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도 나누어 넣어둘 수 있다면
1.
가끔 일상에서 망설이는 순간들이 생긴다. 빨간 펜을 살까? 아니면 노란 펜을 살까. 하는 작은 망설임의 순간. 나는 그럴 때면 둘 중 무엇도 선택하지 못하고 사는 것 자체를 포기하고 만다. 그냥 다음에 둘 다 살 수 있을 때 사야지. 아직은 쓰던 게 조금 남았으니까.
그런 순간들은 부정적인 힘이 있어서 내 마음 한구석을 조금씩 갉아먹는다. 갉작 갉작. 그들이 갉아먹고 사는 것은 내 '용기' 다. 순간의 선택을 좌우하는 것. 별 것 아닌 일에도 조금씩은 꼭 필요한 것. 결정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
2.
갉아먹힌 용기들이 어디로 가는 지는 아직도 모른다. 조금씩 좀먹힌 용기가, 어디에 존재하는 걸까.
3.
작은 것과 큰 것 사이에서 망설이는 용기가 아니라 작은 것과 작은 것 사이에서 고민하게 되는 순간에 더 용기가 필요하다. 어떤 것을 선택해야 맞는 걸까. 그런 선택의 순간에는.
4.
갉아 먹힐 거라면 마음을 보관하는 서랍이 하나 쯤 있었으면 좋겠다. 첫 번째 칸에는 용기를, 두 번째 칸에는 행복을, 세 번째 칸에는 사랑을. 나를 좀먹는 벌레들이 달려들어도 갉아먹히지 않을 서랍이. 그리고 두려움, 망설임, 슬픔같은 마음은 한꺼번에 뭉쳐서 서랍 밖으로 꺼내 두고 벌레들이 먹어비리게 두고 싶어.
2019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