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헤어질 결심> 리뷰
* 본 리뷰는 영화의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전반적으로 상대의 감정을 모호하게 다루고 있다. 1부에서는 서래의 감정이 모호하고 그래서 안개같은 서래의 감정을 장해준 형사가 추적하고 수사한다. 수사를 해나가는 장해준이 안개 너머의 진실을 가까이서 보고자 하는 욕구(서래집 안으로 들어가는 상상)에서 '거리'로 묘사되기도 하고, 단서를 추적하면서 생기는 '시간차'로 묘사되기도 한다. 송서래가 어머니를 죽이고 한국으로 온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일시적으로나마 송서래를 범인으로 확신-어떻게 생각하시냐는 문자를 보내면서 '?'를 '.'로 바꾼다-하면서 송서래를 이성으로 생각하는 마음도 흔들린다. 하지만 이 부분이 해명되면서 송서래가 범인이 아니라고 사건을 '종결'함과 동시에 송서래를 연애대상으로 받아들인다. 이 때 장해준이 '이제 더이상 우리가'라는 말을 하는데, 뒤에 무슨 말이 왔을지는 불분명하지만 중요한 것은 '당신과 나'라는 말 대신 '우리'라는 말을 쓴 것이다. 2부에서 안정안 앞에서도 우리라는 말을 쓰는데, 안정안도 '우리?'라고 반문하지만 이때는 명확하게 너와 내가 아니라 '경찰'이라고 선을 긋는 것과 대비되는 것.
사건의 종결은 해준 입장에서 '서래 감정의 모호함'이 종결된 것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둘은 '우리'가 될 수 있다. 처음으로 데이트도 한다. 한 명이 다른 한 명을 몰래 보고, 흔적을 통해 서로를 향유하는 것이 아니라 한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맞이한다. 그것이 비록 뒷문으로 들어가 아무도 보지 않는 공간에서 몰래한 데이트였다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사건은 종결되지 않고 반전을 맞이한다. 안개 속에 감춰져 있던 서래의 감정은 가장 잔인한 형태의 진실로 해준에게 돌아온다. 송서래가 범인이라는 진실은 둘의 연애감정 또한 진실이 아니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상대'도' 나를 좋아한다고 여기고 이제 연애를 시작하겠다고 나의 마음을 오픈한 상태에서 상대가 나를 좋아하지 않았음을 알게된다면, 적어도 그 자신에게는 -해준의 상상처럼- 서래가 해준을 절벽에서 밀어버리는 행위 정도의 충격을 받을 것이다.
그래서 절에서의 데이트는 일견, 둘이 한 공간에서 '우리'의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둘이 엇갈리고 있음을 드러낸다. 장해준이 '(송서래가) 마침내 우는구나', 라고 녹음한 걸 들으며 송서래는 그제서야 울고, 장해준의 입장에서 송서래는 더이상 범인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장해준은 휴일이라고 살인이 안일어나는 것은 아니라며 '형사일 때 입는 옷'을 입고 데이트하러 온다. 감춰져 있지만 송서래는 결국 범인이고 장해준은 형사로 있는 것. 송서래는 좋아하는 척을 하지만 좋아하지 않고, 장해준은 여전히 그녀의 모호함을 추적하고 있다.
그렇게 장해준은 '무너진다.' 드러난 진실 앞에 이전의 임시적인 '우리'라는 종결은, 가장 모호한 형태로 안개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
2부에서는 장해준의 감정이 모호하다. 서래는 여전히 모호하지만 1부보다는 분명한 형태로 이번엔 형사처럼 장해준의 흔적을 뒤쫓는다. 1부와 2부는 서래가 범인이 아닌 것으로 사건이 종결되는 같은 구조를 가지지만 장해준의 심리가 달라지면서 전혀 다른 내용을 품게 된다. 1부에서 장해준은 서래가 범인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그것은 서래가 해준을 좋아한다는 생각의 방증처럼 여겨졌기에 서래가 범인인 것이 밝혀지고 해준은 무너졌다. 2부에서는 장해준은 서래가 범인이라고 생각했고, 여전히 해준은 그것이 자신을 좋아하는 마음의 반증이라고 여겼기에 서래가 무슨 말을 해도 믿지 않는다. 이 다름은 둘의 관계를 다르게 전개시킨다.
호미산을 오르는 장면에서 둘은 명확히 다른 이야기(송서래는 호미산이야기, 장해준은 사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둘의 말은 선문답처럼 묘하게 서로에게 답이 된다. 이건 1부에서 같은 맥락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어긋났던 절 데이트 씬과 대비된다. 호미산에서는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같은 맥락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장해준이 묻는 이야기에 송서래는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돌려서 대답하고 있다. 송서래는 당신이 결혼한 사람이어도, 나를 좋아하지 않아도, 좋아한다고 말하고, 장해준은 범인으로 추적하고 있지만 당신을 여전히 믿고 있었다고 돌려 말한다. 그리고 해준이 송서래가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를 받아들이겠다는 자세로 절벽 앞에서 눈을 감는데, 송서래는 자신이 구속되더라도 재수사하라며 장해준이 줬던 증거를 돌려준다. 둘은 서로를 위해 희생하겠다는 '단일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둘은 가장 어긋나 보이는 형사와 용의자 자리에서 같은 마음으로 만난다. 형사사건의 진실이 있는 자리는 둘의 마음이 하나되는 자리다. 송서래가 '장해준이 자신의 직무를 유기했다는 증거'가 들통날 위기에 처하자 남편을 살해되도록 유도한 것이므로. 둘은 오랜 시간 엇갈리고 감정적으로도 엇갈리지만 '마침내' 같은 감정임을 서로 확인하고 만난다. 한 사람은 모래 위에서, 한 사람은 모래 아래에서.
-
1부와 2부, 각각 모호함을 추적하는 썸남(?)과 썸녀(?)가 나와 안개를 걷어내고 진실과 마주하는데 성공하며 끝나는데, 1부에서는 처절하게 망하고 2부에서는 성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1부의 추적자는 장해준이고 2부의 추적자는 송서래니까 장해준이 송서래에 비해서 무언가 잘못한 것은 분명하다. 장해준은 살인도 안하고 성실하고 깔끔하게 살아왔는데 사랑을 위해서 살인정도는 감수해야 한다는 말일까? 1부에서 불륜을 저지르는 것은 장해준 쪽인데, 불륜을 저지르니 썸이 망한다는 도덕적인 교훈을 주는 것일까?
모호한 것은 욕망이다. 1부에서는 송서래의 욕망이 어디를 향해있는지, 무엇을 욕구하는지 알 수 없다. 장해준은 그 욕망이 자신을 향해있지 않음을 알고 절망한다. 2부에서도 장해준은 송서래를 여전히 믿지 못한다. 절망의 여파다. 2부에서도 장해준이 여전히 송서래를 바라는지, 그 마음은 감춰져 있다. 송서래가 달랐던 것은 장해준의 감춰진 마음에 자신의 마음을 기대지 않은 것이다. 장해준이 더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송서래는 장해준을 쫓아 이포에 가고, 마주하고, 살해현장(;;;)에서 마주할 상대를 기다린다.
장해준에게 모호한 것은 송서래의 욕망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이다. 그것이 1부와 2부의 결말을 가른다. 자신이 송서래에 가지는 욕망이 단순히 성욕인지, 호기심인지, 어떤 장기적인 인간관계의 그것인지 장해준은 알지 못한다. 자신의 욕망을 알지 못하고 그 안개를 주변에 흩뿌린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파악하는 대신 송서래의 마음을 파악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니 상대의 마음이 비어있을 때, 그는 쉽사리 '붕괴'하는 것이다.
장해준은 소크라테스에게 가서 배워야겠다.
너 자신을 알라
타인의 욕망을 아무리 따라하고 좇아도 자신의 욕망은 알 수 없다. 모호한 내 마음을 타인의 마음에 기대어 타인의 마음을 따른다고, 그 마음이 만들어지고 분명해지고 진실로 드러나지 않는다. 집중해야 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이다. 자신의 욕망의 자리를 수사하면 안개는 걷히고 자신의 마음이 향하는 곳이 보일테죠.
2022.12.28
헤어질 결심 마지막 리뷰, 퇴고를 많이 해서 가져왔습니다
* 다음 리뷰부터는 챌린저스 리뷰가 연재;됩니다. 여러군데에 너무 많이 써놔서 어떻게 옮겨올지 답답하네요 ㅎㅎ 챌린저스 리뷰와 관련된 일기같은 글이 서른 개는 넘는 것 같아요. 챌린저스 리뷰만 쓰는 챌로그가 되어 챌린저스에 관심없으신 분들이 떠나시면 안되므로;;; 중간중간 다른 리뷰와 일기도 쓸 예정입니다. 늘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사랑은 가장 일상적인 얼굴의 정의"라는 제목으로도 <헤어질 결심> 리뷰를 써놓은 것이 있긴 한데, 제목과 관련된 내용은 아주 조금이라서 이 글에 덧붙입니다.
<사랑은 가장 일상적인 얼굴의 정의>
...마지막에 사자바위 해변에 도착했을 때, 카메라가 밑에서 위로 올라오며 서래는 바다속으로 들어간 채 죽음을 상징하는 서쪽으로 간다. 반면 해준은 생명을 상징하는 동쪽으로 간다. 자신의 음성이 녹음된 파일을 들으며 -마침내- 사랑한다고 했다는 서래의 말을 이해하는 순간, 카메라가 위로 올라가며 해준은 바다에 잠긴 모습이 된다.
바다는 사랑을 의미한다. 이 영화는 밑에서 봐도 위에서 봐도 뒤돌아봐도 어떻게 봐도, 사랑얘기다. 삶의 본질적인 목적을 논하는 자리에 사랑이 결론이다. 잔잔한 파도처럼 밀려오는 감정이든 갑자기 덮쳐오는 감정이든 패턴이 다른 감정이 만나 또 이루는 게 사랑이다. 모로가도 이 영화는 사랑얘기다. 그게 마음에 든다. 모호하고 자의적인 선을 구분하느라 진 빼는 대신,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구나 하고 있는 것 같은 사랑이 인간을 구원하는 이야기, 얼마나 철학적이면서 얼마나 대중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