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다름은 어떻게 사랑을 만들어 가는가?

영화 <헤어질 결심> 리뷰

by 사유의 서랍

* 본 리뷰는 영화의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사람마다 해석하는 시선이 많이 다르다. 누군가는 불륜을 버무린 사건 수사로 톤을 잡고 누군가는 사랑을 추적해가는 수사로 보았으며, 누군가는 불륜이라 불편하다 말했고, 또 누군가는 영화 속에 감춰진 복선을 들추느라 바빴다. 나는 그 중에 연애놀음이라는 패를 쥐고 영화를 다섯번 보았다. 그리고 여전히 '사랑얘기는 사랑얘긴데, 뭘 얘기하려고 이렇게 말이 많을까?' 했다.


영화는 초반부터 '마침내'라는 말이 반복된다. '마침내'의 뜻을 한 번 생각해보면

1) 예정된 무언가, 혹은 기다리는 무언가가 있다.

2) 그것은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에 찾아온다.

3) 그리고 나는 그것을 받아들인다.

1)과 3)이 만나 운명론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지는데, 나는 영화가 주목하는 것은 운명론보다 2)라고 보았다.


'시간차'


영화 전반에서 시간차는 다양한 방식으로 강조되고 있다. 해준은 죽은 이의 눈이 마지막으로 보았을 범인을 찾으려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죽은 이의 뒤를, 범인의 뒤를 시간차를 두고 쫓아간다. 수사는 그런 것, 어떤 것이 남긴 발자국을 나중에 따라간다. 해준은 마치 수사와 같이 서래의 향기를 따라가고 서래의 중국어의 의미를 쫓는다. 잠자기 위해서 서래의 호흡도 한박자 늦게 반복하지 않나? 비단 수사와 서래 뿐 아니다. 서래의 첫번째 남편이 마시던 위스키도 비슷한 병에 따라 마시고, 그의 시계처럼 아날로그 시계로 바꾼다. 임오신의 행동도 시간을 두고 따라하고 있다.


서래도 2부에서 1부의 해준이 했던 행동을 따라한다. 애플워치에 감정을 고백하고, 해준이 잠복근무를 하듯 멀찍이 서서 해준의 행동을 관찰한다.


감정의 움직임을 보면 보다 분명히 나타난다. 해준은 처음부터 서래가 마음에 들었고, 그렇게 시작된 호감은 절에서 거의 최고조를 찍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감정은 더 높은(구소산 기름봉, 138층 높이) 위치에너지를 만나며 폭삭 꺾이고 무너진다. 반면에 서래는 처음엔 해준을 좋아한 건 아닌 것 같다. 아마 어느 선까진 이용하려고 한 것 같다. 그래서 애플워치의 녹음을 지우고 해준에게 첫번째 남편이 자살한 것 같다는 증거를 흘린다. 하지만 해준의 사랑이 무너진 순간부터 서래는 자신이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1부의 감정의 높이를 숫자로 나타내면 이런 느낌일 것 같다.


해준: 33333444455666600000

서래: 00000000111189999999


어쩌면 파도의 모양같은 감정의 변화다. 해준의 파도는 자잘자잘한 파도가 끊임없이 들이치는 모양이다. 처음부터 파고가 작지만 일정한 높이를 가지고 있다. 이 파도는 아주 커지기 전에 가파르고 높은 절벽을 만나 부서진다. 처음에 서래의 파도는 그저 평온한 수면과 같았다. 바다는 커녕 호수같은. 그런데 해준을 만나고 해준이 무너지는 순간 갑자기 거대한 파도로 올라온다.


둘은 같은 시간대에 만나 함께 사랑을 한 것 같은데 둘의 감정의 파고는 각각 시간차를 두고 찾아와 서로를 할퀴고 지나간다.


2부가 되면 이제 파도의 양상은 전혀 달라진다. 서래는 아주 큰 파도를 가지고 들이치지만 해준이는 무너진 채로 멈춰있는 것 같다. 하지만 파도가 파고가 낮다고 하더라도 파도 자체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수면 아래에서 힘을 모은 후 파고는 언젠가 다시 올라가게 된다. 서래가 크게 들이치자 해준의 파도는 다시 수면위로 끌려 올라온다.


두 파도는 각자의 모양대로 시간차를 두고 움직이다가 서래가 (지하에서 죽음으로써) 아주 높은 파고에서 멈추고, 해준이 그로인해 높은 파도가 되어 둘의 감정은 만난다. ...마침내! 둘의 감정의 패턴은 달랐지만 끝내 같은 파고로 만나게 된 것이 해피엔딩인 걸까? 아니면 파도가 멈추고(서래가 죽고) 뒤늦게 알게 됐으니 새드엔딩인 걸까?


영화는 아주 극단적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실제로 우리네 일상의 연애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면 각자 타이밍도 크기도 다른 감정을 가지고 연애를 하고 있을 것이다. 같은 연애를 하고 같은 관계를 꾸리고 있지만 둘의 감정의 패턴은 시간도 모양도 다르다. 나는 3의 배수라는 수열로 움직이고 상대는 4의 배수라는 수열로 움직일 때, 내가 9까지 마음을 키웠는데 상대는 아직 4이거나 8일 때, 나는 실망하고 무너질 지도 모른다. 상대를 열심히 파악해서 4의 배수라는 규칙을 파악하고 열심히 12를 찾아갔지만 상대는 내가 3의 배수라는 것도 모르고 8 어귀에서 헤매고 있다면 가벼운 연애는 깨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른 시간, 다른 모양의 파도들이 끊임없이 부딪히고 깨지고 각자 움직이다 어느 순간 같은 시간, 같은 곳에서 24의 마음으로 만난다면, 우리네 마음은 12의 실망까지 보태어 극렬한 행복을 느끼지 않을까? 그게 얼마나 만나기 어려운 순간인지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 모든 감정을 나타내는 말이 '마침내'라는 말이다. 우리는 그 공감의 순간을 애타게 기다려왔고, 그 마음은 각자 모양도 시간도, 심지어 의지조차도 다르게 움직이다가, 드디어 찾아왔을 때, 우리는 그 마음을 하염없는 기쁨과 행복으로 수용할 것이다. 그 기쁨을 만들어내는 감정들의 재료는 시간차의 안타까움이 쌓인 것일테다.



영화는 의외로 초반에 아주 큰 힌트를 준다. 해준이 서래에게 하는 말,


패턴을 알고 싶은데요


에서. 해준은 서래에게 이성으로 관심이 있다, 그래서 당신의 감정의 패턴을 알고 싶다, 고 작업을 건다. 알고 나선 무너지는 째깐한 파도였지만. 서로 다른 패턴의 파도들이 우연히 곁을 스쳐가다가 얽히고 섥힌다. 서로의 패턴에 변주를 준다. 때로는 크나큰 괴로움으로 본래의 패턴을 잃기도 한다. 하지만 이윽고 어우러져서 더 큰 파도가 되어 만난다. 그 큰 파도가 개개인에게 돌려주는 기쁨을 알기에 사람들은 오늘도 별거아닌 파도를 가지고 바다로 뛰어든다. 서로의 다름이 끊임없이 오고가다가 언젠가는 기다리던 사랑이 찾아올 수도 있으니까.



2022.8.16

다섯번째 관람 후 리뷰, 옮기면서 크나큰 퇴고



- 시국이 시국인지라 길거리로 뛰쳐나가느라고 이사하는 속도가 느려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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