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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택변호사 오광균 Mar 05. 2021

소장을 받고 원고 변호사에게 전화하는 피고

주로 소송을 하다 보니 의뢰인의 반은 원고고 나머지 반은 피고다.


원고가 될 의뢰인으로부터 사건을 수임하여 소장을 작성해서 법원에 접수하면, 법원은 접수된 소장을 피고에게 발송한다.


소장에 사무실 연락처가 기재되어 있다 보니 한두 달에 한 번 꼴로 피고로부터 전화가 온다. 대개는 이런 유형들이다.



#유형 1 - 피고가 해야 할 것을 물어보는 사람


"소장을 받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해가 가지 않지만 원고 변호사에게 피고가 뭘 해야 하는지를 물어보는 사람이 꽤 많다. 변호사 입장에서도 매우 당황스럽다. '그냥 내버려두세요'라고 할 수도 없고, '30일 내에 답변서를 제출하세요'라고 할 수도 없다.


'그냥 내버려두세요'라고 했다가 피고가 진짜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원고 청구를 그대로 인용하는 판결이 나올 수도 있는데, 의뢰인인 원고에게는 가장 좋은 결과이지만 나중에 피고가 '원고 변호사가 시켰다'라고 하면 곤란해진다.


'30일 내로 답변서를 제출하세요'라고 하면 소송의 상대방인 피고를 도와주는 셈이 되니, 원고 변호사로서는 할 수 없는 대답이다.


법원에서 소장을 보낼 때에는 항상 안내서를 동봉해서 보내고, 안내서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자세하게 적혀있다. 그런데도 귀찮아서 보지 않고 그저 소장에 나와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한 것이다. 심지어 보낸 사람이 법원이지 원고가 아닌데도 말이다. 우편봉투도 보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동봉된 안내서를 보세요'라고 하거나 '법원에 물어보세요'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소송 상대방인 피고를 도와주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결국 원고 변호사로서 할 수 있는 대답은 "그걸 왜 저한테 물어보나요?"밖에 없다.



#유형 2 - 원고의 연락처를 물어보는 사람


간혹 원고의 전화번호를 물어보는 사람도 있다. 당연히 원고의 동의 없이는 알려줄 수 없다. 개인정보니 당연한 것이다.


변호사 입장에서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전해는 드리겠습니다"라고 할 수밖에 없다.



#유형 3 -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사람


"소장의 내용은 다 거짓이고, 나는 억울하다"라고 하소연하는 사람도 많다. 웬만하면 이야기는 다 들어주는데, 그 이유는 진짜로 피고의 억울함을 들어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피고가 하는 이야기 중에 '원고에게' 유리한 이야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필요한 경우에는 녹음도 한다. 녹음할 때 당사자의 동의는 받지 않아도 합법이다.


진실한 실체 관계가 어떠한지는 변호사도 알 수 없다. 그저 원고가 하는 말이 다 맞다는 가정 하에 소송을 진행한다. 원고가 거짓말을 한 것일 수도 있으나, 피고의 말만 듣고 원고가 거짓말을 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세상 사람 모두가 원고의 말을 믿지 않더라도, 변호사는 원고의 말을 신뢰해야 한다. 그것이 변호사가 하는 일이다. 상식적으로 믿기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천에 하나 만에 하나라도 원고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만큼 억울한 일도 없을 것이다.


물론 원고가 거짓말을 하였다는 것을 명백하게 알게 되었을 때에는 사임할 수 있고, 계약서에도 이러한 조항이 들어가 있다. 



#유형 4 - 다 인정하겠다는 사람


대개는 금전 청구에서 아주 드물지만 다 인정하겠는데, 당장은 돈을 지급하기 어려우니 좀 기다려달라고 사정하는 사람도 있다. 이 때는 '언제' 다 갚을 것인지를 물어본다. 원고 입장에서는 이미 지출한 소송비용도 있고, 받아야 할 이자도 있기 때문에 피고가 제시한 안이 원고가 양보할 수 있는 수준인지를 따져보아야 한다.


그런데  '한 달 내', '3개월 내'라고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개는 '집이 팔리면'과 같이 아무 의미 없는 조건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


'집이 팔리면 돈을 갚겠다'라는 말은 '집이 안 팔리면 갚지 않겠다'라는 말이거나, '집을 전세로 내놓고 갚지 않겠다'라는 말이다.


만약 '3개월 내'와 같이 합리적인 제안이라면 합의서를 쓰고 소를 취하하는 것이 아니라 원고의 의사를 확인한 후 법원에 '피고가 이러이러한 제안을 해 왔으니 화해권고 결정을 내려달라'라고 요청을 할 때가 많다. 합의서를 써 봤자 안 지키면 또 소송이 필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피고가 소장을 받고 원고 변호사에게 전화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심지어 전화를 친절하게 받지도 않는다. 동봉된 안내서를 보더라도 평소에 잘 접하지 못하는 법률용어들이 많아서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그걸 물어볼 사람으로 소송 상대방인 원고 변호사를 선택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소송을 전쟁에 비유하자면 적군에게 전화해 '내가 어떻게 싸우면 될까요'라고 물어보거나, '아군이 얼마나 힘든지 아십니까'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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