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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 Apr 07. 2021

일찍 온 만큼 일찍 져 버리는 것들에 대해.

 

1. 

 올 해는 유독 봄이 빠른 것 같다. 나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이 봄이 빠르구나, 벚꽃이 빠르구나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더더욱. 봄이 빠르다는 징조는 날씨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느껴졌다. 예를 들어 빠르게 돋아나는 새싹, 때가 다 차지 않았음에도 앞다투어 열리기 시작하는 꽃봉오리. 때가 차지 않았음을 느꼈던 것은 벌써부터 피어나는 라일락 향기 때문이겠지. 

 목련이 다 지기도 전에 뭐가 급하다고 라일락이 피기 시작했다. 벚꽃이 지고 날씨가 더 더워져야 피어나던 보랏빛 꽃. 라일락이 필 때면 다린의 'stood'라는 노래가 꼭 떠오른다. 작년 이맘 쯤 알게 된 노래인데 가사도 음색도 좋아 밤새 손목 끝의 라일락을 떠오르게 만든다. 


2. 

 비단 금방 져버리는 것이 꽃 만인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다 때가 있는데, 요즈음은 내가 너무 빨리 저물어버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3.

 다시 여름이 오길 바라면서, 바라지 않는다. 여름은 항상 점점 더워지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은 이유는, 내가 생각하는 만큼 더위가 무섭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가끔은 선선하게 부는 바람에 낮 동안 더위에 허덕이던 몸을 쉬어줄 수도 있고 친한 친구들과 맥주 한 두잔 기울이는 밤이 심심하지 않으니까. 나는 항상 맥주 이야기를 적을 때 마다 S가 떠오른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우리는 술 한잔, 이라는 단어 중 술만 보아도 서로가 떠오르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처음 글을 브런치에 쓰게 된 것도 S덕분이었다. 취하니까 얼마나 좋아요, 가 나올 수 있었던 동력이다. S와의 지난 술자리들이 없었더라면 아마 나는 브런치 작가가 될 수 없었겠지. 


4. 

 S의 요즈음 술버릇은 내 인생을 책임지겠다고, 나를 호강시켜주겠다고 하는 말이다. 그 말이 당장은 진실이 아닐지라도 언젠가는 내 삶에 무언가를 꼭 주고 말겠다는 S의 술버릇이 너무 어이없고 고맙다. 괜찮지 않은 날 가장 괜찮게 만들어주는 말들이. 


5.

 S와 나의 근래 술자리는 '그래 우리 열심히 살자. 더 열심히 살아보자.'하는 말로 마침표를 찍고 만다. 나는 그럴 때면 '근데 내가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만 술을 한 잔 두 잔 더 먹다 보면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게 되면 약간의 후회를 한다. 아 이렇게는 살면 안 돼. 어이없게 흐흐 웃고 나서는 또 괜찮아지더라. 


6. 

 사람이 피어나는 시기가 있다는 앞의 짧은 은유적인 문장을 수정하고 싶다. 사람은 꽃이 아니라서 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언제나 우리는 나름의 방식으로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비록 지금이 아닐지라도. 져 버리거나 저물어가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을 충실하게 살아갈 수는 없다. 그렇게 살았더라면 나는 벌써 부자가 되었어야지! 내 주변의 속된 말로 '개같이' 열심히 사는 친구들 모두의 삶이 행복했어야지. 노력은 행복과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좀 슬픈 일이지. 


7.

 봄이 끝나간다. 언제 왔었나, 싶지만. 


20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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