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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Jul 08. 2023

조금 일하고 적게 벌고 싶습니다만

Out of the frying pan, into the fire

자녀 교육비나 주택 구입 등의 목돈이 들어갈 일이 없는 사람들은 흔히, 조금 일하고 적게 버는 '반은퇴'를 꿈꾼다.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 용돈 벌이만 하면서 살려고요.


편의점이나 카페, 서점의 파트타임 일은 묘한 끌림이 있다. 미디어 덕이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서정적으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리틀 포레스트'를 보면 백수의 삶이 너무 아름다워서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는 내가 바보 같아 보일 정도이다.




아직은 회사를 다니고 있지만, 백수가 된 상태에서 갑자기 돈이 필요하면 어떤 선택지가 있을까 궁금해 알바 채용 공고를 찾아보았다. 현실 자각 타임이 왔다.


우선 시급이 작다. 주 20시간 일하면 소득이 기존의 절반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반의 반의 반 이하가 된다. 최저시급으로 달에 200만 원을 벌려면 주 40시간 Full-time 근무를 해야 하는데, 조금 일하고 적게 버는 삶이 아니라 많이 일하고 적게 버는 삶이다. 책임지는 위치가 아니니 회사보다 스트레스가 적을까, 아니, 빌런을 만날 확률은 회사 밖이 더 높다. 상식적인 회사의 정규직이었다는 가정하에 말이다.


돈은 둘째 치고, 보람을 느낄만한 자리가 잘 없다. 아르바이트라는 게 원래 그렇지 않은가, 내가 하기는 싫은데 돈 주기는 아까운 일. 눈에 들어오는 공고 중에 이런 것이 있었다.

병원 마감 후 청소 하루 2시간.

무인 카페 매니저 하루 1시간.

서빙 알바 하루 3시간.

이들의 공통점은, 시간을 쪼개 돈을 최소로 주면서, 내가 다른 일은 할 수 없도록 나의 하루에 알 박기를 한다는 점이다. 하루 한 시간, 최저시급으로 한 달에 30만 원을 벌려고 지박령처럼 묶여 있어야 한다. 다른 일을 구하기에는 시간이 애매하게 겹친다. 멀리 가지도 못하고 아프다고 휴가를 쓸 수도 없다. 출퇴근 시간까지 고려하면 수지가 안 맞는다.


무엇보다, 아르바이트는 일하는 시간이 적을 뿐이지 생각보다 유연하지 않다. 늦잠을 자서, 기분이 우울해서, 날이 좋아서 당일 오전에 휴가를 내거나 재택근무를 하던 개발자라면 적응하기 어렵다. 여유 인력이 없어서 그렇다. 최소의 필수 인력만 시간 단위로 채용하니.


이리저리 보다 보면, 일의 보람과 보상 이전에 과연 고용인이 나를 인간으로 존중할 것인지가 궁금해진다. 고소득 직업의 최고 장점은 사실 돈이 아니라 회사가 내 기분을 맞추어주려고 노력한다는 점이다. 돈을 많이 줄수록 돈이 아까워서라도 나를 귀히 대한다. 내 가치는 내 연봉으로 매겨진다. 내가 가치 있어서 연봉이 높은 게 아니라 연봉이 높기에 가치 있는 사람이 된다. 시급이 높기 때문에 허드레 일을 치워주고 중요한 일을 맡긴다. 중요한 일을 맡았기 때문에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도록, 불만이 없도록 더욱 신경 써준다.


고소득자는 기여분만큼 보상을 받으니 더 챙겨줄 필요 없고, 오히려 적은 돈으로도 일을 해주는 사람에게 인지상정 고마워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지만, 세상은 그 반대이니 일견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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