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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 Jun 21. 2021

놀면 뭐하니, 아이에게 프랑스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놀 땐 뭐다? 공부다.

월요일 자정부터 시작될 거라 예상했던 새로운 지시령은 일요일 아침 눈을 뜨니 이미 시행 중이었다.

호치민 내 대중교통인 버스와 택시 운행 정지. 하지만 오토바이 택시는 운행 가능하다. 그리고 3인 이상 모임은 금지한다.

Grab에 들어가 보니 bike 앞에 있어야 할 자동차 표시가 사라져 있다. 할 수 없이 조심스럽게 약속했던 오늘의 일정을 취소하고 집콕 모드를 시작했다.


어떡하지?

눈을 뜨자마자 심심하단다. 그럴 만도 하다. 누구는 이 시국에 매일 집으로 아이 친구들이 드나들어서 걱정이라 하시는데, 우리 집 아이는 락다운 이후 친구를 만나지 못했다.

작년 락다운 때는 같은 동 친구와 양쪽 집 문턱을 하루에도 몇 번씩 넘어 다니며 심심할 새 없이 지냈는데, 그 친구는 지금 쿠웨이트로 떠나고 없다.


아이 : 엄마 오늘부터 나랑 프랑스어 공부하자.

엄마 : 그래, 좋아.

아이 : 잠깐만. 준비 좀 할게.


처음 학교에 들어갔을 배운 노트와 책을 가지고 욌다. 오늘의 수업 계획표까지 만들어서 나름 체계적인 수업을 했다.


*a와 i 발음하기

*un / une 구별하기

*필기체 따라 쓰기.


심심하다는 아이에게 놀이처럼 접근했다가 진짜 프랑스어 수업을 받았다. 쪽지 시험도 보고, 책도 읽었다. 필기체 쓰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대문자는 (위로)  칸에 맞춰 ,
a  칸이야.
b 3칸이고, d  칸이야.


오늘은 f까지만 배우겠다고 사정을 하고 수업을 끝내자니 안 된단다.

남성 명사와 여성 명사에 대해 알려주지도 않고 문제를 풀라고 하길래 단어 그림의 느낌적인 느낌으로 남자인지 여자인지를 찍어서 문제를 풀었다.


나 : 남성 명사와 여성 명사를 나누는 기준이 뭐야?

아이 : 그건 나도 몰라. 그냥 그렇게 외우라고 해서

       외웠어.


처음 언어를 배울 때 아이가 얼마나 힘들었을지가 느껴져서 폭풍 칭찬을 해주었다. 이래서 사람은 경험해봐야 하는가 보다. 언어 배우기가 얼마나 힘든지, 공부가 얼마나 버거운 것인지.

아이에게 프랑스어를 배우면서 이제는 공부하라는 말을, 이것도 모르냐는 말을 쉽게 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수업의 마지막은 학생이 궁금한 프랑스어 물어보기. 궁금한 게 없었는데, 선생님이 너무 기대하고 계셔서 “얼마예요?”를 물었다. 음.... 분명히 배웠는데... 따라서 읽고, 쓰기까지 했는데 단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공부한 것을 기억 못 한다고 절대로 뭐라고 하지 말아야겠다.


어쩌다 보니 아이와 역할 바꾸기 수업으로 많이 배웠다. 프랑스어도 조금은 머리에 남은 게 있고, 아이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많이 반성하게 됐다.


오늘로 끝났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아무래도 학교에 가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프랑스어를 배워야 할 듯하다. “엄마, 오늘 프랑스어 수업 어땠어?” 기대에 찬 질문에 담긴 여러 의미. 그래서 무섭다.


코로나는 계속 나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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