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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 도장 깨기, 구로카와(쿠로가와) 온센

by 평택변호사 오광균
이 글은 함께 여행한 두 명의 저자가 참여하였습니다. <오변의 여행일기>에서는 여행지에서의 감상을 오변이, <강쉡의 먹방일기>에서는 여행하며 먹었던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강쉡이 썼습니다.


오변의 여행일기


우리는 아소역에서 버스를 타고 구로카와(일본어 한글 표기법으로는 구로카와지만 인터넷에서는 쿠로가와로도 많이 쓴다) 온천으로 갔다. 이곳은 최근 한국 TV프로그램에 굉장히 자주 소개되는 곳이라서 그런지 한국 사람이 아주 많다.


구로카와는 한글식 독음으로 읽으면 흑천, 글자 그대로 검은 시내라는 뜻인데 일본에 같은 지명이 아주 많지만 구마모토 현의 이곳이 가장 유명한 것 같다. 당연히 실제로 냇물이 검지는 않다.


41B35367-DD29-4411-9A50-8F6394154A03_1_201_a.jpeg <구로카와>라는 이름과 달리 엄청 구로한 가와는 아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산속에 있어서 교통이 불편하고 다른 유명 관광지에 비해 흔한 기념품 숍도 없고 단체 관광객이 적어 고즈넉한 분위기라고 되어 있고, 한국 관광객보다 일본인의 비중이 훨씬 크다고도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구로카와 온천은 관광객이 상당히 많다. 철도가 없어서 대중교통이 아주 편하지는 않지만 주변 큰 도시에서 접근할 수 있는 버스가 있어서 엄청 불편한 것도 아니다. 요즘엔 특히나 한국인 관광객이 많아서 표지판이든 안내책자든 식당 메뉴판까지도 한글로 되어 있다. 가뜩이나 길도 좁은데 단체 관광객이 꽤 많아서 통행이 불편할 때가 많다. 기념품 숍은 엄청 많은데 정작 제대로 밥을 먹을만한 식당은 많지 않다. 그런데 온천이 워낙 많아 분산이 되는 데다가 단체관광객 특성상 느긋하게 온천을 즐기지는 못하는지 실제로 온천 안으로 들어가면 사람이 별로 없다. 가만 생각해보면 온천을 단체관광으로 오는 게 좀 이상하기는 하다. 다 벗고 들어가야 하는데 아주 가까운 친구나 가족이라면 모를까.


구로카와의 집들은 온천마을답게 일본 전통의 나무 가옥으로 되어 있다. 그 사이로 좁은 길은 검은 돌로 마감되어 있어서 옛 정취가 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배경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 애니메이션은 온천장이 배경이라 일본에 유명한 온천은 물론 유명하지 않은 온천도 참고해서 그렸다고 한다. 대만의 지우펀 역시 배경이라고 하니, 사실 일본의 유명 온천 마을 중 그 애니의 배경이 아닌 곳을 찾는 게 더 어려울 수도 있겠다.


86B32434-B6B8-4E45-8A7A-1592D75E1094_1_201_a.heic 구로카와 온센의 평범한 길. 인터넷에 잘못 소개된 것처럼 깡시골이 아니다


우리가 간 날은 날씨요괴 때문인지 또 비가 왔다. 버스에서 내려 일단 숙소를 찾아가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힘들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숙소까지 거리도 멀었지만 산길이라 경사가 꽤 가팔랐다. 두 달 짐이 들어간 무건운 캐리어로 그 산길을 올랐더니 숙소에 도착할 즈음에는 거의 탈진 상태가 되었다.


우리가 예약한 숙소는 산장이었다. 사실 대부분의 숙소는 온천이 같이 있는 료칸들이라 중심가에서 별로 멀지 않은 곳에 있지만 그런 고급 료칸의 숙박료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비쌌다. 유명한 온천 마을인 유후인은 가격대가 다양하게 있지만 구로카와의 료칸은 1박에 30만 원 이하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중심가로부터 거리가 멀지만 비교적 숙박료가 싼 산장으로 예약을 했다. 인터넷으로 봤을 때에는 그냥 평범한 나무 집인가 싶었는데 도착해 보니 정말 광활한 규모의 산장이었다. 산장이 높은 곳에 있어서 경치도 끝내주는데, 투숙객들이 다 각기 별채에 묵는 식이었다. 별채 자체도 상당히 넓은 데다가 건물들 사이의 간격도 넓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부부가 운영하는 것 같고 일하는 아주머니도 한 분 계셨는데 모두 친절했다.


숙소에 짐을 맡겼더니 할아버지께서 차로 온천 관광안내소까지 데려다주셨다. 온천 중심가에서 숙소까지는 생각보다 꽤 먼 거리였는데 할아버지는 다 즐기고 나서 돌아올 때는 전화를 주면 데리러 오겠다고 하셨다. 전화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데 할아버지는 관광안내소 카운터에 “이 사람들 한국에서 왔는데 이따가 오면 전화해 주세요”라고 일러두는 것이었다. 외국인 손님이 뭐가 불편할까를 고민해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진정한 친절함이었다.


우리는 관광안내소에서 유메구리(온천순례) 티켓을 샀다. 1,500엔에 온천 세 군데를 갈 수 있는 티켓인데 마패처럼 생긴 나무 패를 준다. 뒤에 스티커 세 장이 붙어있는데 이용할 온천에 가면 뒤에 붙은 스티커는 떼어서 온천이 가져가고 마패에다 도장을 찍어 준다. 이 마패는 좋은 기념품이 된다. 다른 관광지에 가 보면 이런 나무 패가 꽤 비싼데 아무리 싸도 500엔은 넘었던 것 같다. 온천도 동네 온천은 200엔에도 입욕할 수 있지만 온천마을 온천은 800엔 정도는 하니까 유메구리 티켓은 꽤 혜자인 셈이다. 이 마패를 가지고 도장 깨기 하듯 온천 세 군데를 즐기면 되는데, 사실 하루 세 탕을 한다는 게 쉽지 않다.


8B28F8E0-7E3E-4BF9-87B2-C74334313BCF_1_201_a.jpeg 신사. 나무 마패에 소원을 적어 걸어 둔다. 우리는 아까워서 집에 가져왔다.


일본에서는 온천을 우리와 같이 온천이라고 한자로 쓰고 온센이라고 읽는데, 온천업을 하는 그 업장은 OO탕이라고 쓰고 OO유라고 읽는다. 우리는 목욕탕에 가면 냉탕, 온탕, 노천탕이라고 부르는 ‘탕’을 일본에서는 ‘풍여’라고 쓰고 ‘후로’라고 읽는다. 예를 들면 노천탕은 노천풍여라고 쓰고 ‘로텐부로’라고 읽는다. 인터넷에 찾아보면 이 ‘노천풍여’라는 단어를 ‘하늘에서 이슬이 내리고 바람의 노래를 듣는다’라며 굉장히 그럴듯한 의미를 부여하는 때가 있으나, 사실 그냥 위가 뚫려있어 ‘노천’이고, 목욕을 의미하는 ‘후로’라는 고유어에 한자를 끼워 맞추다 보니 ‘풍여’가 된 것일 뿐 대단한 의미가 있는 게 아니다. 노천의 노는 이슬이 아니라 드러나다라는 뜻의 동사다.


4433C4D1-8F47-4683-A48D-60A02663A41E_1_102_a.jpeg '로텐부로'는 노천탕이라는 뜻이지 하늘에서 이슬이 어쩌고 하는 의미가 아니다


우리가 간 곳은 <신메이칸>, <이코이료칸 비진노유>, <코노유>였다. <신메이칸>은 동굴탕과 그냥 보통의 실내 탕이 있었는데, 동굴탕은 자연 동굴이 아니라 이 탕을 만들기 위해 할아버지대부터 바위 산을 뚫어 만들어갔다고 한다. 동굴이 생각보다 넓어 살짝 탐험하는 느낌이라 재미있다. 실내탕도 꽤 넓다. 다만 탕과 탕 사이를 지날 때 알몸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 이때 외부에 노출이 될 수 있어 살짝 민망하다.


78BBA79C-75A9-443A-BE09-4C59BB734FF1_1_102_a.jpeg <신메이칸> 입구. 예스러운 다리를 지나면 오래되어 보이는 온천장이 나온다


<이코이료칸>은 <비진노유>, 즉 미인탕이라는 별칭이 있는데 일본의 비탕인지 명당인지에 소개되었다는 자랑이 쓰여 있다. 플라세보 효과도 있겠지만 물이 미끌미끌한 게 피부에 좋을 것 같긴 했다.


886E91D5-AA41-4CBF-B76E-910BCC53C39D_1_201_a.jpeg 이코이료칸 비진노유 입구


<코노유>는 꽤 많이 걸어가야 한다. 한눈에 봐도 고급으로 보이는 료칸에 부속되어 있는 온천인데, 중심가로부터 거리가 멀어서 그런지 손님이 별로 없어 우리 빼고는 젊은 일본 친구들 두 팀만 있었다. 이곳은 특이하게도 입탕이 있다. 서서 하는 온천인데 탕에 계단이 있어 그 계단으로 내려가다 보면 발이 안 닿을 정도로 깊다. 꽤 재미있는 경험이다.


A00A3F8A-C556-4BFF-B297-C23FBD6C354E_1_102_a.jpeg <코노유> 올라가는 길


인터넷에서는 편의점도 없다고도 소개되어 있는데, 유명 대기업 체인 편의점은 못 봤으나 편의점에서 파는 웬만한 것은 다 파는 슈퍼는 있었다. 여기가 그렇게 산간벽지가 아닌데 인터넷에 마치 오지 중의 오지인 것처럼 설명되어 있어서 아쉽다.


먹을 것을 잔뜩 사 들고 친절한 우리 숙소 할아버지의 차를 얻어 타고는 숙소로 돌아왔다. 밤에 배고플 수도 있겠다 싶어서 과자 정도를 사러 프런트로 갔더니 주인 할머니가 본인 먹으려고 샀는데 그냥 먹으라며 에비센 (새우과자)하고 카메센(거북이 등껍질 모양 쌀과자)을 통째로 안겨 주셨다. 이거 꽤 비싼데 할머니 인심이 굉장하다.


오랫 만에 넓은 방에서 편하게 자고 아침에 일어났더니 장관이 펼쳐졌다. 사실 우리 숙소가 진짜 관광 명소였던 것이다.


C7B76FF7-EF34-48A7-AFBA-2A3B5032422C_1_201_a.jpeg 아침의 숙소 앞 풍경

전날 온천을 삼탕이나 뛰었더니 기분이 개운했다. 게다가 산속 맑은 공기가 무척이나 상쾌했다. 체크아웃을 하니까 주인 할아버지께서 어디로 가냐고 묻길래, "하카타로 가요."라고 했더니 버스 정류장까지 차로 데려다 주셨다. 사실 내 일본어가 많이 부족하고 주인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는 영어가 되지 않아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지만 그냥 친절함을 넘어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구로카와 온천은 유메구리 패스 하나로 마치 놀이동산 어트랙션을 타듯 온천을 즐길 수도 있고, 온천 말고도 주변 산과 자연이 참 아름답고 멋진 곳이다. 한 이삼일 묵었으면 좋겠다.



강쉡의 먹방일기


최근 매체에 자주 나와 유명해진 구로카와 온천 마을을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우리가 예약한 숙소는 온천 중심지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서 비를 맞으며 30분 정도 언덕길을 걸어가야 해 엄청 고생스러웠다.


비에 젖은 생쥐 꼴을 하고 숙소에 도착하니 주인분이 딱하게 보셨는지 짐을 맡아주고 차로 온천 안내소까지 데려다 주셨다. 안내센터 담당자에게 우리 숙소 손님이니 관광이 끝나고 다시 오면 전화해 달라고 요청까지 해 주셨다. 너무 감사했다. 비록 날이 더운 여름이지만 숲 속에 있는 온천 마을은 선선했고 우리는 자유롭게 세 번 입욕이 가능한 온천 마패를 사서 온천을 즐겼다.


토후 키쇼 |


평일인 데다가 비가 와서 그런지 대부분 식당이 문을 닫았다. 점심을 해결할 수 있는 식당을 찾다가 겨우 들어간 식당이다. 원래는 여기서 두부우동을 먹으려 했지만 다른 식당이 문을 닫았기에 다른 사람들도 이 식당으로 몰려 두부우동은 일찌감치 품절이 되었다. 어쩔 수 없이 두부 정식 중 무난한 세트를 시켰다. 덕분에 다양한 두부요리를 경험해 볼 수 있어서 좋긴 했다.


IMG_3333.jpeg <토후 키쇼> 입구


두부정식 우메


이 집 두부 정식은 콩으로 만든 요리의 집대성을 보여준다. 고슬고슬 윤이 나는 쌀밥, 흰콩 조림, 다양한 두부에 올려진 미소된장 소스는 유자향이 돌며 단짠단짠해 담백한 두부맛을 살려 준다. 감자샐러드처럼 만든 비지 샐러드, 비지가 들어간 미소 된장국은 고소하고 부드럽다. 따로 나온 냉두부는 손두부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간수가 잘 빠져 보슬보슬했다. 온천에 두부정식이라니 디톡스 프로그램을 체험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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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료칸의 온천탕은 다들 개성이 넘친다. 동굴탕, 미인탕, 입식탕 등 개인적으로 노천 온천은 구로카와가 가장 좋은 듯하다. 탕이 아주 넓고 멋스럽게 꾸며져 있어 노천 온천 하는 맛이 난다. 단, 뽕을 뽑겠다고 무리해서 온천욕을 오래 하면 정말 욕볼 수 있으니 무리하지 말고 컨디션에 맞게 하는 것을 추천한다.


우리는 다음날 일정도 있고 숙소와의 거리도 있어 하루 만에 세 군데를 클리어했는데 다소 힘들었다. 료칸마다 군데군데 군것질을 하면서 쉴 수 있는 예스런 휴식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도란도란 이야기하면서 쉬다가 움직일 수 있는 여유로움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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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세리 로쿠 |


구로가와 온천마을 안내소에서 계단으로 내려오면 온천이 몰려있는 마을 초입에 있는 제과점이다. 삼삼오오 슈크림을 들고 서 있는데 온천을 하고 나른해진 몸에 당분을 충전시켜 주는 쉼터 같은 곳이다.


슈크림빵


바삭바삭한 슈 안에 놀랄 만큼 많은 양에 바닐라 크림이 터질 듯이 빵빵하게 들어 있다. 한입 베어 물면 크림이 터져 넘친다. 먹을 때 조심하도록. 슈크림 외에도 푸딩, 몽블랑, 치즈 케이크 등등 다른 달달한 디저트들도 많이 판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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