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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 Sep 16. 2021

오늘, 그 녀석과 마주쳤다

새벽의 침입자

삐빅 삐빅-

어김없이 4:30 알람. 

새벽 기상의 골든 타임은 5초. 외면하고 싶은 알람이지만 잠시라도 지체하면 그대로 다시 잠든다는 것을 수많은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벌떡 일어난다.

코로나로 외출이 금지된 상황에서 유일한 바깥과 소통 창구인 베란다에서 시원한 새벽바람을 맞다 보면 잠이 깬다. 안전을 생각해서 고층 베란다는 다 막아야 한다고 떠들었는데, 요즘은 이 베란다 덕을 숨을 쉰다. 일 년 내내 더운 베트남이지만, 새벽은 쌀쌀하다. 차가운 바깥공기에 잠을 깨우면서 나 말고도 이 시간에 누가 깨어 있나, 차는 몇 대나 지나다니나 잠시 구경하며 새벽의 쾌감을 즐기는 기쁨도 쏠쏠하다.

새벽은 생각보다 짧다. 역시 놀 때만큼은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 느긋한 여유를 갖고 싶어서 선택한 '아침형 인간'의 삶이지만, 몸은 여전히 분주함을 찾고 있었다. 새벽 To Do List를 만들고 싶은 습관적인 욕망이랄까. 장기적으로는 새벽 출근길을 만들 계획을 갖고 있지만, 지금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찾는 시간으로 보내는 중이다. 벌써부터 무언가 계획하면 새벽부터 잠들기 전까지 하루 종일 분주할 게 뻔하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은 밋밋한 코로나 집콕 일상에서 클리어하는 하루의 첫 미션이고, 오늘도 일어났다는 성취감을 맛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특별한 것을 하지 않아도 특별한 시간이 바로 새벽이다. 

그런데, 새벽 침입자가 나타났다. 눈에 안 띄면 차라리 좋으련만, 늘 그 순간은 놓쳐지지 않는다. 도.마.뱀. 

녀석은 분명 아무도 없는 거실 벽을 제 집처럼 활보하고 다녔을 것이다. 집주인이 나오는 소리에 '앗! 벌써?' 하며 움찔하다가 도망쳐버렸다. 잡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파충류만 보면 얼어붙는 나로서는 온몸이 굳은 채 눈으로만 녀석의 동선을 쳐다보고 있었다. 제발 내 집에서 나가줘 하는 간절함이 전달되길 바라면서. 

아무리 베트남에 오래 살아도 도마뱀만큼은 적응되지 않는다. 존재감이 확실하다. 베트남 어디에나 있는 녀석에게 '나는 바닥을 차지할 테니 너는 벽을 타고 다니렴' 하는 마음으로 공생하기에는 내 두려움이 너무 크다. 나를 잡아먹으려 한 적도, 근처에 온 적도 없는 녀석이지만 불편하다. 이렇게나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는 게 어렵다니. 

너무 방심하고 살았다. 모든 창문을 활짝 활짝 열어 두었더니, 그새 들어왔는가 보다. 오늘 새벽에 발견된 장소는 주방. 물 한 잔 마시러 가기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불편한 존재감. 지금도 긴장한 채로 앉아있다. 나의 새벽 훼방꾼.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손에 잡힐 만해도 왕궁에 있는 게 도마뱀이라는 글을 본 후로는 체념했다. 정말 살만한 모든 곳에는 사는 녀석인데, 왕궁에서도 못 잡는 녀석을 내가 어찌 잡을까. 그저 살면서 내 눈에만 띄지 말아 주기를 부탁할 뿐이다.


"나도 엄마 일어나는 시간에 깨워줘"라고 말하면서도, 늘 늦잠 자는 아이에게 오늘 새벽 목격담은 비밀로 해야겠다. 나는 이제 주방에 못 가겠으니 이것 좀 갖다 달라, 저것도 해달라 할 게 뻔하니 말이다. 


낯선 존재를 인정하며 살아가는 게 가능할까? 어려운 문제다. 솔직히 나는 자신이 없다. 작은 존재에게 내 공간을 공유할 만큼 나는 너그러운 사람이 아니다. 내 주방은 공유 주방이 아니다. 나에게 내 것은 언제나 소중하다. 나는 그런 욕심쟁이다. 그렇다고 이 집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구석구석 뒤져서 찾아내서 쫓아낼 용기도 없다. 단지 내일 새벽에는 서로 오늘과 같은 대치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기를. 


새벽의 따뜻함과 달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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