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와 에고의 화해

영화 <독전> 리뷰

by 사유의 서랍

이 글은 영화 <독전>의 원버전과 확장버전의 결말을 담고 있습니다.





원버전 <독전>을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가 단순히 '이선생'을 찾아야 하는 장르물이라고 본다면 뻔하다면 뻔한 결말로 보인다. 하지만 이 영화가 에고의 이드찾기, 혹은 통제하기를 다룬 자아의 탐험을 장르로 감춘 영화라면 결말이 다양하게 해석되기 때문이다. 난 이 영화를 '심리'안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전투를 마약전쟁으로 묘사한 재치있는 영화로 봤다. 그래서 총소리만 나고 끝난 원버전의 영화의 결말이 어떤 의미에서 마음에 들었는데, 결말이 구체적으로 등장한다는 말에 확장버전을 vod로 구매해서 봤다. 과연 구체적인 결말이 마음에 들까, 하고.


일단 원버전의 영화 해석부터. 이선생은 '이드'다. 본능, 욕망, 살고자 하는 원초적 에너지. 위험하고 매력적인 본능 그대로의 모습이다. 어떻게 움직일지 예상할 수 없고 무의식의 영역에 있어서 찾기 어렵다. 하지만 이드는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통해 삶을 지배하는 본연의 그것이므로 에고는 이드를 자신의 통제하에 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아 전체의 사회성과 생명의 안전이 위협받으니까 말이다.


조형사는 '에고'. 조형사는 이선생을 잡으려고 한다. 그 이유와 의도는 명확하지 않지만 평생의 목적이다. 이선생이 이드라면 그 이유가 명확해진다. 이선생은 세계의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기 때문이다. 즉, 통제되지 않는 이드는 자아라는 세계에 거대한 위협으로 작용한다. 살고자 하는 에너지가 없으면 에고는 유지되지 않지만 그걸 그대로 두면 다른 사람의 음식을 뺏어먹을 수도 있고, 내가 살자고 타인의 생명을 해할 수도 있다. 이선생이 법을 지키지 않듯이 이드는 윤리와 별개로 존재할 수 있다.


이선생(이드)을 자칭하는 브라이언은 슈퍼에고다. 슈퍼에고는 이드의 앞에 서서 이드를 통제하고 이드와 에고를 중재하는 역할을 한다. 이드가 무의식의 영역에서 의식의 영역으로 뛰쳐나오려고 할 때, 슈퍼에고는 이를 잠재우고 에고가 일관성을 잃지 않도록, 도덕과 가치관의 영역에서 표출되도록 제어한다. 그러나 슈퍼에고는 에고에 비해 무의식에 가깝지만 이드 그자체는 아니다.


슈퍼에고가 브라이언의 아버지였을 때, 슈퍼에고와 이드의 역할 구도는 잘 유지되었던 것 같다. 이선생은 불법의 영역에서 돈을 벌고, 브라이언의 아버지는 불법에 발은 담갔으나 스스로는 합법의 영역에서 움직이면서 서로의 선을 유지했다. 즉, 무의식의 영역에 있는 이드의 에너지는 유지하되, 슈퍼에고는 전면에 나서는 나름의 체계를 가졌다.


하지만 브라이언이 아버지를 죽이고 슈퍼에고를 꿰찼을 때(브라이언이 종교학교를 나와 종교지도자였던게 재밌다. 종교적 영역에서 이드는 금기에 가까우니까. 종교를 믿으면 이드가 제거되고 도덕적 자아가 에고를 지배할 수 있을것만 같다.) 이 균형은 깨진다. 슈퍼에고가 돈욕심에 불법의 영역(무의식의 영역)에 직접 발을 들였기 때문이다.


브라이언이 이선생을 용산역 기지(?) 로 데려가 처음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이드의 영역이다. 성적 리비도를 보여주지만 그것은 성적에너지 그 자체가 아닌, 약으로 만든 것이다. 가짜이드(가짜 이선생). 스스로도 모순덩어리다. 기도하자고 말하지만 실제론 폭력을 쓰고, 절제와 도덕의 상징이지만 이드의 통로로서 욕망을 드러내는 -어쩌면 슈퍼에고가 가진 본래의 모순을 그대로 드러내는 상태가 된다.


한편, 이선생(이드)은 자꾸 조형사(에고)에게 묻는다.


"나를 믿어요?"


이드는 에고에게 인정받고 싶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싶다. 에고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사건사고가 이드의 짓이라고 믿고있지만 이드는 억울할 뿐이다. 자신이 한 게 아니라 슈퍼에고가 오류가 난 것이니까. 하지만 자신이 저지른 것도 있긴 하니, 이드는 복합적인 감정을 가지는 것이다.


'진짜 이드를 찾고싶어요?' '진짜 이드가 한것과 아닌것을 알고있어요?' '진짜 이드가 나임을 알아줘요' 이 감정이 모두 담긴 말이 '나를 믿어요?'다. 내가 진짜 이선생임을 알아줘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봐줘요.


이선생은 오류가 난 슈퍼에고를 제거한다. 그것은 고장난 심리 자체의 치유법이었을까? 하지만 그로인해 에고와의 소통 통로가 사라져 버린다. 이드는 무의식의 영역 깊숙히 숨어버린다.


에고가 다시 이드를 찾아내면 어떻게 될까? 에고가 이드를 죽여버리면 에고는 존재할 수 있는 에너지가 사라져버린다. 조형사의 삶의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드가 에고를 죽여버리면 이드는 더이상 사회에서 활동할 수가 없어진다. 둘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인 것.


그래서 원버전인 독전의 결말이 난 좋았다. 서로 다른 곳을 쐈으리라 혼자내린 결론을, 열린 결말이 수용해줬으니까.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성욕을 자제하기 힘들어서 종일 자위행위를 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하루는 부모님께 들켜서 혼이 난다. 그 두려움으로 일주일에 한번정도로 자제하기 시작해본다. 하지만 자제도 잘 안되고 매일 성욕에 지배당한다. 하루는 종교모임에 갔다가 종교의 힘으로 자제를 해보려고 할 지도. 사람들 앞에서 성욕을 고백하고 마스터베이션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한다. 매일같이 종교모임에 갈 것이다. 그러다보니 본인에게 성욕이 있었나 싶다. 성스러운 생활을 매일 하다보니 좋은 것도 같다. 하지만 이젠 다른 생각이 든다. 자꾸 죽고싶고 이 생활이 우울해서 견딜수가 없어진다. 그래서 종교모임도 그만 나간다. 집에 틀어박혀서 어느날 생각하는 거다,


자신의 성욕과 마주하자고.


있는 그대로의 이드와 마주해본다. 종교가 사라지자 더 깊숙히 숨어버린 욕망과 마주해서 물어본다. 너와 함께한 그 순간의 나는 행복했나?


'행복했니?'


행복했을까? 아니요. 그러자 욕망은 더이상 존재할 가치가 없어진다. 에고의 삶을 행복하게 하지않는, 피해만 주는 욕망은 더이상 삶이 이고지고 갈 필요가 없다.


그럼 욕망은 승화되어 사라진다. 필요없어진 이드는 죽일 필요 없이 그저 휘발되어 사라지는 것.


그렇다면 대체결말이 비로소 이해가 됐다. 조형사가 이선생을 만나고 이선생을 죽이는 것을 보여준 대체결말이 에고가 이드를 직시하고 삶의 목적을 생각하고 마침내 목적성을 잃은 이드의 부분이 승화하여 사라진다는 의미라면. 에고는 이제 에고의 삶의 목적과 함께하는 다른 이드와 함께 살아가겠지.




2022.8.16

블로그에서 옮겨오면서 조금의 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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