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름은 욕 같지만 아름다운, 구라시키

by 평택변호사 오광균
이 글은 함께 여행한 두 명의 저자가 참여하였습니다. <오변의 여행일기>에서는 여행지에서의 감상을 오변이, <강쉡의 먹방일기>에서는 여행하며 먹었던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강쉡이 썼습니다.


오변의 여행일기


구라시키는 인구가 50만에 가까운 큰 도시다. 교통이 편리해서 인구가 많은 것인지 인구가 많아서 교통이 편리해진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신칸센이 지나가서 히로시마나 오카야마에서 접근하기 좋은 위치에 있다. 관광객은 주로 구라시키 미관지구를 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우리는 사실 미관지구보다는 오하라 미술관에 더 관심이 있었다.


구라시키 미관지구는 전날 갔던 다케하라의 거리보존지구와 마찬가지로 일본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국가 중요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로 선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에도시대 초기인 1642년 대관소(에도 막부 직할령 중 대관이 관할한 영지)가 설치되면서 번영하기 시작했다. 구라시키에는 끝에 ‘시마’, 즉 섬으로 끝나는 지명이 많은데 일대의 섬을 16세기때부터 간척하여 평지가 된 곳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한강을 간척하면서 잠실섬이라는 명칭에서 섬을 떼어버렸는데 여전히 옛날 지명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일본스럽긴 하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구라시키 미관지구는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하여 만든 곳의 느낌이 강해 실제로 갔다가 실망한 곳이라거나, 유튜버와 브이로거들의 소도시 감성이란 거품이 만든 몰개성한 곳이라는 비판이 있다고도 하고, 심지어 오하라미술관은 미술에 조예가 있는 게 아니라면 비싼 입장료를 내면서까지 굳이 갈 필요가 없다고도 한다. 모두 동의하기 어렵다. 그러한 비판은 이곳의 역사와 개성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피라미드도 그저 돌 쌓아놓고 관광객을 유치해 놓은 곳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운하 양 옆으로 잘 가꿔진 버드나무가 아름답다


구라시키 미관지구를 가르는 구라시키 강은 자연 하천이 아니라 다카하시 강과 고지마 만을 연결하기 위하여 만든 운하다. 이곳은 바다로 나가는 항구의 기능보다는 백성들로부터 걷어들인 연공미를 집적하기 위한 곳으로써의 역할을 하였다. 이곳을 관할하는 대관소에서는 이곳 상인들의 자치를 인정하고 우대하는 정책을 폈고 덕분에 상업이 발달하게 된다. 상인들은 이 운하 주변으로 창고가 딸린 주택을 짓기 시작하는데, 이를 ’구라야시키‘라고 한다. 구라시키의 지명 역시 이 구라야시키에서 나온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구라시키 미관지구에 들어선 잡화점과 카페들은 대개 이런 옛날 창고 건물을 개조한 것이다. 이 건물들은 서구의 영향을 받아 흰색 흙벽으로 되어 있다. 일본의 다른 옛날 거리가 대개 목조로 되어 있어 검거나 짙은 나무색인 것과 비교된다. 운하에서는 마치 베네치아처럼 나무배를 타고 관광을 할 수 있는데 이용객이 많지 않은 것 같다. 이렇게 흰 벽의 옛날 건물과 운하의 조화는 일본에서도 드문 독특한 풍경이다. 삿포로를 여행하면서 자주 가는 오타루 운하에서도 볼 수 없는 풍경이다.


구라시키 미관지구는 인도가 넓다. 그런데 차도 다닌다.


구라시키 미관지구의 길은 일본 답지 않게 넓어서 걷기가 편한데, 다만 차도 지나간다. 이런 거리는 차 없는 거리로 조성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여행자의 입장에서 또 불만인 것은 상당히 많은 문화재 건물이 비공개라는 점이다. 복원과 수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보존을 위해서 공개하지 않는 것이라면 더 이상 문화를 창출하지 않는데 문화재로서 어떤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다.


요즘엔 인스타 감성사진 찍는 곳으로 홍보를 많이 하고 있는데, 사실 관광객의 연령대는 꽤 높은 편이다. 아무래도 이곳은 익사이팅하지 않고 슬슬 산책이나 하고 공방에서 만든 소품이나 구경하는 정도의 관광해야 하는 곳이기 때문인 것 같다. 물가는 관광지답게 비싼 편이다. 카페는 많지만 식당은 별로 없고 밥값도 비싸다.


구라시키 미관지구의 백미는 역시 오하라 미술관이다. 오하라 미술관은 구라시키 미관지구 초입에 있는데 우리는 사실 오하라 미술관에서 체력의 대부분을 소진해 버렸기 때문에 정작 미관지구에서는 체력과 시간을 많이 할애하지는 못했다.


오하라미술관은 1930년에 세워진 일본 최초의 상설 서양미술관으로 구라시키의 기업가 오하라 마고사부로가 설립했다. 이 미술관은 일본의 서양화가 고지마 도라지로와 관련이 깊다. 마고사부로는 미술 수집가로도 유명한데 도라지로의 예술에 대한 겸손한 태도를 높이 사 그를 세 번이나 유럽으로 보내어 후원하였다. 도라지로는 유럽에서 미술을 공부하면서 서양의 미술과 일본의 미의식 사이에서 갈등하며 엘 그레코, 모네 등과 같은 예술가들의 걸작을 선택하여 구라시키로 가져왔다. 도라지로가 1929년 사망하자 이듬해 그를 추모하며 지은 미술관이 바로 오하라 미술관이다.


미술관 건물은 그리스 신전을 떠오르게 하는 이오니아식 기둥을 가지고 있어서 구라시키에 오는 관광객이라면 미술관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이 건물 사진은 꼭 찍고 간다. 또, 만화 <원피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니코로빈의 고향인 오하라 섬을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오하라 미술관, 곧 100년이 되는 오래된 건물이다.


이 미술관에서 모네, 피카소, 칸딘스키, 고갱, 앤디 워홀 등의 유명 작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역시 엘 그레코의 <수태고지>는 특별히 한쪽 코너를 따로 두어 전시하고 있다.


엘 그레코 <수태고지>

2층에 올라가면 레옹 프레데릭의 작품 <All Things Die, But All Will Be Resurrected through God's Love>(모든 것은 죽는다. 그러나 모두 신의 사랑으로 부활할 것이다)가 벽면 한쪽을 빈틈없이 딱 들어맞게 전시되어 있다. 한국식 일본어로 말하면 아타리가 딱 맞는다. 설립자 오하라 마고사부로가 이 작품을 특별히 좋아해서 처음부터 이 작품을 딱 맞게 전시할 수 있게 미술관을 설계했다고 하니 미술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다.


레옹 프레데릭 , All Things Die, But All Will Be Resurrected through God's Love


미술관은 겉에서 보는 것보다 규모가 꽤 큰데 그만큼 관람료도 꽤 비싸다. 한국어 음성 가이드를 유료로 대여할 수도 있고 주요 작품에는 한국어 설명도 붙여져 있기 때문에 관람이 어렵지 않다. 특별히 촬영불가라고 되어 있는 곳 외에는 사진 촬영이 가능하다고 하는 것 같다. 작품 사진을 찍는 사람은 종종 보였는데 굳이 왜 찍는지는 모르겠다. 구글 아트 앤 컬처에서 미술관을 관람하듯 VR 비슷하게 관람할 수 있고, 작품의 아주 고해상도 사진도 볼 수 있다. 물론 실제로 보는 것 같지는 않지만 어설프게 직접 카메라로 찍어 가는 것보다는 낫다. 평소 선호하는 작가나 작품을 찾아본 적이 있다면 모를 수 없는데 열심히 작품을 사진으로 찍는 사람들은 아마도 평소 미술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우리가 갔을 때는 별관이 공사 중이라 관람할 수 없었던 것은 매우 아쉽다. 공사 중이라고 해도 관람료를 깎아주지는 않았다.


이렇게 구라시키는 볼 것도 많고 사진 찍을 곳도 많은 데다가 미술관이 아주 좋아서 다리가 아플 준비를 단단히 하고 가야한다. 우리가 갔을 때 비만 좀 덜 왔으면 더 좋았을 뻔 했다.




강쉡의 먹방일기


다음날 우리는 오하라 미술관을 가기 위해 아침 일찍 히로시마역에서 구라시키역으로 갔다. 오하라 미술관은 일본의 최초 서양미술관이자 사립 미술관인데 구라시키 미관지구 거리에 있다. 멋스러운 건물 외관 안에 들어가면 피카소, 모네, 르누아르, 밀레 등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다. 한국말 도슨트도 대여가 가능해 설명을 들으며 미술작품을 감상하면 이해하기가 더 쉽다.


돈카츠 갓파


오하라 미술관 가는 중 우연히 찾게 된 돈가스 맛집.


역에서 미술관 가는 시장 길목에 있다. 역에서 내리자마자 일찍 이동해서 오픈하기 전 리스트에 이름을 올릴 수가 있었다. 이미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어 약 30분 정도의 웨이팅을 하고 이후로도 30분 정도의 조리시간을 기다린 후에야 음식을 영접할 수 있었다. 웨이팅 중에 주문을 미리 받은 후 손님이 식당 안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을 때쯤 조리를 시작해 갓 튀긴 돈카츠를 맛볼 수 있다.


조리하시는 여사장님의 포스가 인상적이다. 조리하는 동작과 말투, 움직임에서 요리에 대한 프라이드가 묻어 나온다. 에비카츠가 있는 햄버그 A세트가 품절되어 치킨과 치킨카츠가 있는 햄버그 C 세트와 이 집의 시그니쳐라고 하는 나시로 돈가스 정식을 시켰다.



나시로 돈카츠 정식


이 집의 시그니처 돈카츠로 비계가 붙어 있는 상등심 부위를 사용했다. 상등심은 돼지고기 중 가브리살과 등심이 만나는 위쪽의 부분인데 살코기와 비계가 붙어 삼겹살 느낌이 난다. 삼겹살보다 비계가 더 고소하여 담백한 등심의 맛을 살려준다.


빵가루는 수제 느낌으로 시판 빵가루 보다 입자가 크고 부드럽다. 그 빵가루가 바삭할 정도로 고온에서 바짝 튀겨 겉면이 굉장히 크리스피 하게 바뀐다. 우리나라에서 먹은 일본식 돈카츠 보다 더 웰던 느낌으로 바짝 튀겨 주기 때문에 겉면이 갈색에 더 가깝다. 곁들여 주는 따뜻한 브라운소스가 바삭한 곁면에 쫀득한 비계와 육질에 매우 잘 어울린다.



햄버그 C 세트


햄버그와 치킨카츠를 곁들여준다. 햄버그는 돈카츠를 만들 때 사용하는 부위에서 나온 고기들을 활용해서 만든다. 치킨카츠는 두툼한 닭다리살을 바싹 튀겨 겉바속촉의 극치를 보여 주는데 이와 대비되게 햄버그는 굉장히 촉촉하고 부드러웠다.



둘 다 미소장국과 밥을 푸짐하게 준다. 양배추에 샐러드 소스를 안 주는 게 조금 의아했는데 일본에서는 양배추 샐러드 소스를 안 주는 곳이 꽤 있었다.


웨이팅부터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굉장히 신경 써서 착착 진행하기 때문에 오래 기다린 시간에도 불구하고 불쾌하지 않았고 박력 넘치는 오픈 주방을 보며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었다.


https://mylaw.kr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