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이해하는데 공부가 필요해요

영화 <수프와 이데올로기> 리뷰

by 사유의 서랍

이 리뷰는 영화 <수프와 이데올로기>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리뷰를 시작하기에 앞서, 이 영화는 전쟁통에 어머니가 양측 병사들에게 양송이스프를 끓여주는 영화가 아님을 적습니다. ..는 제가 영화 제목과 포스터만으로 영화 보기 전 가졌던 선입견이고요. 수프는 백숙이에요.




영화는 양영희감독의 어머니(이 영화는 다큐영화고 그래서 실제 어머니시다)가 4.3사건을 회고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 장면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배경은 일본, 아마도 오사카, 어머니는 외조부모님이 이민 온 재일교포로 일본에서 태어나신 2세대 재일교포신데, 어째서 1948년 4월 3일 즈음에 한국, 그것도 제주도에 계셨다는 거지? 그리고 이 영화는 다큐영화인데 어머니의 머리속에 있는 이야기가 어떻게 다큐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걸까.


영화는 그에 대한 답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한동안 제주도, 1940년대 말의 이야기는 온데간데 없이 양영희 감독의 부모님의 일상만이 어지러이 펼쳐지는 것 같았다. 감독의 아버지가 술마시면 부르는 노래나 2층 방에 걸려있는 김일성, 김정일의 사진에 이어 감독의 일본인 남자친구가 결혼허락을 받으러오는 장면들을 보면 이 영화는 다큐를 방패로 일상을 나열한 영화를 만들었나, 싶어지기도 한다. 일상의 아무렇지(않지는 않다 김일성 사진 보면서 내가 이 영화를 보고 있어도 되나 흠칫했다) 않은 장면들 속에서 어머니는 예비사위를 맞이하기 위해 신선한 닭과 좋은 마늘을 구해서 씻고 마늘을 많이 넣은 닭백숙을 다섯시간동안 고아내신다. 영화제목의 그 수프를.


어머니는 외조부모님이 제주도에서 나신 남한계인데 어머니, 그리고 생전의 아버지는 조총련 활동을 하셨던 분들이다. 아버지는 김일성을 만나 사진도 같이 찍고 북한에 기부를 했을 뿐 아니라 자식들도 모두 북한에 보냈다. 양영희감독은 딸이라서 북송에 빠졌다던가. 큰오빠는 우울증이었고 좋아하던 음악을 하지못하니 일본에 돌아오려다 결국엔 자살을 선택했던 것 같다. 그 때문에 감독은 부모님을 이해하지 못했다. 영화를 찍을 당시에도 어머니는 남아있는 자식들과 손자, 손녀들을 위해 때로 돈을 부치고(돈이 없을 땐 주변에 빌리시기까지 한다) 물건들과 음식을 부치며 여유로운 시간에는 조총련에서 배운 북한의 찬가같은 것들을 부르셨다.


영화를 보는 도중에는 이 장면들이 왜 등장하는지 의아했다. 아무래도 북한관련된 것들은 한국에서 아직까지 금기시되니까. 안그래도 제주4.3사건이 제주에 숨어든 빨치산 토벌작전이었다는 말도 안되는 변명을 이승만의 그 당의 후속당 의원들이 아직도 줄기차게 주장하는 와중에, 4.3사건의 회고를 하시는 분이 조총련활동을 하시고 김일성 사진을 아직도 방에 걸고 계신다? 좋은 얘기 못들을 것 같아서 걱정도 되었더랬다.


이어서 나온 어머니의 회고가 이 영화가 왜 '수프'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지, 왜 어지러이 어머니의 일상들이 흘러나왔는지를 모두 이해하게 해주었다.


어머니는 일본에서 나고 자랐는데, 열몇인가 됐을 무렵 일본에서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고 한다. 당시 오사카에 살던 일본인들은 다 주변 지역으로 피난을 떠났는데, 이민 온 재일교포들은 그럴 수 있는 주변지역의 친척이 없었으므로 외조부모님은 자식들을 제주도로 보내기로 한 것. 그래서 어머니는 비상금 얼마간을 들고 제주도의 친척집에 와서 몇년 간을 살았다고 한다. 그 집이 중산간 어디 마을이었던 모양. 그 사이 혼기가 차서 약혼자도 생기고 한국말도 제법 잘 하게 될 무렵 지금의 4.3사건으로 불리는 십여년의 학살이 시작된다. 어머니의 약혼자는 한라산 깊숙한 곳에 더 올라가 저항운동을 하게 되고, 어머니는 산에 올라가 이 분을 마지막으로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에 경찰이 들이닥치자 밤을 틈타 일본으로의 밀항선을 타러 간다.


어머니는 남한의 정부가 자행한 삶의 잔인한 파괴를 목격한다. 자신의 약혼자를 빨갱이라 이름붙이고 죽이고자신의 친척과 마을 사람들을 부역자라 하여 학살한 그 어디에도 마땅히 그래야 할 당위나 정의는 없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그 부당함을 소리쳐 알리기보다, 부당함을 피해 다른 정부를 응원하기로 결심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조선인이라 차별받지도 않고 어느날 갑자기 빨갱이로 몰려 죽임당하지도 않는 곳에 세 아들을 모두 보낼 결심을 한 것은, 4.3 사건을 겪은 어머니에겐 북한이 정말 낙원으로 보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신선한 닭에 마늘만을 가득 넣어 다섯시간을 고아낸 어머님표 닭백숙. 제주도의 삶을 기억하는 재일교포가 닭이었다면 4.3사건은 그 안에 가득한 마늘일 것이다. 맵디매운 마늘을 가득 품고 살아온 삶에서 우러나온 국물같은 재일교포의 삶이 영화에서 조용히 흘러간다. <수프와 이데올로기>의 일상이야기는 온통 그 국물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는 영상들이다. 물론 그 속에 어머니의 북한 찬양이라는 괴이한 이물질 같은 것도 담겨 있다. 하지만 그것은 국물의 본질 그 자체는 아니다. 국물의 본질은 내 자식은 조선인이라 차별받지 않는 삶, 내 자식은 어느날 갑자기 부당하게 죽임당하지 않는 삶을 살기를 바라는 여느 부모의 마음, 그 자체였으리라. 그래서 어머니는 결혼하지 않겠다던 딸이, 사윗감으로 일본인은 절대 안된다는 아버지의 말과 반대로 일본인 사윗감을 데려왔을 때, 가타부타 말하지 않고 다섯시간 푹 고은 닭백숙을 대접한다.


닭백숙을 가운데 두고 4.3사건을 겪고 조총련계 활동을 열성적으로 해오신 재일교포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와 반목하지만 어쩔 수 없이 사랑하는 딸, 그리고 그들을 차별해온 일본인의 후손인 양영희감독의 남자친구가 마주 앉는다. 일본인인 남자친구는 마늘맛이 나는 백숙국물까지 아주 맛있게 들이키고 다음번에는 백숙 만드는 법을 배우러 오기도 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담담하게 찍는 양영희 감독까지, 그들 각 국가의 이데올로기는 어머니의 삶을 목격하고 마시고 영상으로 담아내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하나의 국물로 녹아드는 것 같다.


2018년 문재인정부에서 조총련계 재일교포에게도 비자를 발급하면서 어머니는 그렇게 무서웠던, 하지만 그리운 사람들이 있었던 제주를 방문할 수 있게 된다. 양영희감독과 이제는 남편이된 초반부의 일본인 남자친구는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제주를 방문하지만 어머니는 치매가 심해지셔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신다. 대신 양영희 감독이 제주 4.3사건의 목격담을 들으면서 어머니의 사라진 기억은 딸에게로 이어진다. 그렇게 양영희 감독은 어머니의 삶과 조총련 활동을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영화는 아주 생경한, 재일교포가 목격한 제주4.3사건과 그 후 이어진 조총련 활동들을 담고 있다. 큰오빠를 결국 자살로 내몬 부모님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곁에 남은 유일한 자식인 감독 본인의 모순적인 마음-분노와 애정-을 통해 이 모든 것을 바라보다보니 좀더 가깝게 이해가 됐다. 모든 딸은 엄마를 짝사랑한다는 말도 있지 않나. 딸들은 엄마를 어쩔 수 없이 사랑하지만 엄마의 행동을 보면 어쩔 수 없이 분노한다. 그 마음이 오래전 재일교포의 마음도 이해하게 했다.




* 이 영화를 변영주 감독이 진행하는 GV로 봤는데 변영주 감독의 돌아가신 아버지도 평안도 출신이셨는데, 예전에 알바하다가 4.3사건을 겪으신 할머니를 촬영하는 일을 한적이 있었다고. 그 때 변영주 감독의 아버지 출신을 아시고 그 할머니가 3일동안을 말을 안하셨다고 한다. 평안도 출신 서북청년단이 제주도에서 그런 일들을 저지른 유명한 집단이라서.


* 내용과 별개로 양영희 감독님의 다큐영화를 찍으시는 가치관이랄까, 생각이 멋져서 기록에 남긴다. 어머니가 평생을 가르치셨던 말씀이 '친한 사이도 예의는 지켜야 한다(親しき仲にも礼儀あり)' 였다고. 사실 다큐는 가까운 사이에 카메라라는 폭력을 들이대는 행위 아니냐고. 그래서 자기는 그걸 감안하고서라도 자신의 다큐에 찍혀준 가까운 사람들이 '나오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결과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이 있다고. 그 책임감이 멋졌고, 다큐영화에 대한 불신(다큐가 어째서 감독의 생각을 담아 편집을 거치는 '영화'가 될 수 있는가. 그건 다큐도, 영화도 아닌 것이 아닌가 했던)이 해소되는 계기가 됐다.


* 어머니와 딸의 이야기로 다가올 수 있다는 점에서 지난주에 봤던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와 비교가 됐다. 에에올도 결국 어머니와 딸의 이야기니까. 각자의 장단이 있겠지만(에에올은 소외된 삶을 블록버스터 차원으로 끌어올렸다는 장점이 있다!) 수프와 이데올로기가 좀더 일상적으로, 실제 어머니와 딸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이야기에 접근한다는 느낌이다.


* 영화는 다큐영화지만 생각보다 웃기고 전개에 고저가 있다. 웃으며 소소한 일상을 따라가다보면 결말을 맞닥뜨리고 영화전체와 내 나라와 역사, 어머니를 생각하게 만드는 좋은 영화다.


* 사담: 제주4.3사건은 국민보도연맹 사건과 함께 노무현 전대통령이 공식 사과하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를 만들어 진상규명 및 화해 보상을 시작한 대규모 민간학살사건이다. 이와 관련한 국가배상 건도 굉장히 많은 수가 청구되었다. 모 연구소에서 알바하면서 국가배상소송을 검토하다가 관련 국가배상소송과 재심청구도 보게 되었는데, 3심 이후만 검토했는데도 몇십건을 보았으니 1심에서 패소하고 포기한 것까지 합치면 어마어마한 소송이 걸렸을 것이다. 놀라웠던 것은, 소멸시효 건으로 원고 패소 했다가 헌법재판소에서 과거사 관련 사건에 소멸시효를 적용하는 것은 위헌임을 인정하는 결정이 나온 후 재심 등을 거쳐 대법원에서 인정을 받은 금액이 겨우 8천만원이라는 것. 국가에 의한 학살이 묵인을 넘어 이후에도 지속적인 차별로 이어졌는데 고작 그 기간에 대한 보상이 8천만원이라니. 국가재정을 고려해 어쩔 수 없다는 논리도 보였다. 이것도 돌아가신 당시부터 배상하지 않은 이자를 계산하는 것도 아니고 재심부터였던가, 기간 산입이 매우 나중이더라. 그 외에 위자료 개념의 보상금은 미미해서 유가족이 당시 사건에 연루되어 부모님 혹은 온가족을 잃고 평생을 고통받으면서 살아오신 대가가 고작 1억을 넘기가 힘들다는 건 참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2022.10.24

가져오면서 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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