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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 Jun 23. 2019

두부

그리움


 낯선 동네에서 걷다가 풍경(磬) 소리를 들었다. 딸랑딸랑. 바람이 많이 부는 날씨는 아니었는데 딸랑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마음이 묘하게 같이 울리더라. 요즘은 잘 들리지 않는 소리라서 더 그랬을 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살던 동네에서는 두부 트럭 뒤쪽에 요란한 소리를 내는 풍경이 달려있었다. 두부 트럭이 지나다니며 묵직하고 요란한 풍경 소리를 내면 저녁이 되려나 보다, 하는 생각도 했었다. 


 예전에 살던 동네에서는 아파트 단지가 빽빽하고 좁아서 두부 트럭 소리가 저쪽에서 들린다 싶으면 어느새 코 앞까지 와 있고는 했다. 평소에 두부 부침도, 두부 조림도 잘 먹지 않았었는데 이상하게 두부 트럭의 두부는 맛있어보였다. 엄마는 내가 입맛을 다시는 것을 보면서 하나 사다가 해 줄까? 하고 물었었다. 그러면 나는 고개를 세차게 휘저으며 아냐 안 먹어도 괜찮아 하고 대답하곤 했는데, 어릴 때의 나는 먹고 싶지만 먹으면 안 될것 같을 때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엄마는 웃으면서 두부 한 모 주세요 하고 두부를 사 주었고, 부치거나 졸이지 않고 까만 간장에  살짝살짝 적셔서 먹여주었다. 하얗고 포슬포슬했던 두부. 간장을 반 술 떠서 두부 위에 조르륵 흘리면, 모락모락 나던 고소한 냄새 사이로 짠내가 슬쩍 올라왔다. 

 

 쓰다 보니, 나는 풍경 소리가 어디에서나 들리던 그 동네가 그리웠던 게 아니라 두부가 그리웠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 마주앉아 두부를 나누어 먹던 그 시절이 그리운 건 아닐까. 생각해보면 지금보다 부러울 것 하나 없는데도. 그 시절의 엄마는 아팠고 나는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모르는 것으로는 면죄부를 만들 수가 없다. 그러나 나는 너무 어렸다. 아마 이 얘길 한다면 엄마는 그렇게 말하겠지 너 지금도 엄청 어려, 하고. 엄마한테 나는 아마 계속 어리겠지. 영원히 큰 딸이자 첫 아이. 


 두부 트럭이 털털 소리를 내며 멀어질 때면 딸랑거리는 소리도 덩달아 줄었다. 빽빽한 아파트 사이사이로 옮겨 다니던 풍경소리가 잦아들곤 했었다. 낯선 동네의 풍경 소리는 잦아들기는 커녕 계속 달랑거렸다. 거리의 사람이 줄어들 수록 더 크게 들렸다. 버스 정류장에 앉아 종종 도착하는 어떤 버스도 타지 않고 그저 풍경 소리만을 듣는 오후. 오랜만에 혼자 여유로웠던 오후. 조금 있으면 많이 덥겠구나, 싶어서 슬펐던 오후. 풍경이 햇살에 울리지는 않으니 바람이 선선할 때에 자주 들려야겠다고 생각했던 동네에서의 두부 생각. 


2019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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