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을 빙자하여 돈을 빌려간 후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헤어지자고 하고 잠적한 사건을 하고 있었다. 증거로 쓰기 위해 의뢰인으로부터 카카오톡 캡쳐 화면을 받았는데 상대방 이름이 달랐다. 나는 의뢰인에게 전화를 하여 물어보았다.
"혹시 피고가 가명을 쓰나요?"
"네."
"결혼할 사이인데 가명을 쓰는 건 좀 이상하지 않나요?"
"처음엔 저도 가명인지 몰랐고 나중에 알게 됐어요."
사람들이 가명을 쓰는 이유는 다양하다. 원래의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개명까지는 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고, 종교적인 믿음 때문인 것일 수도 있고, 그냥 잠적하기 쉽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사건을 하다가 가명을 발견하면, '아, 이 사람이 문제였겠구나'라는 생각이 드는데, 대개 그 예감이 틀리지 않다.
한번은 나이 지긋하신 남자분의 이혼 사건을 맡았는데, 양쪽 모두 황혼무렵에 재혼을 한 사이였다. 각서 같은 증거서류에 상대방인 아내의 이름이 달라서 물어보니 가명이라고 했다. "혼인신고까지 하고 같이 살려고 만났는데 왜 가명을 쓰나요?"라고 물어보니 모르겠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말을 할 수는 없지만 가명을 쓰는 아내는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은 아니었고, 덕분에 소송만 4개 째 하고 있다.
만나는 사람이 가명을 쓴다면 의심부터 해야한다.
가명을 쓰지 않더라도 남의 이름으로 사업을 하는 사람이 많다. 배우자나 부모, 자식의 이름을 빌려 쓰기도 하고 자신이 고용한 직원의 이름을 빌리기도 한다. 대개는 스스로 신용이 나빠서인데 거의 모든 경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남의 명의를 빌려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그 사업으로부터 수익이 생기면 자기가 챙기고 손해가 발생하면 잠적한다. 그러기 위해서 이름을 빌린 것이다.
오래전에 남편이 아내의 이름으로 건설업을 한 사건이 있었다. 나는 아내 쪽으로부터 의뢰를 받았다. 남편은 아내는 이름만 빌려준 것이라면서 명의개서(주식의 명의를 바꾸는 것) 청구를 해 왔다. 그 소송 과정에서 거래처와 함께 불법으로 보조금을 수령한 사실이 드러났기에 검찰에 고소를 하자, 남편은 자기 명의의 회사가 아니라며 발뺌을 하였다. 결과적으로는 명의개서 청구는 기각되었고, 형사사건에서 남편은 1심에서는 징역형을 선고받았다가 나중에 합의해주어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자기가 하려는 사업이 확실하고 전망도 좋다면 자신의 이름으로 사업을 할 것이고, 과거의 실패 때문에 자금융통이 어렵다면 타인의 명의를 빌리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동업을 하였을 것이다. 나는 이름을 빌려쓰는 사업을 하는 사람치고 회계장부를 투명하게 보여준 경우를 본 적도 없고, 아예 회계 개념이 있는 사람조차 본 적이 없다.
이름을 빌리고 빌려주는 것도 거래라면 리스크와 리턴은 균형을 이뤄야한다. 그런데 대개 이름을 빌려주면 사업에 대한 리스크는 모두 가져가면서 리턴은 별로 없는 상황이 된다. 이러한 거래는 해서는 안 된다.
만나는 사람이나 거래하는 상대방이 가명을 쓰는지 혹은 다른 사람의 명의를 빌려 쓰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금전거래에서 쉽게 드러나곤 한다. 가령 돈을 빌려달라면서 현금으로 달라고 하면 의심을 해야한다. 계좌이체로 돈을 빌리면서 자신의 통장이 아닌 가족이나 다른 사람의 통장으로 넣어달라고 하면 역시 의심을 해야한다. 신용이 좋지 않아 통장을 만들 수 없다는 말은 모두 거짓말이다. 돈을 빌리는 것이 아니라 예치하는 것은 신용과 관련이 없다. 자신의 명의로 통장을 만들면 압류될까봐 개설을 하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이러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면 돌려받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
친분을 이용하여 이름을 빌려달라고 요구한다면, 그 사람과의 관계를 끊어내야 한다. 가족이어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창피하여 말은 하지 않지만 가족 중에 한 사람 때문에 가족 전체가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할 때가 많은데, 그런 사람이 무리한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도움을 주는 것도 가족이 해야할 일이다. 가족이든 친구이든 도움을 줄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돈이나 명의를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부탁을 단호하게 거절하고 신용회복위원회에 데려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