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라랜드> 리뷰
*이 리뷰는 영화의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분유를 잔뜩 먹고 트름을 시키는 품안에서 이내 잠들던 아이가 오늘따라 분유도 남기고 엄마에게 안아달라 성화였다. 아빠에게 안겨서는 분유도 싫다, 잠들기도 싫다, 온몸으로 거부하다가 나에게 와서는 화사하게 웃으며 발을 굴렀다. 그렇게 발을 구르면 엄마는 번쩍 들어올려준다고 믿고 있다. 칭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서둘러 샤워를 마치고 온 어깨위에 지구에서 아이의 무게를 뺀 만큼의 엄마의 무게가 얹혀온다. 엄마라는 직업에 쉬는 것도 그만두는 것도 없다. 아이가 커가는 만큼 그 무게는 기쁨으로 돌아온다는 경험칙 하나로, 아이의 믿음에 번쩍 응답하는 힘을 낸다. 아이가 발을 서너번 구르고 눈가에 눈물을 매달고 웃음을 지을 때쯤, 아이를 맡기기로 한 시누이가 문을 두드렸다. 아이가 시누이는 낯가리지 않았으니까, 다시 번쩍 들어 아이를 넘겨준다. 아이는 어리둥절해서 옷을 갈아입는 엄마를 한번 보고, 자기가 안긴 사람 얼굴을 한번 보고, 다시 엄마를 보고, 제가 안긴 사람이 엄마가 아니구나, 확인하며 울음을 터트린다. 차마 나갔다오겠다고 아이에게 인사를 하지 못하고 서둘러 문밖으로 나갔다. 남편이 오늘은 꼭 라라랜드를 봐야겠다고 했다.
그리니치 천문대 장면에서 헛웃음이 나왔다. 위플래시 감독이 영화가 어렵다는 평가를 듣고 다음 영화는 그냥 놔버렸나보다 했다. 모놀로그 연극이라니 이건 여자버전 시네마천국인가요. 작위적이라고 생각했다. 팡팡 아름답게 떠다니는 그림 뒤로, 문닫으며 들려왔던 아이의 울음 소리가 메아리 쳤다. 영화가 너무 텅텅 비어 아이의 울음 소리가 그 속을 채우는 것 같았다. 남자가 도서관 앞에서 클락션을 울렸을 때, 영화가 옛날 무성영화의 분위기만 따온 게 아니라 옛날 영화구나 했다. 저 남자배우가 나오면 그 어떤 영화도 노트북이 되나? 저 여자는 성공하겠지, 그리고 둘은 다리들고 키스하며 끝나는 걸까, 훗?
5년 후에 클럽을 들어간 여자 앞으로 흘러가는 장면이 그래서 내 뒷통수를 쳤다. 감독은 누가봐도 작위적인 로망 위에 사람들을 띄워놓고 오래지 않아 그 구름을 걷어 바닥으로 추락시켰다. 너 지금 떠있어, 즐겁지? 왜 즐겁지? 이게 비현실적이어서 그런 거 아니야? 자, 이제 내가 그 현실을 보여주지! 하고 내 현실의 무게에 중력가속도를 곱해 나를 땅위로 메쳤다. 난 사실 즐겁지도 않았는데, 현실보다 살짝 위로 올라가자마자 땅으로 곤두박질 쳤다.
땅에 쳐박힌 채로, 영화의 힘이 아파왔다. 그래, 이거지, 이거 위플래시 감독이지. 위플래시는 사람을 있는대로 궁지에 몰아넣었다가 마지막에 힘을 풀며 깃털처럼 날려보내더니 이건 정반대다. 공주안기로 둥둥 띄워주더니 하늘로 던졌다가 땅에 매다꽂는. 그나마 다행(?)인 걸까, 깃털처럼 띄워줬으나 욕나오던 위플래시와 반대로, 뒷통수를 갈겼으나 라라랜드는 기분이 차라리 나아지는 영화였다.
역설적이게도 이 영화는 내가 땅에 쳐박힌 힘보다는 내가 지고 있는 현실의 무게가 낫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다른 로맨스 영화를 보면 로맨스에 빠져 그저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는 영화는 끝나고 어차피 늘 내 것이었던 현실을 마주하면 그 행복했던 시간의 제곱만큼 불행해지는 것 같다. 예쁜 옷과 웃음이 오가는 대화와 서로를 구원하는 사랑이 완성된 것 같은 그림을 뒤집으면 어딘가 아이의 토가 묻은 늘어진 옷과 아이의 울음과 벽말고는 대화가 안되는 삶은 그 어느 때 내가 사랑이라 믿었던 것의 허무한 결말이다. 영화보기 전에는 그저 현실이었는데 영화를 보고 나면 현실은 늪이 되어 즐거움을 잡아먹는다.
한창 모유수유로 피폐한 삶을 살던 친구와 모교에 가서 학내 카페에 앉아있는데, 친구가 좀비같은 눈을 하고 그랬다, '그래봤자 니네 십년 후엔 젖소다... 경제학 전공한 젖소,...경영학 전공한 젖소..'. 그 친구도 나도 영화처럼 그런 로맨스 속에 설렜던 적이 있는데, 그 땐 끝이 Happily ever after 일줄 알았는데. 지금 나는 로맨스 영화를 이해할 줄 아는 젖소가 되어 재미없는 비로맨스 스토리를 살고 있는 거다. 무엇을 해도 아이의 울음소리 환청을 매달고 죄책감에 시달리며 영화를 보러온 엄마의 이야기는 누구도 읽지 않을 재미없는 이야기지만, 나는 살 수 밖에 없는, 지고 갈 수 밖에 없는, 무겁고도 무거운 나의 진짜 삶인 거다.
라라랜드가 포착하고 있는 이야기는 일견 미아의 드림컴트루 인 것 같다. 하지만 그랬다면 미아의 성같은 집과 아이가 나오고, 세바스찬은 시네마천국처럼 예쁜 과거로 회상되고 끝나면 그만일 것이다. 반대로 영화는 집요하게 세바스찬의 표정과 손길을 따라가다가 결국 그들이 꿈꾸었을 이야기까지 묘사한다. 세바스찬과 미아는 키스하고, 세바스찬은 미아의 연극 초연을 놓치지 않으며, 그들은 함께 파리로 가서 성공을 하고 돌아와 피아노 연주를 듣고 있는 미아의 곁에 앉아 이윽고 둘은 키스한다. 하지만 영화는 장면이 바뀌고 몽상의 세계(lala land)에서 돌아와 피아노를 치는 세바스찬과 그를 보고 있는 미아와 미아의 남편을 비춘다. 현실의 삶은 로망을 잃은 삶인가? 그럼 사랑을 잃고 새로운 사랑을 찾지 못한 세바스찬의 삶은, 희망이 남지 않은 삶인가?
미아는 웃으며 인사를 하고 나가고, 세바스찬은 새 곡을 연주한다. 그들의 사랑은 끝났지만 그들의 삶은 끝나지 않고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모양새다. 각자, 로맨스일지 아닐지 모르는 어떤 이야기를. 비록 영화는 조명하지 않을 재미없는 이야기지만, 그들 각자의 삶은 happy일지 알 수 없으나 ever after 하고 있다. 그건 꼭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내 삶의 로맨스 영화는 끝났지만 내 삶은 끝나지 않았다고. 내 삶에서 새로 시작하는 연주가 매일 같은 곡을 연주하는 지루함의 연속인 것 같지만 내일은 또 피아노가 그 다음날에는 섹소폰이 자기주장을 하면서 brand new인 곡을 연주하게 될 거라고. 그것은 그 누구도 겪지 않은 나 자신만의 이야기라고.
나는 아직도 내 삶의 이야기가 어떻게 변주될지 몰라 두근거리며 오늘의 삶을 열심히 살아볼 필요가 있는 거라고.
2016년의 언젠가.
돌 전 아기 육아의 한복판에서 라라랜드의 리뷰인지 육아일기인지 모르게 썼던 글을 퇴고 후 브런치에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