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폴리오 No.2
나이가 들면서 인간관계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이 들곤 한다. 자연스럽게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어려워지고, 새롭게 사귄 사람들도 학창 시절의 친구들과는 또 다른 벽이 있다. 여기에 지금까지 내 옆에 있어왔던 사람들과의 관계도 매년 새롭게 갱신해야 하는 기분이 든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어렵지만, 지금껏 알아왔던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어렵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장을 갖고, 가정을 가지면서 지인들에게 쏟는 에너지를 다른 곳으로 쏟아야 한다. 그러면서 지인들에게 소홀해지고, 때문에 서로 서운한 부분도 생긴다. 그렇지만 우린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한다. 설령 마음에 스크래치가 날 지언정.
1. 인간관계에서 두려움을 느꼈던 적은 언제인가?
누군가로부터 배신감을 느낀 적이 있는가, 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있는 것 같아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던 것은 그것이 배신인가, 아닌가에 대해서 고민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배신이라고 결론 내리기로 했다. 나의 믿음이 와장창 부서졌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배신감을 느꼈던 사람과 헤어진 뒤에 저 질문을 내게 던졌던 친구와 만남을 이어 보기로 결정했다. 그 사람은 내가 생각했던 '이상형'에 적합한 사람이라 생각되었고, 나는 다시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같은 두려움을 겪고 싶지 않았다. 때문에 '이 사람이다'라는 확신과 함께 만남을 시작했다. 두려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나는 그 만남을 유리구슬 다루듯 했다. 나의 두려움 때문이었던 것인지 유리구슬은 머지않아 조금 미끄러졌을 뿐인데 산산조각 나 버렸다. 이후로는 만남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커졌고 더불어 누군가를 새로 만날 때 '나만의 기준'은 더 날카롭고 까다로워졌다.
이 시기에 나는 무척 힘이 든다는 이유로 지인들에게 꽤나 많이 의지했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또 상처를 받긴 마찬가지였다. 그들도 그들의 삶이 힘들었다. 나의 지나친 의지가 부담으로 다가왔을 수도 있다. 어쩌면 내가 어린애처럼 행동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어느 날 문득 그들의 말이 진심으로 다가오지 않고, 그들에게서 귀찮아함을 느꼈을 때, 나는 인간관계에 대한 큰 회의감을 갖게 되었다. 동시에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외부로의 발산이 아닌 내면으로의 수렴을 통한 치유의 방법을 배워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2. 그 상처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받는다는 것은 내가 사람을 생각보다 쉽게 믿기 때문에 벌어진 일일지도 모른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쉽게 빗장을 열지는 않지만, 나와 마음이 통한다고 생각하면 난 진심을 다하는 성격이다. 때문에 겉으로는 아닌 척, 말은 세게 하지만 속으로는 상대방을 진심으로 믿고 상대방에 대해 늘 진심으로 대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가끔 지나친 진심과 마음속 무장 해제는 나에게 따뜻함을 되돌려주기보다는 얼음송곳이 되어 나를 찌르는 경우가 많다. 한 친구가 이런 나에게 조심스럽게 충고의 한 마디를 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아무리 친한 사람일지라도 적당한 거리와 긴장감이 그 관계를 오래 지속시켜준다.'
그 친구의 말 처럼 난 거리두기에 늘 실패한다. 거리두기에 실패해버리면 자기 방어 체계 역시 무너져 버리고 그 때문에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쉽게 상처받게 된다. 나의 상처는 바로 여기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싶다.
굿 윌 헌팅으로 돌아와서...
윌은 타인으로부터의 상처가 많은 사람이다. 때문에 진정으로 자신을 이해해준 사람인 맥과이어 교수에게 있는 그대로의 진심을 드러낼 수 있게 된다. 고슴도치처럼 자기 방어를 위해 늘 가시를 세우며 살던 윌은 이후 좀 더 건강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It's not your fault",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까닭은 바로 이 속엔 맥과이어 교수의 진심 어린 이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종종 진심어린 이해를 느끼고 싶을 때 나는 이 장면을 돌려보곤 한다. 그 순간 만큼을 나도 위로를 받고 있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