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헤어질 결심> 리뷰
* 본 리뷰는 영화의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헤어질 결심에서 장해준이 처음 속한 공간은 안정적이고 규칙적이며 모든 것이 명백하게 자리잡은 삶의 공간이다. 그 공간을 대표하는 아내는 이름부터 '안정안'으로, 직장에서도 원전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 안정안과 장해준이 주말에 함께 사는 집은 깨끗한 배경에 모든 것이 질서있게 놓여있다. 부부관계도 규칙적으로 이루어지고, 여느 가정들처럼 아이가 하나 있는데 잘 크고 있는 것 같다. 그 속에서 장해준은 주말이면 꼬박꼬박 집에 와서 아내에게 따듯한 요리를 해먹이고 대화를 나눈다.
안정안이 원전의 '안전'을 지키는 이유는 그것이 위험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안전의 이면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위험이 공존한다. 안정안이 지키는 원전의 양면성처럼, 안정안과 함께 하는 장해준에게도 삶과 죽음이 함께한다. 장해준은 겉에서 보기에 깔끔하고 원리원칙을 중시하지만 그 속에는 언제나 위험과 죽음이 내포되어 있다. 장해준이 안정안과 다른 것은, 안정안은 명확하게 안전을 지키는 쪽이지만, 장해준이 가까이 가고자 하는 것이 범죄의 해결인지, 범죄 그 자체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안정안이 지키는 원전과 같은 존재인 장해준. 장해준은 범인을 잘 잡아 이른 나이에 승진을 할 정도지만, 살인과 폭력이 가까이 있지 않으면 잠을 이루지 못하는 면이 있다. 담배는 끊은 상태지만 계속해서 피고 싶은 마음이 있다. 이런 장해준의 내면처럼, 이포 집의 흰 벽 구석에는 곰팡이가 피어있는데 안정안이 그 집을 떠나자 곰팡이가 천장까지 타고 올라가 있다.
서래는 해가 지는 서쪽에서 왔다. 오는 동안 오물을 뒤집어쓰고 씻지 못해 냄새가 났는데(더러움의 성질) 그 상태에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준 남자와 결혼했다. 남편이 자신의 과거를 빌미로 폭력을 일삼다 중국으로 돌려보낸다고 하자 그가 좋아하는 산에서 그를 살해한다. 새롭게 결혼한 사람으로 인해 또다시 (사철성으로부터터) 폭행당하고, 또 사람을 죽인다. 서래의 세계는 더럽고 죽음에 가깝다. 서래의 세계에도 모순이 존재하는데, 서래는 본인이 원하는 방식으로 사람을 죽여'준다'(?)는 것이다. 그것은 서래에게 죽음을 다루면서도 자신이 선을 행한다는 감각을 쥐어준다.
안전하고 깨끗한 세계에서 살던 장해준이 서래를 놓아주고 무너진 후 수염도 잘 깎지 않고 잠도 못 드는 모습이 된 것은, 장해준이 안정안으로 대표되는 세계에서 살다가 서래로 대표되는 세계를 경험하는 것으로 보인다. 항상 깨끗하고 안전하고 규칙적인 삶에서 끊임없이 위험에 이끌리던 장해준은 위험 그 자체인 서래를 만나 이끌린다. 하지만 그 경험은 그리 좋지만은 않았나보다. 원래 안정안의 세계에서 장해준은 깔끔하고 안전하고 다만 잠을 못자고 타오르는 욕망을 어쩌지 못했다면, 서래의 세계에 갔을 때 장해준은 잠까지 잘 자게 되었더랬다. 하지만 서래의 세계에서 무너지고나서 깔끔하지도 않고 잠도 못자게 되었다.
위험한 삶의 영역에 있다가 그또한 자신의 것이 아님을 알고 빠져나온다면, 본래의 안정안의 세계가 장해준이 속한 세계인 것이 아닐까? 나는 안정안으로 대표되는 세계가 '선'의 세계, 안전하고 욕망이 거세되어 깔끔하고 규칙적인 세계로 보인다. 흔히 말하는 'cosmos'의 세계다. 서래의 세계는 반대니까, '악'으로 보이는 세계, 위험하고 욕망이 있는 그대로 분출되며 더럽고 불규칙적인 세계다. 즉, 'chaos'의 세계다. 장해준은 본래 선의 세계에 속했다가 자신의 욕망(담배로 상징되는)을 어쩌지 못해 악의 세계로 간다. 하지만 악의 세계는 장해준의 욕망을 흡수하는 대신 장해준을 수단으로만 다뤘다. 악마에게 설렌 장해준은 상처를 받고 선의 세계로 돌아간다.
선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인 것 같다. 하지만 인간은 악의 씨앗을 가지고 태어난다. 씨앗은 끊임없이 위험과 죽음, 불규칙한 욕망과 혼란에 줄기를 뻗으려 한다. 악은 다가가선 안되는 것일까? 장해준이 무너진 것은 악 본연이 내포한 결말일까?
얼핏 악으로 보이는 것들, 위험해 보이고 파국만이 그 끝에 있어보이는 욕망들 속에도 그 존재의 이유는 있는 것 같다. 마치 서래가 원초적인 매력을 뿜듯, 우리가 악이라 구분짓고 피하는 것들에는 스스로 태동하는 에너지가 있기 때문이다. chaos는 알 수 없고 위험하기 때문에 죽음과도 닿아있지만 무엇이든 만들어질 수 있는 에너지가 가득하다는 면에서 생명과도 닿아있다. 블랙홀은 정보값을 삭제함으로써 우주전체의 엔트로피를 감소시킨다는 학설도 있다. 우리가 쉽게 알 수 없는 것에는 공포의 감정이 생기고 섣불리 '악'으로 외부화해버리지만, 그것은 우주 전체에서 '선'일 수 있다.
인간은 선을 향하고 악에 끌릴 수도 있다. 원천적인 에너지가 가득한 chaos에 끌릴 수도 있고 cosmos에서 쉴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무엇을 위해, 왜, 그러는가, 이다. 장해준이 서래에게 간 것은 '장해준의 욕망'때문이다. 서래가 극중에 '악'으로 드러날 수 있는 것은 장해준이 자신의 결혼생활은 별개로 두고 그를 불법의 영역에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장해준은 자신의 내부의 '악'을 서래에게 외부화한다. 서래는 chaos이되 스스로 선을 행하는 자였는데, 장해준은 그를 악의 자리에 불러들인다. '피의자'의 자리에, 말이다.
cosmos와 chaos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인간, 그 내부에 선과 악의 열매가 있다. 선악이 모호한 사회에서 살아가야 하는 인간은 순간의 선택으로 선해질 수도, 악해질 수도 있다. 자신의 욕망에 따라 살 수도 있고 모호한 선을 도덕을 지표삼아 흔들리며 나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자다가 중앙선을 넘는다 할지라도, 내가 가는 길이 어디로 향한 길인지 불분명할 때라도, 나는 '나 자신이 무엇을 가지고' 이런 선택을 했는지는 알고 있다. 나의 내부에 타인을 위한 마음이 있는지, 타인을 향한 욕망이 있는지는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서래를 만나 서래를 피의자 자리에 놓았는데, 알고보니 그 피의자 자리에 자기 자신이 있었다는 걸 깨달은 장해준은 붕괴한다. 끌린 서래가 '악'이었기 때문에 해준은 무너진 것이 아니다. 서래를 만나 서래의 혼란스러움에도 '불구하고' 그를 사랑했는데, 사실 그 모든 더러움은 장해준 본인에게 내재한 것이다. 인간은 악마때문에 자신이 나쁜짓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알고보니 그 악의는 자기자신에게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그 깨달음의 끝에 인간은 감히 선을 향하지도 악으로 돌아가지도 못할 것이다. 자신의 내부에 있는 선/악을 외부화한 업보다.
하지만 그럼에도 영화는 마지막 희망하나는 남겨놓는 것 같다. 서래를 다시 만난 장해준은 서래가 자신에 대한 사랑으로 모든 죄를 자신의 것으로 돌린 것을 알게 된다. 끊임없이 고뇌하던 인간이 악마를 만나 거래를 했는데 그 악마는 자기자신이었던 걸 알고 바닥까지 추락했다, 그런데 그걸 안 악마(로 불리던 존재)가 자기를 계속 악마의 자리에 두라며, 악마의 자리로 스스로 추락해간다, 는 이야기다. 왜? 인간을 사랑하니까!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사랑이구나.
+) 해준이 떠나는 정안에게 '우리 일주일에 한번 하기로 한 건 어떡하냐'고 묻는 건 처음에는 뜨악했는데, 곱씹을 수록 교회얘기 같았다. 그러니까, 인간이 교회에 질려서, 그 막연하고 자의적인 선의 강요가 싫어서 몰래 절(?)에 다니기로 하는 거다. 교회가 그걸 알고 배신감에 인간을 떠나기로 마음 먹는 거지. 그 때 인간이 교회에게 하는 얘기 같았다. 교회야, 일주일에 한번은 교회오라며, 그건 그럼 어떡해? 안 지켜도 돼? 그건 절대적으로 지켜야 하는 선의 규칙같은 것 아니었어? 그걸 안 지키면 내가 선이 아닌 것처럼 말하더니 그렇게 절대적인 건 아니었나봐? 하는.
2022.11.7
헤결을 아홉번쯤 보고 쓴 리뷰. 가져오면서 환골탈태 수준의 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