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공기에도 감정이 있다
"이렇게 한꺼번에 충치가 생긴 건 흔하지 않은데... 충치가 조금씩 여러 군데에 생겼네요."
퇴사한 지 3개월. 조금씩 아파오던 충치가 한계치를 초과하자 소영은 치과를 예약했다. 야금야금 생활비로 나가는 돈의 존재를 외면하고 싶지만 돈은 언제나 나갈 때를 잘도 안다.
"여기는 생각보다 깊네요. 얼른 치료하지 않으면 나중에 더 고생해요. 오늘은 여기만 치료하시던지, 오신 김에 다 치료하시던지 결정하시면 얘기해 주세요."
신경치료만큼은 하고 싶지 않아 몇 군데를 해야 하는지 물어보려고 하는데 의사는 벌써 다른 환자를 보러 자리를 뜨고 없다. 대신 치위생사가 소영의 물음에 답해준다. 가장 심한 15번 치아만 신경치료하고 나머지는 간단하게 레진으로 치료하면 된단다. 가장 무서운 곳이 치과이기에 소영은 온 김에 전부 치료하고 가기로 마음먹었다.
치위생사는 잠시만 기다리면 마취과 선생님이 마취 주사를 놔주실 거라는 말에 소영은 겁이 나기 시작한다. 기다리는 동안 여기저기서 웅웅~하는 소리가 들린다. 언제 이렇게 충치가 치아를 잠식하고 있었는지, 그곳에서 먹었던 달고 단 간식들이 마음뿐 아니라 치아까지 고통을 퍼뜨린 것만 같아 또 후회했다. 그곳을 좀 더 빨리 나오지 못한 것을.
거의 백만 원에 가까운 비용이 나올 거라는 데스크 안내원의 말에 얼마 되지 않은 퇴직금을 또 어떻게 알고 날름 뺏어갈까 싶어 소영은 허탈한 웃음이 나온다.
소영은 죽을 포장하고 집으로 향한다. 도착하자마자 침대로 몸을 풍덩 담그고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 문득 그곳에서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비웃음과 외면하는 모습이 스쳐간다. 퇴사 후 사람들이 싫어져 한동안 바깥을 나가지 않았었다. 우울과 무기력이 소영을 자꾸 아래로 아래로 끌어내리고 있었다. 그 깊이가 소영 자신도 모르게 파고들 때면 있는 힘껏 정신을 차리려 노력했다.
꼬르륵 배에서 알람이 울려 사온 죽을 먹으려는데 아직 마취가 풀리지 않아 얼얼하다.
소영은 아침 7시부터 12시까지 집 근처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다시는 회사 생활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다 줄고 있는 통장 잔고를 보다 아찔해졌다. 서울에서 생활하다 부모님 집으로 다시 들어가 살고 있지만 다 큰 성인이 용돈을 줘도 모자랄 판에 손을 벌릴 수는 없었다.
소영은 불안이 밀려올 때면 떨쳐 내려 무작정 밖으로 나갔다.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만으로도 살 것 같아 휴~ 숨을 내쉰다.
평일의 길거리는 고요하다. 이따금 개를 키우는 집에서 들리는 지저대는 소리는 정적을 깨도 나쁘지 않다. 회사 다닐 때는 이런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으니 동네에 뭐가 있는지 몰랐다. 어쩌면 관심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빵을 좋아하는 소영은 새로 생긴 빵집은 꼭 가봐야 할 목록에 적어두곤 했다. 그러다 회사생활로 이 리치이고 저리 치이다 집에 오면 꼼짝 않고 쉬는 날이 반복되다 잊고 있었다.
그날은 자신도 모르게 홀리듯 빵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벌써 고소한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골목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보이는 빵집은 작은 공간이지만 먹음직스러운 빵들이 알차게 진열되어 있었다. 안에는 빵집 모자를 눌러쓴 동그란 안경을 쓰고 배는 볼록 나온 인상 좋은 아저씨가 열심히 빵을 만들고 계시고 옆에는 부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정신없이 빵을 진열하고 포장하고 계신다. 소영은 금방 나온 빵 몇 개 골라 계산을 하곤 실없게 말을 건다.
"꼭 한번 들르고 싶었어요. 맛있어 보이는 게 많네요."
누군가 대화를 한 것이 언제 적인지 소영은 사람의 정이 고팠는지 평소답지 않게 묻는다.
아주머니는 동그란 눈을 반달 모양이 되도록 웃으시며,
"1년 정도 됐어요. 자주 오세요." 하신다. 소영은 순간 멋쩍으며 얼굴이 살짝 붉어진 것을 느끼곤 인사를 하고 나가려다 아르바이트 모집 공고를 발견했다. 그렇게 빵집에서 일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조금 넘는다.
소영은 우선 아침 일찍 시작해서 5시간 동안 집중해서 일을 하고 나머지 시간을 자신에게 쓸 수 있어 좋다. 물론 돈도 적게 벌고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불안감은 있지만 소영에겐 그만큼 자유가 소중했다.
엄마는 소영의 이런 생각을 못마땅해한다. 그래도 작은 회사라도 월급 따박따박 나오는 것이 남들에게도 말하기 좋고 안정적이지 않냐는 것이다. 항상 하시는 말씀, 결혼 안 할 거라면 안정적인 직장을 가져라. 왜 남들 다 다니는 회사를 못 다녀서 유난이냐고. 소영 자신도 두려웠다. 용기가 없었다. 돌아보면 자신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본 적이 있었나. 아니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소영은 자신의 이런 성향을 꾹꾹 누르고 지금껏 꾸역꾸역 잘 버텼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그곳을 다니다 모든 것이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 들 때면 괴로웠다.
퇴사 후 한껏 움츠려 들었던 소영은 큰 용기를 내어 빵집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것만으로도 자신을 칭찬하고 싶다. 역시 통장 잔고는 이런 무기력함을 깨우기에 충분했다. 슬프지만 어쩔 수가 없다.
photo by : Unsplash의 Art Institute of Chica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