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하루치 기쁨'이라는 말을 쓰는 것을 들었다. '하루치 기쁨이 충족되었다.' 쉽사리 짜증이 나서 불친절한 마음으로 미지근하게 회색빛 날을 지내던 중에 갑자기 귀가 뜨였다. 참 좋은 말이다. 매일 한 번씩 행복하다면 그 삶은 찬란하겠지. 살아있는 게 기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걸 누리기가 왜 어려운지. 하루에 한 가지씩 기쁨을 찾아보기로 마음먹었다. 딱 이틀, 작심이틀로 끝났지만.
첫날엔 루꼴라였다. 마트에서 루콜라 한 팩을 발견했다. 싱싱해 보이는 데다가 가격도 나쁘지 않아 구입했다. 집에 와서 한 줄기 씹어보니, 싸한 향이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하하하, 웃음이 나왔다. 신선한 맛. 세상은 이렇게 향기롭지. 살아 있는 건 좋아.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생동감이었다.
둘째 날은 장미였다. 날이 무척이나 추운데, 엉뚱한 곳에 노란 낙엽수들 사이에 훌쩍 키가 큰 장미 한 송이가 개화했다. 전날 날이 따듯했던가.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웃음이 났다. 이렇게 예쁜데 눈길 한번 주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 걸어 다녔구나.
오늘, 통장이 있는 1층 서점에 갔다. 책을 들추다가 창밖에 시선이 머물렀다. 날씨 덕에 세상이 흐릿한 파스텔 톤으로 보인다. 지브리 만화의 한 장면 같다. 영화 속 같다. 외부의 소음은 완전히 차단되어 서점 음악에 맞추어 세상이 움직인다. 평일 낮에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 길 건너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공을 차고, 사람들이 분주히 걷는다. 신기하게도 사람들 걸음이 음악소리에 딱딱 맞는다. 누구는 정박, 누구는 엇박, 누구는 3 연음. 빨간 트럭이 와서 학교 앞에 선다. 흔하지 않은 빨강이다. 일반적인 자동차 빨강에 주황색이 섞인 색. 예쁘다. 추운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걷는 사람, 후드를 쓴 사람, 까만 비닐봉지에 시장에서 산 물건을 담고 걷는 사람,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든 사람, 서류철을 옆구리에 낀 사람, 구부정한 사람, 둘이 걷는 사람,...
어느새 음악이 바뀌었다.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5분 이상 있는 게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늘 뭔가를 찾아 참지 못하고 스마트폰을 뒤적거리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