고.”
“저도 나중에 그런 진짜 어른이 되고 싶어요.“
참 말도 예쁘게 하는 스물다섯 살이다.
몇 달 뒤면 한국으로 돌아가 졸업을 하고 취업할 예정이라는데, 어디서든 잘할 것 같다. 어디서든 잘했으면 좋겠다.
베트남 인턴이 사준 파인애플 주스.
누군 사주고, 누군 안 사주는 거 아니다.
자기가 사겠다고 우겨서 얻어 마셨다.
이 날도 밥은 내가 샀다. 시장 쌀국이긴 했지만.
한국 돈으로 천원. 한 번 쪽 빨고 나면 얼음만 남는 주스였지만, 시원하고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