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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 Nov 29. 2018

이제 와

Photo by Y

1.

 이제 와 솔직하게 말해보자면, 나는 너의 감당할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부분들이 점차 버거웠다. 이별을 말할 때 전부 했던 이야기지만 아주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못한 것들.


2.

 이별을 말하는 내내 듣는 너도 괴로웠겠지만, 말하는 내내 나도 저 안쪽 어딘가가 구겨지는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었어.


3.

 오랜 연인과의 이별은 나도 처음이라.


4.

 너와 헤어지고 나서 제일 첫 주는 혼자 대학로를 걸었었는데, 나는 타고난 길치라서 지도를 봐도 봐도 우리가 함께 갔었던 디저트 가게가 어딘지 찾을 수가 없었어. 그래서 결국은 너에게 다시 물어봤었지. 그런데 웃긴 건 나는 그 디저트 가게 주변을 빙글빙글 돌고 있었더라. 네가 말해주자마자 가게는 찾았지만 닫혀있었고. 별 거 아닌 상황임에도 나는 조금 슬퍼졌었어.


5.

 그러다가 문득 우리 관계가 이랬던 게 아닐까 싶었다. 한참 중요한 걸 눈앞에 두고 빙글빙글 돌고 돌다가 , 시간이 지나고 그걸 찾았을 때는 이미 어찌 해볼 수 없는 상태가 된 것 처럼. 닫힌 가게의 문은 언젠가 다시 열리겠지만 내가 직면한 우리의 문제는 열리거나 닫히거나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 처럼.


6.

 다행히 그 날은 날씨가 좋아서 한참을 공원에 앉아있었어. 한 자리에 앉아 같은 노래를 들으며 내가 그렸던 나무를 바라보면서. 너를 기다리며 무언가를 그리던 그 시간만큼 행복했던 건 없을 거 같아. 앞으로도.


7.

 나는 이별을 말하고 나서 내가 너무 이기적인 건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그 순간만큼은 이기적이어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어. 정말 그 순간만큼은.


8.

 원래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영화나 동화는 아름답지만 그 끝은 사실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로 모든걸 말해줄 수는 없다.


9.

 그래도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지내기를 바라.


20181129

이제와 솔직히 말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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