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종합검사를 받았다. 공단 예약을 하려다가, 마침 엔진오일 보충, 워셔액 보충 등 소소하게 손볼 일이 있어 가까운 민간 검사소를 검색했다. 예전에 갔던 곳을 가려다가 자동차 제조사가 운영하는 센터가 멀지 않은 곳에 있기에 낙점했다. 순정이 최고지. 최근 리뷰를 보니 종합검사 비용은 6만 원이다. 공단 검사가 5만 5천 원 선이었던 기억이니 가까이 예약 없이 가도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나쁘지 않아 보였다. 차 몰고 나간 김에 어디 어디 들렀다 와야겠다, 계획도 야무지게 세웠다. 주차 가능한 근방 카페도 알아봤다.
그런데, 집을 나서니 정말 코앞에 새로 생긴 종합검사소가 보였다. 새로 생긴 곳이니 친절하겠지, 장비도 새 거겠지, 귀찮은데 빨리 해치우고 집에 가자, 하는 마음이 들어 차를 댔다. 대기하는 차가 없어서 바로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7만 원! 7만 원이다. 6만 원과 7만 원은 체감이 엄청나게 다르다. 아아, 바쁜 직장인이라면 시간 절약을 위해 방문할 수도 있지만, 나는 있는 게 시간 밖에 없는 백수 아니던가. 한두 시간 낭비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애초에 민간 검사소를 찾아보았던 이유 - 워셔액, 엔진오일은 말도 꺼내지 못하고 돌아왔다. 전에 가던 곳은 묻지 않아도 워셔액 정도는 해줬는데!
종합결과는 합격이지만, 이상이 있어 점검해야 하는 항목들이 종이에 적혀 있었는데 가타부타 설명이 없었다. 예전에 갔던 곳은 그렇지 않았는데에에... 하나하나 설명해 줬는데. 7만 원이 아니면 그냥 그러려니 했겠지만, 7만 원인데, 7만 원 흑흑. 남는 건 시간 밖에 없는 내가 굳이 비싸게 주고 한 이유가 무엇인가, 평일 오전이라 어차피 다른 곳에 갔어도 기다릴 일이 없었을 텐데.
집으로 돌아와 터덜터덜 산책을 나섰다. 가끔 가던 빵집에 들렀다가 20% 할인이 붙어있는 것을 보고 작은 호두파이를 하나 집었다. 정가 6500원. 가격이 비싸지 않았다면 쳐다보지도 않을 품목이었다. 평범하게 생겼는데 저 크기에 왜 저 가격인가, 대체 왜 저 가격인지 겉보기와 다른 놀라운 맛이 숨어있는 건지 늘 궁금했다. 할인 중이니 궁금증을 풀고자, 7만 원 때문에 시무룩해진 마음을 달달한 것으로 달래고자 집었다.
집에 와서 커피와 함께 먹어보니 보기와 크게 다른 맛은 아니다. 맛이 없는 건 아니지만 예상 가능한 맛이라 정가에 샀으면 이 또한 매우 억울했겠다. 할인가라서 그나마 조금 억울하다. 안 써도 될 돈을 썼는데 반전이 없어서 여전히 조금 억울하다. 다 먹고 결연히 일어나 피넛버터, 무가당 코코아 가루, 시나몬, 바나나, 호두 듬뿍, 두유 조금 넣고 전자레인지에 1분 정도 돌리고 올리고당을 살짝 뿌려 먹었다. 하, 내가 만든 게 충분히 비슷하게 맛있어. 재료는 더 좋아. 그래도 역시 남이 만들어 준 걸 먹고 싶긴 해.
새로 생긴 가게에서 할인가에 사 온 (750g에 4천 원) 방울토마토를 씻었다. 씻다가 한 알이 싱크대에 떨어졌다. 바로 주워 먹었는데, 먹었는데... 문득, 내가 어제 싱크대 닦겠다고 세제를 발라놓고 잤던 기억이 났다. 과일을 씻는다고 물을 흘리고는 있었으나 박박 문지르지 않아 바닥에 세제가 묻어 있었을 텐데. 거기 떨어진 걸 날름 먹다니 으아아아. 입 안에 찝찝한 기운이 계속 맴돈다.
커피를 한 잔 더 내려 창가로 갔다. 앉으려고 보니, 이게 웬일인가, 어젯밤 창문을 잠시 열어두어서 그런가, 바닥에 평소보다 2배 정도 많은 날벌레들이 후두두둑 떨어져 있다. 몇 마리는 살아서 움직이고 있다. 엎드려서 바닥을 싹싹 닦으며 벌레 시체를 회수하고 살충제를 베란다 하수구에 뿌렸다. 그러고 보니 계단 올라올 때 손가락만 한 벌레가 죽어있는 것을 보았어. 자세히 안 보았는데 그거 혹시 바퀴는 아니겠지? 갑자기 오소소 돋아오는 소름.
살충제를 현관문 틈과 복도에도 뿌려야겠다. 장갑도 안 끼고 마스크도 안 끼고 쭈그리고 앉아 뿌리는데, 바람이 분 것인가, 햇빛이 들이쳐 잘 보인 것뿐인가, 너무 가까이에서 뿌려 튀어 올랐나, 분무액이 화악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으악, 들이마신 거 같아, 오늘뿐인 걸까, 그동안 내가 이걸 계속 들이마시고 있던 거였나?
아침부터 다사다난하다. 뭔가 운이 잘 안 따르는 하루다. 집에 조용히 있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