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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 Jul 01. 2019

별로 아무것도 아닌 것들

20180817의 기록, 텀블러에서

 오랜만에 오는 길에 자전거를 탔다.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씩 보였다. 항상 지나다니는 길인데도, 마지막으로 자전거를 탔을때에는 어둡고 비가 추적추적 내렸었는데. 그래서 습한 공기가 목을 죄여서 숨을 헐떡였었는데. 마지막으로 자전거를 탔던 날은 땀과 비에 축축히 젖어 가면서도 강가 옆쪽에 피어나는 꽃들을 보며 숨을 고르기도 했었는데. 


 자전거를 타는 길 옆으로는 강이 길게 있고, 강 안쪽으로는 큰 기둥이 두 개. 비가 오면 여기까지 잠긴다는 표시가 있는. 그리고 강 아랫쪽으로 갈 수 있는 엉성한 돌계단 쪽에는 항상 조그만 낚시용 의자를 펼쳐놓고 하염없이 강 건너편을 바라만 보는 할아버지가 한 분. 비가오는 날이면 조금 자리를 옮겨 다리 밑 쪽으로 와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자면 강 건너편은 영원히 갈 수 없는 미지의 다른 세계처럼 보인다. 사실 올라가서 다리만 건너도 금방인 거리인데. 할아버지는 강 건너편을 보고 계신 걸까, 아니면 강 건너와 같은 다른 과거를 회상하시는 걸까. 자전거가 쉬어가는 다리 밑의 공간에는 벤치가 두 개 정도 떨어져서 놓여있는데 할아버지는 벤치가 아니라 항상 그 엉성한 돌계단에 의자를 아슬히 걸치고 앉아 있다. 

 지나가다가 가끔 멀을 걸어볼까 싶다. 

 뭘 보고 계신가요? 하고. 그럼 뭐라고 대답하실까. 대답을 해 주실까. 되려 나를 이상한 여자라 생각하고 쳐다보는 건 아닐까. 



 매번 이른 아침, 늦은 밤이나 새벽에만 자전거 길을 지나가다가 갑자기 조금 이른 저녁에 길을 지나려니 어색했다. 가서는 안 되는 길을 가고 있는 기분. 아슬아슬한 외발자전거를 타는 기분. 나쁜 일을 저지른 것도, 도망치고 있는 것도 아닌데. '항상' 이라는 이름의 일상이 깨지는 건 이렇게나 새롭고 간닫한 일임을 느끼는 계기도 되었지만서도. 




 내 시선 너머에서 사라지는 해를 보고 있으면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몇 시인지 몰라도 좋다. 크게 울리는 바람 소리, 약간 붉게 빛나는 강줄기를 따라가다보면 나도 괜찮을 것 같다. 몇시인지 몰라도. 언제인지 알지 못해도. 내일도 괜찮을 것 같아. 


2018년 

매일 지나던 자전거도로 위에서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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