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함께 여행한 두 명의 저자가 참여하였습니다. <오변의 여행일기>에서는 여행지에서의 감상을 오변이, <강쉡의 먹방일기>에서는 여행하며 먹었던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강쉡이 썼습니다.
히로시마에서 다케하라를 갔다 오는 길을 쉽지 않았다. 다케하라는 히로시마와 오카야마라는 두 대도시의 중간에 있어 언뜻 보면 교통이 편리할 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신칸센에서 살짝 비켜 있어 세월아 네월아 가는 재래선을 타야 한다. 편수도 많지 않고 속도도 어마어마하게 느린 이 재래선 ‘구레선’은 다행히도 해안선을 끼고돌아 기차 안에서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하지만 느려도 너무 느리다.
다케하라는 예로부터 소금과 사케로 유명했고 지금도 생산하고 있다. 인구 2만 명의 이 작은 도시는 소위 ‘리틀 교토’라고 불린다. 그런데 ‘리틀 교토’는 일본에 워낙 많아서 한 58,000개쯤 있는 것 같다. 오래된 목조 건물이 이어져 있으면 죄다 '리틀 교토'라고 부른다. 그런데 정작 오리지널 교토는 사람이 오지게 많고 복잡한 대도시라서 리틀 교토라고 할 때의 교토는 진짜 교토가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속에만 있는 교토, 일종이 이데아라고도 할 수 있겠다.
다케하라는 일단 도착만 하면 관광을 하기에 아주 편한 여건을 가지고 있다. 역에서 나오면 곧바로 상업지구가 나타나고 상업지구를 지나면 바로 주요 관광명소인 거리보존 지구가 나타난다. 다케하라에 오는 사람은 요즘 들어 갑자기 유명해진 일명 ‘토끼섬’으로 가는 배를 타러 오는 게 아니라면 대개 이 거리보존 지구를 보러 오는 것이라서 그냥 걸어서 슬슬 산책하듯 구경하면 된다.
다케하라의 거리는 다른 곳에서는 보기 어려운 독특한 풍광이 있다. 분명 어마어마하게 많은 가게가 늘어선 상업지구인데 사람이 없어도 너무 없다. 여기는 좀 한산하네, 정도가 아니라 <만약 인류가 사라진다면> 같은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하다. 텅 빈 거리에서는 주기적으로 안내방송을 흘러나와 기괴한 분위기를 더한다. 게다가 일본의 거리답게 청소는 참 잘해 놓아서 깨끗하고 잘 관리되어 있어 더 이상하다. 만약 지나가는 사람을 마주친다면 진짜 사람 맞냐고 물어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이럴까.
이렇게 사람이 너무너무 없다 보니 문을 연 가게도 드물지만 그나마 문을 연 곳도 들어가기도 부담된다. 이런데도 꽤 큰 규모로 상업지구가 조성된 것도 신기하다.
상업지구는 꽤 커서 한참을 걸어가야 끝나는 데 여기서 좀 더 들어가야 거리보존지구가 나온다. 거리보존지구는 1982년 국가 중요 전통 건물 보존 지구로 지정된 유서 깊은 곳이다. 에도 시대((1603~1867)에 지어진 전통 목조 건물이 줄지어 들어선 곳으로 이곳에 사는 사람은 건물의 외관을 변경하려면 반드시 시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곳은 원래 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촬영지로 유명하다.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2006년에 제작한 애니메이션일 것인데 사실 1983년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다케하라는 거리보존지구의 워낙 아름다운 풍광으로 굉장히 많은 애니의 배경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중 <타마유라>가 대표적이라고 한다. 나는 아직 보지 못 한 작품이다.
거리보존지구는 고풍스러운 에도 시대 스타일의 목조 건물이 늘어서 있고 바닥은 돌로 잘 정비되어 있어 다니기 편하다. 이 건물들은 실제로 사람이 사는 주택일 때도 기념품이나 먹을거리를 파는 상점일 때도 있는데, 거리에 사람이 워낙 없어 들어가기가 좀 민망하다. 주변에 식당을 찾기도 어렵다.
한참을 걷다 보면 굉장히 눈에 띄는 파란색의 오래된 건물이 나오는데 다케하라시 역사민속자료관이다. 에도시대 <다케하라 서원>터에 세워진 서양식 건물로 염전 관련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그 외에 몇 개의 주택이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데, 사실 설명을 봐도 의미를 잘 모르겠다.
거리를 한참 걸어가면 왼쪽으로 꺾이는 길이 나타나는 데 이곳에 <에비스도>라는 신사가 있다. 에비스는 일본의 신으로 오른손에 낚싯대를 들고 왼손에는 도미를 안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어업의 신이기도 하고, 심지어 상업의 신이라고도 한다. 상업의 신을 모시는 이 거리에 사람이 없어도 너무 없지만… 우리가 간 날만 없었다고 하자. 불경하니까.
에비스도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서 유명한 배경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워낙 오래된 영화라서 사실 잘 모르겠다.
신사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쇼렌지(照蓮寺)>라는 굉장히 큰 절이 나온다. 건물이 굉장히 크고 멋있는데 우리가 간 날에는 역시 사람이 없었다. 쇼렌지 정문 현판에는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용두산>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 부산?
이렇게 사람이 없어 외로웠던 시간 여행을 마치고 창밖 풍경이 멋진 구레선 재래선 기차를 한참이나 타고 다시 히로시마로 돌아왔다. 전통 분위기가 물씬 나는 멋진 곳인데 왜 이렇게 찾아오는 사람이 없을까. 알다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교토로 가는 이유가 일본의 전통적인 정취를 느끼고 싶어서라면 방향을 잘못 잡았다. 교토는 그냥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대도시라 사람 구경만 할 수 있다. 여기 다케하라가 안 유명해져서 찾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게 어쩌면 다행일 수도 있겠지만, 또 그만큼 여행객을 위한 상점이나 편의시설도 없고 그나마도 다 낡아서 불편하긴 하다. 아주 살짝만 더 유명해졌으면 딱 좋을 것 같다.
타케하라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히로시마역으로 갔다. 출발 전 점심을 해결하려고 역사 안에 있는 푸드코트로 갔다. 히로시마역은 역사 규모가 꽤 크고 기념품을 비롯한 다양한 푸드코트가 자리 잡고 있었다.
히로시마역을 구경하다 가성비가 괜찮아 보이는 정식 세트가 있어 시켰보았다. 일본에서 종종 먹던 가라아게가 물려있던 참인데, 메뉴판에 한국식 양념치킨이라고 쓰여 있어서 시켜봤다. 그런데 우리가 기대했던 맛과는 많이 달랐다. 우리나라처람 매콤 달콤한 양념치킨 소스가 아닌 정말 그냥 짠 고추장소스를 올려 준다. 소스가 매우 짜기 때문에 덜어내고 조금씩 찍어 먹었다.
일본을 여행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같은 이름의 양념이라도 우리나라와 일본의 맛이 서로 다를 때가 많다. 특히나 데리야끼 소스, 칠리소스, 양념 치킨소스 등 소스류는 기대한 맛이 안나는 경우가 많다. 대체적으로 식사에 사용하는 양념은 단맛을 많이 배제하는 것 같다. 그래도 만두나 반찬, 국 등은 괜찮았다.
다케하라 거리보존지구는 예스런 건물로 둘러싸인 조용한 동네였다. 평일에 방문해서 그런지 동네주민들만 간간이 보이고 관광객들은 놀랄 만큼 없었다. 거리 외에 이렇다 할 유명한 곳이 없는 데다 거리만 놓고 관광객을 유치하기에는 일본에는 이렇게 생긴 곳이 너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덕분에 우리는 이 조용한 마을을 여유롭게 돌아다니며 즐길 수 있어 오히려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