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리안같은 연애놀음

영화 <헤어질 결심> 리뷰

by 사유의 서랍

* 이 리뷰는 스포를 담고 있지 않습니다.





나는 배우 박해일의 오랜 팬이다. 늘 팬이었던 것은 아니고 팬이라고 해도 팬카페 활동도 하지 않는 날라리 팬이지만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처음 본 이후로 박해일 배우는 언제나 나의 '첫' 최애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계시다. 박해일 배우가 좋은 것은 말갛게 소년같은 얼굴에 미묘하게 날것의 본능이 어울린다는 점인데-그래서 난 그의 시그니처 캐릭터가 말간 변태; 라고 여겨왔다-, 박찬욱 감독과의 작품이라니 얼마나 또 변태적일 것인가, 두근거리며 개봉 당일 <헤어질 결심>을 보러간 것이다.


아침에 용산CGV에서 보고 은은한 광기가 도는/멜로 얼굴을 장착한 장형사를 보고 내 님이 돌아왔다!! 를 외치며 오후에 바로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두번째 관람을 했다. 박해일은 나이가 들어 아이홀이 생긴 얼굴로도 여전히 순수하게 감정을 드러내고 상처를 투명하게 내비치고 있었다. 박찬욱 감독이 그의 연기를 오래 봐왔는지, 캐릭터의 면면이 변태적이고도 소년미 있는 그의 이상한 매력이 잘 스며있더라.


박찬욱 감독의 작품은 <복수는 나의 것>부터 <아가씨>까지 유명한 것은 거의 다 봐왔는데도 사실 나는 그의 영화가 무얼 말하고자 하는지 잘 알 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어떤 사건을 추동하는 에너지로서의 본능 혹은 사랑과 같은 것들을 캐내어 가는 과정이 흥미로우면서도, 그걸 이런 화면에 이런 구도로, 이런 잔인함을 용인하면서 묘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 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오면 감독님이 관객들이랑 힘겨루기하는 느낌으로 늘 지쳤더랬다. 내가 졌다, 늘.


이번에도 내가 지긴 했는데; 박찬욱 감독과 박해일이 만나서 흥미로운 점은 박찬욱 감독의 (나혼자 생각하기에) 괴이쩍을 정도로 넓은 진폭이 박해일의 의뭉스러운 갭과 만나서 서로를 소화하더라는 점이다. 냄새를 맡아도 박해일의 캐릭터 중 어디서 본 것 같고 박해일이 맡은 캐릭터라면 벽에 살인사건 현장사진이 붙어있어도, 그 사진들을 배경으로 연애장면이 이루어져도, 어울리다못해 자연스럽게(?) 연애 장면에 집중하게 되더라고. 그래서 하나하나 뜯어보면 굉장히 이상한 사랑이야기인데도 보고 나오면 사랑이야기만 남는다. 그래서인지 박찬욱 감독의 영화 중 가장 편안하게 지고 나온 영화가 되었다.


두리안 후기 중에 인터넷에서 본 재밌는 후기가 있었는데, 누가 맛은 단 고구마 맛이라니까, 수십명이 둘러싸서 방귀를 뀌는 와중에 조그만 고구마 하나를 입에 넣는 느낌이라고 답한 것. <헤어질 결심>도 그런 느낌이다. 감독이 뿌린 지독한 해무를 걷어내고 나면 아주 작고 괴이하게 예쁜 사랑이 반짝이고 있다.



*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클로졉 하며 방점이 너무 많이 찍힌 느낌이라 정신이 없었는데, 두번째 보고나니 감독이 이 영화의 방점들을 관객들이 알아서 어떤 건 살리고 어떤 건 죽여서 능동적으로 보라고 그러나 싶었다. a를 살리고 b를 죽이고 c를 죽이고 d를 살리면 멜로영화 모양의 파도가 되고 a를 죽이고 b를 살리고 c를 죽이고 d를 죽이고 e를 살리면 수사물 모양의 파도가 되는 식.



2022.8.16

2회차 후 간단한 리뷰, 옮겨오면서 약간의 퇴고.



* 영화 <헤어질 결심> 리뷰가 이 글을 포함하여 네 편 정도 올라올 예정입니다. 1, 2, 3으로 같은 주제의 시리즈 리뷰가 아니고, 같은 영화의 리뷰지만 주제는 다른 리뷰가 앞으로 세 편 정도 더 있어요. 볼 때마다 감상이 달라져서 그렇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keyword
이전 06화떠날 때를 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