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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 Dec 27. 2019

나는 매일 거실로 출근한다

서브 작업실을 오픈했다

작업실을 하나 더 오픈했다. 일이 번창해서는 결코 아니고. 

거실에 메인 작업실을 두고, 내 침실 창문 옆에 작은 테이블을 두어 작업 공간을 추가로 마련했다. 현관에 있는 테이블이 계속 눈에 걸렸는데, 버리기엔 아까워서 지나다닐 때마다 고민하다가 방에 들여다놓고 작업 테이블로 삼으니 이제야 제자리를 찾은 듯하다.

내가 거실로 출근하기 시작한 지 세 달이 넘을 무렵, 남편도 거실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회사 사무실을 정리하고 직원들과 함께 우리 집 거실로 출근하게 된 것이다. 이중으로 나가던 렌트비가 하나로 줄어든다는 생각에 얼씨구나 두 팔 벌려 남편과 직원들을 환영했다. 남편이 사용하던 방 하나와 거실이 회사 사무실이 되었다. 호치민의  복합 주거공간이랄까.

내가 '나'라는 사람으로 다시 일어서게 해 준 거실 작업실을 렌트해주고, 나는 서브 작업실로 자리를 옮겼다. 오전에 서브 작업실에서 일하고, 점심 무렵에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러 나가니 남편의 오피스가 거실에 차려져 있다 해서 불편할 일은 별로 없다. 되려 불필요하게 거실을 어슬렁거릴 없이 방에만 있게 되니 일이라도 하자 싶고, 밖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기운을 받아 나가기 직전까지 일을 하게 되니 시너지 효과도 나는 듯하다. 

8시 15분이면 출근하는 베트남 직원들 덕에, 나의 출근 시간인 9시 전까지 누리던 호사 대신, 거실을 집이 아니 오피스 분위기를 내기 위해 매일 아침 부지런히 정리를 한다. 전날까지 아이의 흔적으로 가득했던 거실과 테이블을 정리하고, 일할 맛 나도록 가정집 분위기를 최대한 줄이려 하고 있다. 그 덕분에 짐도 많이 버리다 보니 미니멀해진 거실이 만족스럽기도 하다. 뭐든 생각하기 나름일 테니. 

집안에 사무실 하나, 작업실 하나 이렇게 2개나 생겼지만, 아직까지 상황적으로 나아진 것은 없다. 남편이 나가던 사무실을 정리하고 집으로 사무실을 옮겨온 것이 속상하지 않았을 리 없다. 울기도 울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걸 이 나이 정도 되면 안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상황을 정리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 또한 안다. 어쩔 수 없다 생각하고 차라리 마음을 내려놓으니니 받아들여졌다. 그저 이제는 내가 몇 달간 공들인 기획서가 잘 통과되어 기회가 찾아오고 내가 경제 독립할 수 있기를, 내가 나로 살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 사이 다행히 일은 많아졌다. 파트타임 일은 계속하고 있고, 나 홀로 준비 중인 기획서도 올해가 지나기 전에 마무리해야 했고(12월 24일. 드디어 기획서를 보냈다!), 몇 해 고사하던 교회 성탄 행사 준비도 참여했다. 유일하게 돈 버는 일은 파트타임일 뿐이지만, 그래도 11월과 12월을 참 열심히 바쁘게 살았다. 

침실에 서브 작업실을 만들고 나니 야근이 잦아졌다. 아이를 재우고서 책상에 앉아서 일하는 습관이 생겼다. 늦게까지 작업을 하고 싶어도 잠이 쏟아져 밤 10시를 넘기지 못했는데, 요즘은 새벽 1시, 2시에 자는 일이 빈번해졌다. 수면장애가 있어서 오후에는 커피를 안 마시던 내가 요즘은 밤에 커피를 마셔도 눕기만 하면 단잠을 잔다.

바빴고, 여유 없이 두어 달을 살다 보니 책을 읽는 것이, 컴퓨터 앞에 앉아 부담 없이 글을 끄적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알게 됐다. 안타깝게도 지난 2달 동안은 책을 한 번 펼쳐보지도 못했다. 오늘에서야  2019년 내가 글쓰는 사람으로서 해야할 모든 일을 마무리했다. 나머지는 새해에 다시 시작하는 걸로. 대신 읽다만 책을 꺼냈다. 

교회 성탄 행사로 대본 2개를 써주고, 연출을 맡아준 대가로 받은 작가료, 커피 한 잔. 

최근 마신 커피 중 가장 시원했고, 기분 좋았다.


성탄 축제 당일, 무대 진행을 위해 분주히 뛰어다녔다. 글만 쓰는 작가가 아니라 현장을 뛰어다니는 작가였기에 여전히 익숙하고, 즐겁게. "언니! 지금 너무 멋있다. 너무 잘 어울려. 살아있는 거 같아." 그 말에 나는 울어버렸다. 고마워서...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로 누군가에게 인정받는다는 것은 정말 감사해서.

앞으로도 나는... 그렇게 살고 싶다. 


그리고 나는 내 거실 작업실의 기운을 믿는다. 나를 일어서게 한 것처럼 남편 또한 거실에 차린 사무실에서 승승장구할 것을. 2020은 정말 해피 뉴이어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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