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
다음 영상은 무슨 이야기를 해볼까? 나는 하루 종일 스토리를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는 추세라지만 밖에 나가기는 조금 걱정스러웠고, 또 요리하는 영상을 찍자니 남편에게 약간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이유는 #1을 참고해주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한 친구가 우리의 첫 영상을 보고 이게 브이로그인지 요리 채널인지 모르겠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요리를 할 거면 요리를 더 자세히 보여주고, 브이로그라면 요리의 비중을 낮추라고. 그 얘기를 듣고 한참을 생각하다 우리의 첫 영상을 다시 보니 내가 요리 채널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게 보였다. 우리의 이야기를 담자고 해놓고서는 나도 모르게 욕심을 다 버리지 못했었나 보다. 타인의 시선 덕분에 우리 영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고, 나는 완전히 욕심을 버리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우리의 삶과 이야기에 요리가 빠질 수는 없겠지만, 그것은 우리 이야기의 일부이지 전부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요리 채널, IT 리뷰 채널, 뷰티 채널 등 대부분의 채널들은 그 주제가 명확하다. 그분들도 당연히 매번 어떤 요리를 할지, 어떤 신제품을 리뷰할지, 어떤 화장법을 보여줄지 등등 어마어마한 고민을 하시겠지만, 일상을 담는 브이로그 채널은 조금 더 막막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다양한 요리와 수없이 쏟아지는 신제품들에 비해 내 일상은 너무 단조롭고 평범해 보였기 때문이다.
퇴근길, 남편에게 솔직하게 힘든 점을 이야기했다.
"어찌어찌 첫 영상은 올렸는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 주제를 먼저 정해야 하는지, 영상을 먼저 찍고 스토리를 만들어야 할지, 주제를 정한다면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할지, 내가 남들에게 보여줄 만큼 멋진 삶을 살고 있는지,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어."
정리되지 않은 나의 고민에 남편은 의외로 심플한 답을 해주었다.
"보통의 우리가 어떻게 일상을 보낼지 생각해봐. 그 순간을 예쁜 영상으로 표현하는 것은 내가 할게."
우리가 담아내려는 것은 우리의 소소한 일상 속 소중한 순간들이니, 평소에 하던대로 하면 되는 것이었다. 남편에게 말은 안 했지만 정말 든든했다.
무거운 부담감을 조금 내려놓고 보니 내가 이번 주말에 해야 할 일들, 하고 싶은 일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대청소를 하기로 했다. 봄이 오고 겨우내 창틀에 쌓인 먼지와 더러워진 방충망을 보니, 평소에 없던 청소 욕구가 솟아났다.
잠시 방충망 청소에 대해 얘기하고 넘어가고 싶다. 분명 검색했을 때 수많은 블로그에서 방충망에 물을 뿌린 뒤에 신문지를 붙였다가 떼면 먼지도 같이 떨어진다고 했는데, 방충망에 아무리 물을 뿌려고 신문지가 붙지 않았다. 신문지에 물을 붙여서도 해봐도 안되고, 물을 뿌리고 신문지를 붙인 뒤에 또 물을 뿌려도 금방 신문지가 떨어졌다. 당황한 우리는 한참을 신문지와 씨름을 했고, 이 모습은 자연스럽게 카메라에 담겼다.
물론 내가 상상하던 영상의 이미지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었다. 예를 들면 살림왕의 이미지라던가, 청소를 완벽하게 해내는 모습 같은 것. 하지만 그게 있는 그대로의 우리 모습이었고, 우리의 콘텐츠에 필요한 것은 이런 자연스러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꾸며진 모습은 오래갈 수도 없고, 매번 어떻게 꾸며야 하나 고민하느라 힘이 다 빠졌을 테니까.
이제 두 번째 영상이지만, 영상을 하나씩 올릴 때마다 많은 것을 깨닫는다. 몰랐던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기보다는, 너무 당연한 것들을 직접 경험함으로써 깨닫고 천천히 내 것으로 만들어가는 과정. 역시 경험이 가지는 힘은 대단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나도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지만, 만약 누군가 새로운 도전 앞에서 고민만 하고 있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일단 해보라고. 아마 기대한 것과는 많이 다르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해봐야 안다고. 우리 모두 한 번 시도해 보자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