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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집 도장 깨기, 다카마쓰

이 글은 함께 여행한 두 명의 저자가 참여하였습니다. <오변의 여행일기>에서는 여행지에서의 감상을 오변이, <강쉡의 먹방일기>에서는 여행하며 먹었던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강쉡이 썼습니다.


오변의 여행일기


우리는 히로시마를 떠나 다카마쓰로 갔다. 히로시마 역에서 오카야마 역까지는 신칸센을 탔고 오카야마 역에서 기차를 갈아타야 하는데 이름이 무려 ‘특급 마린라이너’다. 이름이 굉장히 멋진 이 열차는 연식이 상당히 오래되어 보였는데, 특이하게도 지정석 차량은 2층으로 되어 있었다. 그중 그린샤, 즉 특실은 2층이고 일반석은 1층이었는데, 말이 1층이지 반지하 느낌이다.


특급 마린라이너 열차. 1층 지정석 칸은 사실은 반지하다.


다카마쓰 시는 가가와 현의 현청 소재지로 인구가 40만이 넘는 꽤 큰 도시이다. 혼슈에서 다리를 건너 시고쿠로 넘어오면서 거치는 관문과 같은 도시다. 한국에서 다카마쓰로 가는 직항 편도 생기기도 했어서 아주 생소한 곳은 아니지만, 특별히 관심이 많지 않은 사람에게는 다카마쓰나 가가와 같은 요즘 이름보다는 옛 지명인 ‘사누키’가 더 익숙할 것 같다.


근대 이전에 이 지역의 명칭은 <사노키노쿠니>였다. 쿠니는 한자로는 ‘국’이라고 쓰는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국가가 아니라 일본의 율령제에 의해 설치된 지방 행정단위 중 하나인데 ‘영제국’ 또는 ‘율령국’이라고도 부른다. 아스카 시대부터 메이지 초기까지 사용된 오래된 제도이다.


이 지역은 시코쿠 섬에서 가장 위쪽으로 볼록 튀어나와 있다. 그래서 동서의 길이(위)가 좁아 ‘협위’라 쓰고 ‘사누키‘라고 읽었다. 그것이 사누키의 어원이 되었다고 하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현재 가가와현이 위치한 볼록 튀어나온 곳은 예전에 사누키라 불렀다


사누키 하면 역시 사누키 우동이 생각난다. 가가와 현은 인구당 우동 점포수가 일본 내 1위라고 하며, 우동용 밀의 사용량도 일본 내 1위라고 한다. 가가와 현은 예전부터 양질의 밀과 소금, 간장 등이 특산품이어서 우동에 사용하는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그러한 이유로 우동은 관광객을 위한 명물이라기보다 생활에 지역 사람들 생활에 밀착하게 된다. 2016년 가가와 현민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주 1회 이상 우동을 먹는 사람의 비율이 90.5%나 되었다고 한다.


일본에서 <사누키 우동>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데에는 제한이 없지만 ‘명물’, '본고장‘등', '특산' 등을 표시하는 경우에는 법적인 제한이 있다. <생면류의 표시에 관한 공정경쟁규약 및 공정경쟁규약 시행규칙>에 따르면 위와 같은 명칭을 사용하려면 가가와현 내에서 제조된 것일 것, 수타, 가수량이 밀가루 중량의 40% 이상일 것, 식염이 밀가루 중량의 3% 이상, 숙성시간 2시간 이상일 것 등의 제약이 있다.


우동의 기원에 대해서는 중국에서 전래된 것이라는 설과 일본에서 독자적으로 진화한 것이라는 설이 있으나 어느 것이 더 확실하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18세기 초에 그려진 병풍에서도 우동집의 간판이 있는 등으로 볼 때 적어도 에도 시대부터는 우동을 즐기기 시작했던 것 같다. 우동이 특히 가가와 현에서 붐이 일어난 것은 미디어의 역할이 컸는데, 1980년대 말부터는 가가와 현의 지역 정보지에서 우동 맛집 소개를 시작하면서 우동 가게를 탐방하는 손님이 크게 늘었고, 90년대에는 TV에서 연예인들이 출연해 우동 맛집을 탐방하는 프로그램이 방송되기 시작해 크게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이렇게 가가와 현의 우동이 유명세를 타자 2011년 가가와 현과 가가와현 관광 협회에서는 가가와현이 <우동현>으로 개명했다는 콘셉트로 동영상을 제작하였는데, 이게 전국적으로 화제가 되어 현재도 <우동현>이라는 별명이 널리 쓰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지역 여행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은 하나같이 ‘우동 투어’를 한다. 우동 버스도 있고 우동 택시도 있는데, 우리가 갔을 때에는 안타깝게도 이 중 우동 버스가 코로나로 인해 중단되었다. 인기가 많았으니 언젠가는 재개할 것 같기는 하다.


가가와현 마스코트 아오오니쿤. 근데 별로 안 유명하다

우리는 다카마쓰 역에 도착해서 곧바로 우동 한 그릇을 먹고 리쓰린 공원으로 갔다. 리쓰린 공원은 국가 특별 명승으로 지정된 곳으로 정원문화재 중에서는 일본 최대이다. 시운산을 배경으로 6개의 연못을 파고 13개의 언덕을 조성하였는데, 걸음을 옮길 때마다 주변 풍경이 바뀌도록 설계되었다. 이곳은 1625년부터 조성되기 시작해서 줄곧 사유지였다가 1875년부터는 일반인에게도 개방되었다고 한다.


무려 75만 평방미터의 넓은 정원은 몇 개 구역으로 나뉘는데 이중 본원 남정원은 에도시대 초기 다이묘정원의 정형을 보여준다. 에도 시대에 연못에서 뱃놀이를 하였다는 것이 착안해 관광용으로 일본식 목조선을 탈 수 있는데, 우리가 갔을 때에는 이용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과거에는 이 배를 타는 이용객들이 굉장히 많았다고 한다. 한국과의 인연은 이곳 린쓰린 공원이 드라마 <풀하우스 TAKE 2>의 촬영지라고 한다.


린쓰린 공원의 연못


이곳은 정말 어마어마하게 넓어 상당히 많은 체력이 필요하다. 그래도 수목이 워낙 조밀해서 걷는 길이 나무가 만든 그늘이라 어마어마하게 덥지는 않았다. 소위 <일보일경>이라는 말답게 특별히 어디가 명소라고 꼽기가 어려울 정도로 곳곳이 명소다. 연못에는 잉어와 자라, 붉은 귀거북을 쉽게 볼 수 있다. 붉은 귀거북은 미국이 원산인데 한국에서는 어렸을 적에는 동네 수족관에서도 많이 보았지만 생태교란종이라는 주장이 있어 이제는 수입이 금지된 동물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이런 연못이나 해자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아마 이 거북들이 차도와 인도를 건너 들어왔을 리는 없고 누군가가 방생하였을 것이다.


저곳에서는 한가하게 차를 마실 수 있다. 물론 유료.


다음날 우리는 고토덴 전철을 타고 다카마쓰 성으로 갔다. 고토덴은 100년의 역사를 가진 오래된 전철인데 3개 노선으로 되어 있고 다카마쓰를 도시의 주요 거점을 연결하고 있어 여행을 할 때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다만 오래된 역사답게 차량의 상태는 아주 낙후되어 있다. 한국에서는 선풍기가 달린 열차는 아주 오래전에 사라졌지만 이 고토덴 열차를 타면 한국의 80년대 내지 90년대 초중반쯤에나 볼 수 있었던 선풍기가 달려있다.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이다.


고토덴 전철 내부


다카마쓰 성은 일본 3대 수성 중 하나로 꼽히는데, ‘일본 3대’라는 말은 워낙 자주 듣기 때문에 근거는 모르겠다. 바닷가에 지어진 성이라서 내륙의 성과는 무엇이 다를지 참 궁금했다. 막상 가보면 나 같은 건축 문외한의 입장에서는 특징을 잘 모르겠지만 수성의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는 한다. 해자에는 바닷물이 채워져 있는데 굴 등 어패류가 생식하고 있고 도미를 방류하는 장소로도 사용된다고 한다.


다카마쓰 성 해자. 바닷물이라고 한다.


성에 가면 중심이 되는 천수각을 찾게 되는데 아쉽게도 다카마쓰 성은 1884년 천수를 해체한 이후 현재까지 복원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찾아오는 사람이 아주 많지는 않아서 덥지만 않으면 한적한 분위기라 산책하기에 좋다. 전망대가 있는데 올라가면 바람이 많이 불어 상쾌하다. 다만 대단한 풍경이 보이지는 않는다.


해자에 설치된 넓은 나무다리가 꽤 운치 있는데 만약 리쓰린 공원을 먼저 가 보지 않았다면 좋은 구경거리가 되었겠지만, 아무래도 외부로부터의 방어가 주 목적인 성에 설치된 다리에서는 풍경을 감상하기 위한 정원에 설치된 다리와 같은 멋진 풍경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전망대에서 본 풍경

다카마쓰는 맛있는 우동과 리쓰린 공원, 이렇게 먹을 거리, 볼 거리가 있어 입도 즐겁고 눈도 즐거운 곳이다.



강쉡의 먹방일기


오키나와에 소바가 유명하다면 다카마쓰는 두말할 것 없이 우동이 유명하다. 다카마쓰가 포함된 가가와현은 1인당 연간 우동 소비량이 230그릇으로 일본 내 1위이며 우동 생산량 역시 독보적으로 1위이다. 신문에는 따로 우동 정보를 알려주는 카테고리가 있을 정도이다. 개인적으로는 오키나와 보다 이쪽이 더 식당에 대한 선택권이 적다고 보는데, 오키나와는 그래도 관광지 특성상 때문에 스테이크나 바다포도와 같은 다른 명물들도 있지만 여기는 오로지 우동에 모든 식생활이 집중되어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그런지 일본에서 식생활로 불균형 영양공급 지역으로 뽑힌 두 지역 중 하나라고 한다(다른 한 곳은 당연스럽게 오키나와).


다른 지역에서 맛볼 수 없는 여러 스타일의 우동메뉴로 지루하지 않게 다양한 우동을 즐길 수 있다. 이렇게 이곳은 우동이 유명하기에 일본 여러 지역에서 우동을 먹기 위해 관광을 온다. 유명한 식당을 소개하는 택시 투어, 버스 투어부터 우동 만들기 체험, 우동 관련 기념품 등 우동에 관해서 즐길거리가 넘친다.


우리도 사전조사를 해서 동선에 맞게 나름 우동을 즐길 준비를 했다. 기본적으로 우동집은 반 셀프다. 접시를 갖고 줄을 서서 우동을 고르면 준비한 면을 한 번씩 데쳐주는 방식이다. 배식대에는 곁들여 먹을 수 있는 갓 튀긴 튀김이나 주먹밥 등을 자유롭게 고를 수 있다. 다양한 튀김들이 맛있는 냄새를 풍기며 손님을 유혹한다. 면은 소, 중, 대로 양을 선택할 수 있는데 튀김을 곁들인다면 소로도 충분하다.


사누키 우동 우에하라 본점 |


리쓰린 공원 근처에 있는 우동집인데 이번 우동 투어의 스타트를 끊은 집이다. 이곳의 특이한 점은 손님이 알아서 생면을 데쳐서 담아야 하는데 데치는 시간은 알려준다.


육수와 다진 생강, 쪽파, 튀김부스러기를 담을 수 있는 셀프바가 있다.



카케우동


우리가 알고 있는 기본우동을 카케 우동이라고 하며 가장 많이 먹는 스타일이다. 우동에 다진 생강을 올리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가쓰오나 멸치 국물의 잡내를 없애주고 개운한 향을 더해 아주 좋았다.


첫 집이라 아무 생각 없이 튀김을 마구 담았는데 양이 많아 배가 매우 불렀다. 우엉이 들어간 채소 튀김, 파래 맛이 많이 나는 치쿠와어묵 튀김이 인상적이다.



우동 바카이치다이 |


이튿날 점심에 간 우동집이다. 따뜻한 면에 버터와 계란을 넣고 비벼 먹는 가마버터 우동이 시그니쳐인 우동가게다. 이른 방문에도 대기열이 꽤 길지만 대부분 10분 컷으로 먹고 나오는 가게라 생각만큼 오래 기다리지 않았다. 일본 관광객들도 순례할 만큼 유명한 맛집인데 우리가 방문했을 때도 일본 관광객이 많이 있었다.



가마버터 우동


소개 책자에는 까르보나라 스파게티와 비교한다. 가마버터 우동에만 주는 특제 쯔유와 신선한 계란, 버터, 굵게 부서트린 후추의 조합이 쫄깃한 면에 눅진하게 녹아 버터의 향과 감칠맛, 짠맛의 조화가 일품이다.


니쿠 붓카케 우동


삶은 우동면을 찬물에 헹궈 진한 쯔유에 차게 먹는 우동인데, 이 집은 여기에 고기를 곁들였다. 뜨끈한 가마버터우동과 차가운 붓카케 우동을 같이 먹으니 뜨찬뜨찬 조합으로 끝없이 들어간다. 이 집은 우동에 곁들이는 쯔유가 다른 집보다 더 훌륭해 이런 특색 있는 맛을 내는 것 같다.



메리켄야 다카마쓰점 |


다카마쓰 역 앞에 있는 우동 체인점인데 전국구에 퍼져있는 체인점이다. 면자체가 생면이라 퀄리티가 좋으며 가격도 저렴하다. 다카마쓰는 점심시간 이후 열린 곳을 찾기 힘든데 여기는 역 앞이라 그런지 브레이크 타임 없이 저녁시간까지 열려있다. 녹차가 나오는 정수기가 있어 따끈한 차를 리필해서 먹을 수 있다.



카마아게 우동 & 붓카케 우동


카마아게 우동과 붓카게 우동을 시켰다. 카마아게 우동은 삶은 우동과 삶은 면수를 함께 담아 간을 해주는 우동인데, 부드러운 식감을 즐기기에 좋다. 이 집 역시 셀프바가 있어 다진 생강, 튀김옷, 쪽파를 양껏 올릴 수 있어 매우 좋다. 매운 걸 좋아하면 시치미를 뿌려 먹는 걸 추천한다.





란마루 |


다카마쓰의 또 하나의 명물 요리인 호네츠키도리를 먹으러 간 곳이다. 여러 여행책자에 소개되어 있었다. 일본의 음식은 간이 센 곳이 많은데 원조집이라 불리는 잇카쿠 타카마츠텐은 매우 짜다고 하고 생각보다 평이 안 좋아 이곳을 선택했다. 물론 여기도 간은 약하지는 않았다.



호네츠키도리 & 소유마메 & 주먹밥


주문하면 양념된 닭다리살을 구워 주는데 후추 외에 향신료를 넉넉히 넣어 매콤하고 잡내가 느껴지지 않는 다. 양배추를 같이 주며 주먹밥을 곁들여 먹는 것을 추천한다. 닭다리살의 기본 간을 세게 하여 구우면서 나온 닭기름을 소스로 활용하여 주먹밥과 양배추를 찍어 먹는데 그 맛이 일품이다.


가이드에는,

오야도리 - 노계의 다리로 요리해 질기지만 기름이 맛남

하나조리 - 영계의 다리로 고기가 부드러움


이렇게 두 종류가 소개하고 있어 둘 다 맛보고 싶었으나 오야도리는 판매하고 있지 않았다. 질기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 팔리고 조리시간이 길어 자주 운영하지 않는 것 같다.



사이드 안주로 다카마쓰에서 술안주로 자주 활용된다는 소유마메를 시켰다. 알이 큰 리마콩을 달달하게 간장에 조렸는데 부슬부슬한 식감이 감자조림처럼 술안주로 그만이다. 전반적인 음식의 퀄리티는 아주 좋다.


다만 기본으로 주는 안주가 랜덤인 것 같은데(우리는 데친 새우를 받음), 이게 결제 시 자릿세로 가격이 붙는다. 기본 안주인줄 알았는데 740엔 이상 금액이 붙어 덤터기를 쓰는 기분이 들 수 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일본은 계산서를 보면 인당 자릿세가 붙는 술집이나 음식점이 있다. 그 금액이 결코 적지 않으니 잘 확인하고 가야 기분이 상하지 않는다. 시키지 않은 기본안주를 주거나 미슐랭이 붙는다면 자릿세가 있다고 알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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