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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 Jun 17. 2021

이러다 향수병에 걸리겠다

한국에서 유행했던 먹방을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지만) 호치민에 살면서 본 기억이 별로 없다.

TV 프로그램을 챙겨보기도 힘들고, 한국에서야 TV에서 본 걸 바로 찾아가 먹을 수 있지만, 외국에서는 그저 그림의 떡이기 때문이다.


쇼핑도 돈이 있고, 살 게 있어야 눈에 들어오는 것처럼 먹을 것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맛깔나게 표현을 해도 내 입에 들어오지 않으니 그리움만 쌓인다.


봄이 되면 나도 봄나물이 먹고 싶다. 돌나물과 초고추장을 넣어 밥 비벼 먹고도 싶고, 이제는 느낌조차 잊혀진 봄동 무침도 먹고 싶다. 좋아하는 냉이 된장국과 달래된장국은 지금도 입에 맴도는 맛이다. 시어 빠진 베트남 딸기 말고 세계 최강 한국 딸기도 원 없이 먹고 싶다.


여름이 되면 참외와 포도를 끌어안고 먹고 싶다. 열무국수와 열무비빔밥도 먹고 싶다. 어디 가까운 데라도 여행 가서 지역 토속음식을 먹어 보고 싶다. 낯선 식당에서 기대하며 기다리는 그 시간을 즐기고 싶다. 막국수도 먹고 싶고, 초당순두부도 먹고 싶다. 시원한 냉면도 먹고 싶다. 뜨거운 육수도 한 컵 마시고 싶다. 그리고 여름의 마무리는 빙수다.


가을에는 다른 것 필요 없이 김장 김치소와 굴을 배추 위에 올려 먹고 싶다. 너무 많이 먹어 배가 아파도 괜찮을 것 같다. 아삭 거리는 사과도, 과즙 넘치는 배도 먹고 싶다.


겨울에는.... 겨울에는... 차가운 발 동동 구르며 어묵도 먹고 싶고, 호떡도 먹고 싶다. 다른 반찬 필요 없이 밥만 말아먹어도 되는 시래기국도 그립다. 겨울에만 먹는 건 아니지만 추운 겨울 바닷가에서 회도 먹고 싶다. 아나고, 광어, 낙지회. 미식가는 아닌지라 기본이면 된다. 귤도 먹고 싶고, 한라봉도 먹고 싶다. 몇 년 전 알게 된 천혜향이라는 것도 다시 먹어보고 싶다.


요즘은 더 맛있고 좋은 것도 많겠지만, 나는 이런 게 먹고 싶다. 오늘 어느 인스타에서 귤 공구한다는 글을 보고 부러웠다. 나도 맛있는 귤 먹고 싶은데...


베트남 열대과일도 맛있긴 하다. 요즘 제철인 리치도 맛있고, 한국보다 아주 많이 저렴한 애플망고도 맛있다. 그래도 결국 입맛의 고향은 한국이다. 한 달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미국산, 호주산 사과 말고 한국 사과를 한국에서 먹고 싶다. 작고 씨 많은 신 귤 말고 제주 감귤이 먹고 싶다.


한국에 다녀올 수 없다는 생각에 더 간절한지 먹고 싶은 게 화수분처럼 생각난다.

꼬막 위에 양념 올린 것도 먹고 싶고, 바지락 칼국수 집 겉절이 김치도 먹고 싶다.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들을 만나면 늘 먹었던, 그래서 지금도 한국에서 만나면 먹는 닭갈비도 먹고 싶다. 무침만두가 맛있는 추억의 그 집에서 즉석떡볶이도 먹고 싶다.


그래서 가끔 꽂히면 만사 제쳐놓고 요리를 한다.

마트에서 파는 부서지는 도토리묵에 화가 나 도토리묵은 직접 쑤어 먹는다. 김치찌개 같은 부대찌개에 실망해서 베이컨과 베이크 빈이 듬뿍 들어간 부대찌개도 만들어 먹는다.

길거리 떡볶이가 먹고 싶어서 인터넷에 올라온 수많은 레시피로 만들어보다가 이제는 내 입에 맞는 레시피를 찾았다. 그래도 여전히 길거리 떡볶이는 그립다.

김치 맛집을 헤매다가 김치 만드는 데 취미가 생겨버린 남편이 만든 김치를 먹기 시작한 지도 꽤 오래됐다. 가끔 운 좋으면 설렁탕집 깍두기 맛이 나기도 한다.

며칠 전에는 계속 입에 맴도는 김말이 튀김을 만들어 아이에게도 맛의 신세계를 열어주었다.


베트남에서 나고 자란 아이는, 게다가 요리에 취미가 없는 엄마를 둔 아이는 한국 음식에 대한 추억이나 선호도가 별로 없다.

한국에 가서 뭐 먹고 싶냐고 하면 대답을 못한다. 그래도 언젠가 이 아이도 그리워할 한국의 음식이 생겼으면 좋겠다. 한국의 정서를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루 세 끼를 집에서 해 먹는 요즘, 매 끼마다 뭘 먹을지 고민한다. 그럴수록 한국의 맛이 더 그립다. 그래도 나는 먹방을 안 본다. 대리만족으로는 내 식탐이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제 남편이 김치를 새로 담궜으니 내일은 칼국수를 막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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