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이크라이더스> 리뷰
* 영화 <바이크라이더스>(원제 The Bikeriders)의 결말을 포함함 글입니다.
1960년대 대니라이언은 바이크갱단의 이야기를 담고 싶어 아웃로스라는 바이크갱단에 들어가 함께 바이크를 타고 인터뷰를 하며 그들의 생활을 글과 사진으로 기록한다. 대니라이언이 몇년에 걸쳐 담아낸 그들의 이야기는 사진집이 되고 소설이 되었다가 2024년 제프니콜스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져 나오게 된다. <바이크라이더스>(원제 The Bikeriders)다.
대니라이언은 그의 책을 바이커들의 삶을 기록하고 glorify(찬미하다) 하는 시도*라고 설명했지만 영화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온 것 같다. 1960년대 바이커들의 삶을 전혀 모르는 2020년대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보여주고는 있지만 그들의 삶이 전혀 아름답거나 멋지거나 혹은, 따라가고 싶은 모습은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가 조명하는 바이크 갱단은 실존하는 갱단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Vandals로 변경했다고 한다. 조니는 이들의 두목 격인데, 트럭을 몰던 한 가정의 아버지였던 그가 단지 바이크를 타기 위해 바이크 갱단을 바닥에서부터 만든다. 베니는 후계자 급으로 조니가 불러들인 젊은이로, 역시 바이크를 타기 위해 조직에 들어온다. 이들의 조직은 바이크를 타고 교외로 나가 가족들과 함께 아유회를 즐기는 평화로운 형태를 가지고 있었지만 조직이 커지면서 차츰 그들만의 룰이 생기고 그 룰을 지키기 위한 처벌이 생기며 '갱단'의 형태가 되어간다. 다만 그들은 지역사회에서 범죄자집단이 되기는 거부했는데, 조직이 커지고 중앙에서 컨드롤되지 않는 신입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이들이 주변에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막지 못하고 말단에서부터 범죄자집단이 되어간다. 조니는 새로이 유입된 양아치들을 처벌하고자 하다 이들의 도전을 받아들이고, 결국 이들에게 총을 맞아 죽음을 맞이한다.
베니는 아웃사이더 집단이었던 반달스에서도 아웃사이더로 존재하길 원하지만 집단이 갱단이 되어가면서 린치를 당하고, 린치에 대한 조니의 복수, 탈퇴자에 대한 조니의 처리 등을 목격하며 차츰 반달스에서도 멀어진다.
이 영화가 흥미로운 것은 이 모든 이야기의 나레이션이 베니의 여자친구인 캐시라는 '여성'의 입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이 영화가 그저 바이커그룹이 바이커갱단이 되어가는 과도기를 묘사했다면, 어쩌면 이 영화는 영화 대부의 바이커 버젼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구세대의 상징과도 같았던 조니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고, 다음 세대를 바로잡기 위해 베니가 나서 범죄자집단의 처분을 직접 맡으며 실제로는 갱단의 두목이 되어버리는, 그런 서사로 말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캐시는 조니의 '두려움'을 이야기하고, 그들 스스로 '선'을 넘어버렸음을 끊임없이 증언한다. 캐시가 묘사하는 조니는 전혀 멋지지 않다. 캐시가 묘사하는 갱단의 모습은 범죄자집단이 되기를 거부하기는 커녕, 베니의 복수를 위해 상관이 없는 술집을 불태우고 '보여주기'위해 같은 조직이었던 사람의 다리를 총을 쏘는 등 과시적이고 허세를 부리는 모습이다. 캐시가 증언하는 조니의 죽음은 '구세대의 종말' 같은 멋진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들의 허세와 과시가 불러들인 '자업자득'에 가깝다.
그렇기에 베니는 취미로 바이크를 타는 아웃사이더 집단이었던 예전을 회복하기 위해 반달스에 돌아가지 않는다. 그들 집단은 범죄자인 신입들이 유입되기 전부터 갱단으로 변모하고 있었음을 내부에 있던 그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그것을 깨닫고 나오는 것 또한 캐시가 그에게 '반달스에 있으면 죽을 것'이라고 끊임없이 경고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조니가 만들고 베니가 이어받을 뻔 했던 남자들의 바이커그룹을 묘사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그들 스스로가 믿었던 '남성적임', '멋짐'을 가지지 못하고 날것 그대로의 '졸렬함', '두려움'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캐시가 그렇게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 집단이 실제로 그러했기 때문이다. 대니와 캐시의 인터뷰는 캐시의 집앞, 세탁방, 본인의 집 부엌 등에서 이루어지는데, 이는 '여성'의 생활공간이기도 하지만 '생산'이 이루어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베니가 오토바이를 타는 동안 캐시는 돈을 벌어 집세를 내고, 집안일을 해 실제 삶의 영역을 채워나간다. 반면 남성성으로 대표되는 집단은 술을 마시고, 바이크를 타며, 다른 사람을 때리고 술집을 불태운다. 캐시의 영역은 밝고 조니의 영역은 어둡다. 조니의 영역이 돌이킬 수 없는 범죄집단이 되었을 때, 조니는 스스로가 지른 불로 인해 잠시 얼굴이 밝아질 뿐이다. 그것은 스스로 밝아질 수 있는 에너지가 아니다. 조니의 영역은 새로운 집단에 휘말려 사라져버린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소멸한 것에 가깝다고 영화는 영상, 스토리, 구도를 통해 끊임없이 말하고 있다. 베니가 드디어 캐시의 영역에 들어왔을 때, 그는 비로소 밝은 곳에서 스스로 돈을 벌며 웃고 있다.
이 영화는 가장 남성적인 것이 얼마나 아름다웠는가를 입증하는 영화가 아니며, 반대로 가장 남성적인 것이 얼마나 비참하게 소멸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증명하는 영화다. 가장 남성적인- 우리가 흔히 가부장주의로 부르는- 속성은 여성을 바깥으로 내보내고 여성을 물화함으로써 스스로의 강함을 증명하고자 하지만, 결국 내부에서부터 무너진다. 그것은 외부에 버려진 여성이 그들을 저주했기 때문이 아니며, 나아가 그들을 이용했기 때문이 아니다. 스스로의 과시욕은 끊임없이 깔아뭉갤 것을 필요로하고, 그것은 폭력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폭력은 -우리가 역사를 통해 끊임없이 목격해왔듯- 피해자가 아닌 스스로를 붕괴시킨다.
2025.06.26
가부장주의의 영광은 가부장주의의 붕괴를 내포한다.
- 주제의식은 좋은데 거의 본 사람이 없다. 주제의식 그대로도, 바이커의 역사 영화로도, 어느 쪽으로도 대단히 흥행할 영화는 아니어선지 관객이 천 몇백명에 불과하다. 아쉬운 일이다.
- 마이크 파이스트가 대니라이언 역을 맡아 이 영화를 알게되고 보러갔다. 영화에서 맡은 배역이 무척 작은데 이 영화를 선택하고 연기했다는 게, 그 선택이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