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은 말입니다.
지랄 총량의 법칙이 있다고 한다.
말의 뉘앙스는 세지만, 누구나 인생에서 겪는 힘든 일의 총량은 비슷하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자녀 이야기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어느 분은 아이가 어릴 때는 말도 잘 듣고 착한 아이였는데, 30대가 된 아들이 한 번씩 사고를 쳐서 그걸 막느라 힘들다고 하신다. 또 다른 분은 아이가 학교 다닐 때 너무 힘들게 했는데, 어른이 되어서는 알아서 취직도 하고, 용돈도 선뜻선뜻 줘서 마음이 놓인다고 하셨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주변에서는 지랄 총량의 법칙을 말한다.
정말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내심 아니었으면 싶은 마음이 있다. 내 아이의 길은 지금처럼 늘 평탄했으면 하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를 생각하면 이 법칙이 맞았으면 좋겠다. 너무 힘들었던 시간들이 내 인생을 통틀어 지랄 총량의 전부였기를, 그래서 앞으로 내 남은 일생은 꽃길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문득 글쓰기에도 총량의 법칙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물론 이 부분에서 뛰어난 작가님들은 모두 제외다. 그저 ‘나’라는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의문이다. 요즘 나는 회사에서 그날 써야 할 모든 글쓰기량을 소진하고 있는 듯하다. 게다가 두 개의 일을 병행하다 보니 ‘나의 글쓰기’ 영역에 쓸 에너지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다. 글쓰기 총량의 법칙은 핑계다. 그저 하루의 끝 무렵에 나의 에너지가 고갈되었기 때문이고, 그 시간에 글쓰기가 생각난다는 건 나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기 때문이다.
요즘은 다시 정신 차리려고 노력 중이다. 일에 너무 올인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신경 쓰고 있다. 사실 직원들을 봐도 그렇다. 분주하고 바쁘고 걱정하는 건 나 혼자다. 정해진 디데이에 월차를 냈으니 전날로 디데이를 바꾸자고도 하고, 또 다른 직원은 아직 준비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디데이 전날 월차를 쓰기도 했다. 또 한 친구는 갑자기 디데이 전날 나오지 않아서 물어보니 재택근무 중이라고 했다.
당황하는 나 혼자였다. 나라 문화 차이인지, 세대 차이인지는 모르겠다. 다행히 프로젝트는 이런 상황에도 무사히 끝났다. 문제가 생겼으면 내가 할 말이 많았겠지만, 문제없이 성공적으로 끝나서 할 말도 없어졌다. 조금은 내가 느긋해도 되겠다. 그래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경험으로 또 배워간다.
그날 이후 나도 무리하지 않는다. 눈치 보지 않고 일정을 조정한다. 그렇게 이들(나라든 세대든)의 문화와 정서에 젖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워라밸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생각할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하는 거였다. N잡러도 마찬가지. 결국은 끊임없이 얘기하는 시간 관리다. 글쓰기 총량 법칙 따위 운운하지 말자.
어렵다.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