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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 May 01. 2021

입원일기(8)

오늘은 낮잠을 자면서 이상한 꿈을 꿨다.

비오는 날의 기분

 오늘은 비가 내렸다. 아침부터 오락가락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비가 온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지. 오늘은 이것저것 맛없는 밥, 힘들었던 치료 등을 뒤로 미루고 생각해 보면 아침부터 축축 쳐지는 하루였다. 하루에 한 번 아침과 점심 사이에 재는 혈압은 최저를 찍고 말았다. 최고 77, 최저 53. 계속해서 누워있으니 조금 낮아질 수는 있지만 이렇게 낮게 나온 적은 또 처음이다. 혈압만큼이나 기분이 저조했다. 창 밖으론 비 오는 소리가 들렸지만, 병실이 시끄러워서 '비가 오는구나' 이상의 소리는 들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금방 개었다가, 다시 내렸다가를 반복 중인 약한 비였으니까. 

 비 오는 날엔 뭔가 필연적으로 차분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같으면 그래도 일어나 뭐라도 해 보려고 꿈지럭거렸을 낮 두 시에도 나는 누워만 있었다. 누워 있다 잠이 들고, 잠이 들었다가 다시 깨서 꿈뻑이다 잠에 들고를 반복했다. 


 이상한 꿈을 꿨다. 계속해서 앞을 보고 걸었다. 앞에 뭐가 있지? 라는 의문보다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꿈 속에서도 금방 생각은 걷혔다. 의문도 생각도 가지지 않고 계속해서 걸었다. 처음 걸어갈 때는 길을 걷는다는 의식을 못 했는데, 한 번은 여기가 길인가? 하는 생각이 들자 길이 앞으로 계속 계속 나타났다. 옆으로 꽃이 피었다. 화려한 꽃이 아니라 봄에 피는 계란후라이 같이 생긴 풀꽃이었다. 풀꽃이 걸음마다 퐁퐁 피어났다. 조금 더 걸어가니 빨간 지붕으로 덮인 기차역 하나를 지났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꿈속의 나는 병원복 차림에 주머니에도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았기에 우산이 있을 리 만무했다. 기차역에 들어가 비를 피했다. 기차역에서 비 오는 풍경을 바라봤다. 발을 껄렁껄렁 까딱이면서. 내가 지나 온 자리에 꽃이 피어있었고 기차역 반대편으로 길이 생겨 있었다. 쉬고 싶었다. 기차역 지붕 아래서 한참을 앉아있다가 깼다. 

어렴풋한 꿈의 풍경.

 잠에 얕게 들었었는지 밍숭맹숭 한 기분으로 잠에서 깼다. 아주 잠깐 잠들었던 것 같았다. 30분도 자지 않았는데 꽤 길게 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꿈을 꾸면 깊게 자지 못하는 거라고 했는데. 꿈은 단점이 있다. 꾸고 나면 꽤 긴 시간을 보낸 것 같은데 실제로는 전혀 아니라는 것. 가끔은 그 사실이 꿈에서 깨어난 것 자체를 허무하게 만들기도 한다. 


 비 오는 오후에는 동생이 샌드위치를 사다 줘서 그걸 먹었다. 평소에는 정말 참치마요만 먹지만, 동생이 가장 좋아하는 거라면서 스테이크 샌드위치를 사다줬다. 올리브도 고기도 좋아하지만 할라피뇨를 빼달라는 말을 까먹었다. 나는 할라피뇨를 잘 못 먹는 편이다. 할라피뇨의 찌릿한 매운맛이 적응이 잘 안 돼서. 먹는 내내 발끝이 찌릿짜릿했다. 그래도 생각보다는 맛있었다. 

 오후 치료가 다 끝나고 나니 옆 자리 이모가 퇴원하신 다음이었다. 있을 때는 다들 너무 시끄러우신 것 같다는 정중한 생각만 했는데, 실제로 나가시니까 좀 시원섭섭했다. 신기한 것은 한 분이 나간 지금도 병실은 여전히 시끄럽다. 하루 종일 트로트가 나오고 있다. 


 비가 와서 그런지, 무릎이 좀 저리다. 사고 후유증으로 얻은 것도 잃은 것도 많은 것 같다. 


20210501

어 벌써 5월 1일이다. 근로자의 날. 토요일이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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