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다리가 안 되는 디디, 친구들과의 페이스타임
입원일기 6일차. 오늘은 아침에 회진을 도실 때 다른 문제 없어요? 라고 물어보시기에 책상다리가 안 돼요. 하고 대답했다. 사고 난 이후부터 다리를 쭉 펴고 앉는 것만 버릇이 들어 그런 거 아닌가 하고 혼자 지레짐작만 하고 있었는데, 책상다리가 안 된다는 말을 듣고 의사선생님이 고개를 갸웃했다. 안쪽으로 다리가 안 구부러져요? 아니요, 구부러지긴 하는데 그대로 유지하기에 너무 땡기고 아파요. 선생님은 심각하게 그럼 골반이랑 허리를 같이 봐야할 것 같다고 이야기하셨다. 오 안돼. 얘기하지 말걸.
사실 침 맞는 건 그리 아프지 않지만 뻐근하게 훅 찌르실 때가 있다. 약침을 놓으실 때가 주로 그렇긴 하지만. 그냥 침을 놓을 때도 살이 얇은 부분을 찌르면 아프다. 반사적으로 발을 훅 들어서 의사선생님을 걷어차게 될 까봐 좀 무섭다. 의사 선생님은 긴장을 풀어주고 편하게 해주신다고 계속해서 말을 걸어주시는데 그런 게 괜히 더 죄송하다. 그냥 놓으셔도 돼요. 라고 호기롭게 말해놓고도 뻣뻣하게 굳어있으면 의사선생님이 아파서 그래요? 아픈가요? 하고 두어 번 다시 물어봐주신다. 아프진 않고.. 무서워요.
빠질 수 없는 오늘의 식단 얘기. 아침에는 시래기된장국만 기억난다. 시래기된장국에 밥을 대충 적셔서 먹었다. 먹는 내내 일단 아침은 먹어야 된다. 먹어야 된다는 생각으로 와구와구 넣었다. 아침엔 약을 먹어야되기 때문에 밥을 빼먹을 수가 없다. 한방병원의 가장 큰 특징은 알약이 아니라 물렁물렁한 비닐팩에 담긴 한약을 먹는다는 점. 일단 맛이 없다. 아침 저녁으로 두 번을 먹어야 하는데 양치를 하고 나서도 왠지 구린 한방냄새가 입에 텁텁하게 남아있는 것 같다.
점심 메뉴는 저번에 나왔던 비빔밥 다음으로 베스트 메뉴가 나왔다. 카레와 돈가스 그리고 미트볼과 김치, 고춧가루 단무지 무침. 점심은 싹싹 비웠다. 배가 안 고픈데도 점심을 또 먹으려니까 좀 꾸역꾸역 넣은 감이 있지만. 천천히 씹어 먹었다. 한번 먹을 때 오십 번씩 씹자는 생각으로. 병원식은 좀 싱겁다고 다들 그랬는데, 오히려 여기는 좀 간간한 편인 것 같다. 그래서 난 좋지만.
저녁은.. 별로였다. 하루에 한 번은 맛있는 게 나오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하루에 하나 빼고는 먹을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이지. 눈물이 다 났다. 휴우. 그래서 어제 안먹고 넣어놓은 짜장범벅을 먹기로 결정했다.
병원 복도 끝쪽으로 쭉 걸어가면 코로나 이전에 찜방으로 쓰이던 공간 옆에 간이탕비실 같은 공간이 있는데 나는 거기서 혼자 종종 뭘 부시럭 부시럭 먹는다. 저녁은 대충 두 세 숟갈 정도 먹어놓고 짜장범벅을 먹었다. 사람들이 더 몰리기 전에 얼른 먹고 갈 요량으로 대충 물을 붓고 휘적휘적 저어 먹었다. 어떻게 먹어도 맛있었지만, 솔직히 불닭볶음면이 먹고싶었다. 아니 솔직히 집에 가고싶다.
오늘 오전의 추나치료에서는 다리를 이리저리 비틀고 관절 근처를 쓱쓱 문질러주셨다. 너무 아파서 악! 하고 소리를 지를 뻔 했는데 선생님이 그 순간에 문지르는걸 싹 멈추시더니 아프냐고 물어봤다. 아프다니까 팔뚝에 돌을 슬슬 문질러주시면서 지금 이 정도 강도로만 하고 있어요. 이러시길래 네 괜찮아요. 하고 대답하자 그냥 혹시 오해가 쌓일까봐서요. 하고 농담조로 말씀하셨다. 웃겼지만 웃을 수가 없었다. 너무 아파요 선생님.
여름이랑 페이스타임도 했다. 나는 여름이에게 내 병실 안을 소개해줬다. 물론 내 자리만. 여름이는 평소에 전화하는 것 보다 페이스타임 하는 게 더 재밌다며 내일도 페이스타임을 하자고 깔깔댔다. 여름이랑 다른 친구가 하루에 한 번씩은 꼭 전화를 해 주는데, 그렇게 전화를 해 주는 친구들이 있어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단조로운 일상 몇 개에 친구들 연락조차 없었으면 심심해서 기절해버렸을지도 모르니까.
여름이는 출근하고 단 한 잔만 팔았다면서 가게 매출을 걱정했다. 너 가게도 아닌데 왜 걱정해! 라고 이야기했지만 점장이 닦달하는 게 짜증난다고 이야기했다. 그치 알지. 짜증나지.
S에게도 입원한지 6일만에 전화가 걸려왔다. S는 회사에서 꽤 안 좋은 일이 있었다며 푸념을 늘어놨다. 그리고는 역시 S답게 "너 왜 입원했어. 나 술먹고싶은데."하고 칭얼거렸다. 번갈아서 회사 일이 어쩌고, 술이 어쩌고. 결론은 술 마시고 싶은데 너 왜 퇴원 안해! 였다. 그래 미안해. 내가 미안해. 를 두 번 정도 말하자 그래 미안할 줄 알아야지. 하고 뻔뻔하게 굴었다. 그렇게 20분정도 푸념을 하다가 그제서야 몸은 괜찮냐고 물었다. 빠르기도 하다 얘.
저녁을 먹고 좀 졸렸는데, 돌아다니다 보니 잠이 다 깨버렸다. 오늘은 또 얼마나 있다가 잠을 자게 될까. 좀 일찍 잠들고 싶은데. 밤에 비가 온다는데 자리가 창가랑 너무 멀어서 볼 수가 없다. 창밖을 못 보는 삶. 좀 슬퍼졌다.
20210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