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해라.
당신이 만나는 사람은 모두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라는 명언이 있다. 누가 한 말인지는 모르지만 가정법원 화장실에서 본 말이다.
예전에 상속 사건 조정을 하고 있는데, 판사가 이상한 말을 했다.
"보험료를 피고가 냈다는 증거가 있나요?"
"이미 지난달에 금융거래내역을 서증으로 제출하고, 내용을 하나하나 정리까지 했습니다."
판사는 이미 한 달 전에 낸 서면과 서증을 보지 않고 온 것이다.
"수익자가 변경되었는데 어떻게 사망보험금을 피고가 수령했지요?"
"상해보험금 수익자만 변경된 것이고 사망보험금 수익자는 피고입니다. 사실조회 회신에도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판사는 믿지 않았다.
"하나의 보험계약에서 어떻게 수익자를 따로 지정할 수 있죠?"
"상해 수익자하고 사망 수익자는 원래 다르게 지정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태블릿으로 보험사에서 법원에 제출한 자료를 보여주었다.
판사는 믿지 않았다.
당사자가 제출한 서류도 아니고 사실조회를 하여 보험사에서 직접 제출한 서류도 믿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난감했다. 결국 다음 재판 때까지 다시 정리해서 말씀드리겠다고 하고 자리를 끝냈다.
그런데,
상속 재판에서 만날 보는 것이 보험금인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일 년에 수 백 건 씩 사건을 처리하는 판사가 하나의 보험 상품에서 상해시 수익자와 사망 시 수익자를 다르게 지정할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면 지금까지 재판을 어떻게 했다는 것일까.
그것보다 당사자에게 지적을 할 것이면 기록을 제대로 보고 공부도 해서 와야 하는 것이지, 자신의 상식과 짐작만으로 어떻게 재판을 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사실 그 판사뿐만 변호사도 자신이 아는 것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착각하는 때가 많다. 하도 다양한 사건을 하다 보니 잡다한 지식이 쌓이는데, 그러다 보니 웬만한 주제에는 한 마디씩 끼어들 수 있을 때가 많다. 게다가 변호사 말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경청해 주니까 무슨 전문가라도 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니 얄팍한 지식으로 엉뚱한 소리를 하다가 된통 당하는 때가 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때다.
그건 그렇고,
형사 사건도 아니고, 당사자가 재판 수수료를 내고 하는 가사 사건은 좀 친절해야 하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