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 리뷰
이 글은 영화 <기생충>의 결말과 영화 <설국열차>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기우와 기정이가 사는 곳은 반지하방이다. 기정이와 기우의 가족이 박사장네서 탈출해서 비를 뚫고 내려오고 또 내려오고 또 내려와서야 도착한, 1층도 아닌 반지하방이었다. 그래서 박사장네와 기우네는 위치에너지 자체가 극단적으로 다르게 설정된 곳으로 보인다. 박사장네에서 끊임없이 내려오고도 지면의 아래에(나중엔 수면의 아래에) 있는 곳이니까. 그런데 이게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이야기는 그 지하방에서 시작한다. 부잣집 아들래미로 보이는 기우의 친구는 반층 위인 지면에서 등장하지만 지면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과정이 있거나 아래를 내려다보는 장면이 나오진 않는다. 기우의 친구는 '들어온다.' 그의 움직임의 방향은 'down'이 아니라 'in'. 기우가 박사장네 집을 처음 갈때도 열심히 걸어'올라가'긴 했지만 기정이 집에 갈때는 혜화역까지 가달라고 할뿐 내려가는 모습은 나오지 않는다.
기우네 가족은 늘 지상으로 뚫린 창을 앞에 열어두고 그 방향을 바라보며 밥을 먹고 맥주를 홀짝이지만 그건 대단히 높지 않았다. 기우네 가족이 바라본 건 단지 좀더 비싼 맥주, 일한 만큼의 벌이. 아마 그건 반층 위의 사람의 오줌이 우리집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만큼의, 딱 반층위의 삶 정도였을 것이다. 그건 대단한 꿈은 아니었다, 그저 기우네 가족처럼 방에 편히 앉아 고개만 살짝 드는 정도일 뿐.
그러니 기우네가족은 자기자신이 불행하다, 못났다, 저급하다, 따위의 생각은 하지 않고 살았을 것이다. 부잣집 친구가 집으로 들어와서 자기네 민낯을 보는 건 부끄럽지만 기우가 연대붙으면 까짓거 금방 따라잡을 정도의 기울기니까. 자신의 노력과 실력을 '인정받기만 하면', 아버지가 제대로된 직장에 붙기만 하면, 올라갈 수 있을 정도의 높이였을 것이다. 박사장네도 조금 멀뿐 영화의 초반에는 부잣집 친구정도의 높이, 딱 반 층 위 정도의 높이인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소했던 차이는 그렇게 꿈꾸던 안정된 벌이를 하러 가는 순간부터 더 벌이지기 시작한다. 꿈에 다가갔는데 꿈이 더 멀어지기 시작하는 것. 심지어 그 꿈에 가족들을 다 집어넣고 그 성공파티를 하는 날, 기우는 확인한다, 박사장네 집을 나와서 내려오고 또 내려오고 한참을 내려오는데도 집은 나타나질 않는다. 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려오는 계단을 보면서 기우는 자신의 위치를 알게 된 것이다. 자신이 꿈을 향해 확장시켜둔 세계에서 하염없이 낮은 곳이 자기 본연의 자리라는 걸.
기우네 가족이 이전에 살던 세계는 수평에 가까운 세계. 거기에선 오줌 싸는 인간이나 나나 부잣집친구나 'in and out', '다름', '조금 불편하고 편함', 정도의 차이에 그쳤다. 그저 아버지가 운이 없을 뿐이고 기우가 공부를 쉴 뿐이고, 그래서 지금은 친구보기 좀 부끄럽지만 그게 전부였다.
박사장네 집을 알게 된 후 한없이 수평에 가까웠던 세계에 경사가 생기기 시작하고 계단이 늘어나더니 수평은 없어지고 수직이 기우의 세계를 먹어버린다. 코가 큰사람, 눈이 작은 사람, 머리가 직모인 사람의 '차이' 속에 평생을 살아왔는데 어느날 나타난 사람들이 '검둥이' 라고 불렀을 때와 같은 충격이 기우에게 찾아왔다. 가끔 시내도 놀러가고 용돈 모아 브랜드 청바지도 사면서 살다가 다른 지역 대학을 갔더니 '너네 동네에도 영화관 있어?' 라고 묻는 것 같은 일이 기우에게 생겼다.
기우는 자기의 세계 안에서 나름의 룰을 지키며 성실하게 살아왔는데 어느날 사람들이 거긴 변방이라고 한다.
계층의식이란 게 타고난 건 아니다. 어릴 때는 부자인지 가난한지는 모르고 다만 친구가 맨날 싸오는 달디단 불고기 한 점 먹고 싶은 게 다이지 않나. 어느날 내 신발이 나이키가 아니고 대학에 갔더니 내 고등학교 동문회는 없는데 친구네는 수백명이 모인다는 얘기를 듣는다. 내 자아 '바깥'에서 끝임없이 내 위치를 확인시키고 그것이 '선 바깥' 혹은 '까마득한 아래'라고 지정한다. 그게 유학, 결혼을 거치면서 고착화한다. 나는 그대로인데 내가 사소하게 소망했던 것들이 어찌할 수 없는 멀리로 올라가버린다. 내 자리가 바닥 어딘가에 굳어져서 스스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래서 그 자리의 냄새가 배어버리나보다.
냄새. 기택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싶지만 박사장에 의해서 끊임없이 각인되는 하층민의 자리. 기택은 박사장에게서 냄새 이야기를 들을때마다 저급해지고 불행해지고 못나진다.
그런 부조리를 만든건 상층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상층민은 수직의 세계에 살면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 효용가치가 있다. 어쩌면 '상대적'으로만 우월할 무언가가 하층민을 만나면 '절대적'으로 우월한 가치로 확인받을 수 있다. 그래서 계속 선을 긋고 하층민의 지위를 확인시킨다. 수직적 세계관을 유지시키는 자아 '바깥'의 동력이 이들이 된다, 설국열차에서처럼.
기우는 수석을 들고 자신을 위태롭게 하는 문광네 사람들에게 던져버리러 간다. 그들을 없애면, 비오던 그날 밤의 일은 없던 것이 되고, 자신이 다혜옆에 있는 꿈 속에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거 같다. 돌은 무겁다. 바닥에 가라앉는다. 그건 당연히 기우보단 그들에게 어울리는 것일테다, 기우의 마음 속엔. 하지만 그 돌은 기우에게 돌아온다, 두번이나.
기우는 깨어나서 그간일들이 하룻밤 꿈같아서 웃음이 나왔을거 같다. 거품, 허풍, 허세. 인어공주처럼 거품이 되어 사라져버린 꿈. 어제는 모두 기우의 것 같았는데.
기우는 돈을 많이 벌었을까? 500년 걸려서 아버지를 구하진 않았을 테고; 분명한 건, 기우는 다시는 수평의 세계로 돌아오진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기우는 영화 초반의 반지하가 아닌, 박사장네에서 엄청나게 아래에 있었던 지하방에서 눈을 뜬다. 이제는 냄새나고 더러워지기까지 한 것 같다. 그곳은 수직세계의 바닥이다. 그리고 기우는 위만 바라보면서 살아갈 것이다, 아버지를 구하겠다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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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에 기우가 카메라를 응시하는 시선이 꼭 내 속을 쳐다보는 기분이었다. 박사장이 냄새 이야기를 할때, 나는 두 가지를 느꼈다, 지하철 냄새가 싫은 나자신과 그 냄새에 포함된 나자신. 기우가 바라보는 나의 내면에는 수직의 세계가 있다. 하층을 싫어함으로써 나를 하층에서 분리하지만 절대 상층이 되지 못하는 현실의 내가 공존하는 수직의 세계가. 그 세계의 누군가는 결국 상층이 되지만 다시 하층을 분리하여 자신의 지위를 공고히 할 것이다.
박사장을 없앤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박사장처럼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즉, 자본권력을 전복한다고 해서 평등한 사회가 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것을 역사를 통해 목격하며 살아왔다. 내가 부자가 된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는 것 또한 아니다. 세상에는 또다른 기우와 꼬리칸들이 생겨날 것이다. 이미 수직의 세계를 경험한 이후에 수평의 세계를 회복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수직의 세계를 경험하지 않은 다음 세대들을 위해 수직의 세계를 없애려는 노력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영화<설국열차>에서 커티스가 엔진의 자리를 마다하고 기차를 폭파한 것처럼. 그래서 아이들을 순백의 세계에 놓아둔 것처럼.
계급을 만들고 권력에 차등을 두고, 그 권력을 얻는 방식만 '사회의 전복'을 통해 끊임없이 달라져왔던 것은, 계급을 만들고 경계 바깥에 타인을 놓아 자신의 우월성을 입증하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일까?
아마 <설국열차>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이 만드는 세계가 그 본능을 입증하지 않을까 한다. 그 세계가 어떻게 설정됐는지 소설을 안 봐서 잘 모르지만, 나는 그 세계가 보노보의 사회처럼 수평의 세계였으면 좋겠다. 타인을 평화롭게 받아들이고 위와 아래가 없는 사회. 그것이 인간을 동물과 다르게 만든 본능이었다고, 나는 혼자 가정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면 수직의 세계를 경험한 어른은 그 세계를 기어올라가기도, 전복을 통해 바꾸기도 쉽지 않지만, 다만 이런 상상은 가능할 것이다. 다음 세대에게 수직의 세계를 물려주지 않겠다는 의지만으로도 우리는 언젠가, 수백년 후에는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를 당장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본능에 대한 믿음과 현재를 살아가는 세대의 합의일 것이다.
2019년 5월 말이나 6월초
커뮤니티에 쓴 글을 2022년에 블로그에 옮겨오면서 한 번 퇴고, 이번에 옮겨오면서 많이 고쳐서 올려둡니다.
- 블로그 이사 중입니다. 오늘부터는 영화 리뷰들을 옮겨올 예정인데요, 이전 블로그에 러프하게 쓴 짧은 리뷰들은 두고 길게 썼던 오늘의 기생충 리뷰 같은 글이나 긴 글만 다섯 개정도 있는 헤어질 결심, 열개;정도 있는 챌린저스 리뷰들만 옮겨올 예정입니다. 말투나 내용의 일부를 퇴고하면서 가져오느라 영화리뷰 이사부터는 글 올라오는 주기가 조금 길어질 예정입니다.
-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