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브런치스토리에 첫 댓이 달렸다. 반짝이는 알림버튼을 클릭해서 댓이 왔다는 사실을 보고 한달음에 달려가(지는 않았지만) 첫 댓을 맞이했다. 안타깝게도 그 댓에는 내 글을 읽었다는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의례히 건네는 '좋은 글 읽었습니다'와 함께 '제 블로그도 방문해주세요' 같은 문장으로 홍보성 댓의 내음을 성급하게 풍기고 있었다.
이전의 ㄴㅇㅂ에서 있을 때도 흔하게 보아왔던 댓이다. 신기하게도 뭔가를 청소하시는 분들이 만든 홍보성 블로그에서 많이들 오셨더랬다. 브런치스토리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분들은 자신들이 어디에 댓을 달았는지 잊었고, 내가 답방을 가지 않아도, 대댓을 달지 않아도, 이내 다시 와서 같은 댓을 달았다. 댓글의 내용도 어쩜 짜맞춰 오시는지 '답방'이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어서, 차단하고는 '답방' 단어에 자동필터링을 걸어두면 한동안은 블로그가 홍보에 청정지역이 되곤 했다.
꼭 답방을 요구하는 홍보성 댓이 아니어도, '맘찍'이라 불리는 '좋아요'를 누르는 블로거도 홍보용 블로그 천지였다. 그들은 대부분 답방요구는 커녕 댓을 달지도 않았지만 난 홍보용 댓글이나 홍보용 블로그의 맘찍 모두가 괴로웠다. 어차피 그들도 대단히 상대를 기분 나쁘게 하는 것이 아닌데 댓과 맘찍에 불쾌까지 할 일이냐, 반문하실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그게 불쾌했다. 아무도 글을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글이 명작이라서, 글에 감명받지 않는 당신들은 불쌍해요, 같은 감성은 아니다. 잘생긴이모가다시보게되는게다시그때처럼안잘생기게엄마보면느껴질수도있는거임? 잘 쓴 글이지만 취향에 따라 못 쓴 글로 보일 수 있다는 자만심도 아니다. 나는 내 글의 못난 점을 너무도 잘 안다.
내 글에는 비겁함이 묻어있다. 겁나는 게 많아서 이리저리 피하느라 요점을 잡지 못하는 게 보인다. 내 글에 누가 꼬투리도 못잡겠지만 읽는 이들에게 주제를 잡기도 명확하지 않은 글인 걸 안다. 나는 소설가지망생인데, 소설은 더 심하게 보인다. 내가 관심이 있고 잘 알고 있는 주제로 가기 위해서는 어떤 역린을 건드려야만 하는데, 나는 그것을 건드리기 싫어 글을 비비 꼬고 은유하느라 중언부언한다.
또, 내 글에는 논리가 부족하다. 평소 사유하는 방식이 직관적이라서 그렇다. 그걸 풀어내고 정리하고 다시 쓰는 와중에 계속 객관적으로 글을 다시 보려고 노력하지만 몇 번을 고쳐써도 부족한 고리가 보이는 글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 곳에 올리는 글도 아니고, 돈을 받고 쓰는 글도 아니지만 그런 글을 올릴 때 마음 속으로 울면서 올린다. 그 글을 쓰느라 몇 주를 고생했기 때문에 안 올리기는 싫어서.
단 한 가지 장점이랄까, 내가 내 글을 좋아하는 이유는 글에 진심을 담기 때문이다. 내 삶의 경험에서 사골처럼 우려낸 사유들이다. 그 생각의 단편들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수 있다, 글을 못 써서. 그렇다면 오해가 담긴 댓도 좋다. 읽는 분들에게는 저렇게 전달되는구나, 알고 고칠 수 있으니까. 제대로 뜻을 파악해주시면 감사하다. 나도 어렵게 골조를 잡았으니까. 삶의 글이라는 건 다른 사람과 필연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고, 그것이 내가 글을 (어렵더라도) 쓰는 이유기에, 그 다름을 알아보는 댓은 너무 소중하다. 그렇기에 나도 다른 사람의 글에서 그 사람의 (남들과는 다른) 삶의 모습을 찾으려 하는 것이다.
부산의 몽돌해변에 가면 오는 파도를 온몸으로 받아낸 동그란 돌들이 모여있다. 어떤 돌은 거멓고 허연줄이 교차하며 작은 몸에 지층을 담고 있다. 어떤 돌은 그저 회색과 갈색의 농담차이만 있다. 어떤 것은 돌들 사이에 묻혀있지만 깨진 사이다병이나 콜라병이 파도에 굴러 모서리가 뭉특해진 것들이다. 대단히 특징적이지 않아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모두가 다른 모양과 다른 색을 가지고 있다. 저마다의 역사와 저마다 잃은 것들과 남은 것들의 다양함을 가진다. 아마 비슷한 모양과 색을 가졌어도, 그들의 시작은 다른 크기와 모양과 재질이었을지 모른다. 파도라는 삶의 경험이 선사하는 고통이 그런 의미가 있다. 돌들을 들고 그들이 잃었을 먼 과거의 영광(?)과 오랜 고통이 준 지금의 영광을 생각한다. 그것이 나의 존중이다.
홍보용 댓과 홍보용 맘찍은 나를 돌멩이17이라고 이름짓는다. 내 글이 가진 내 삶과 경험의 다름은 삭제되어 버리고 그저 16번에 이어 자신의 블로그를, 혹은 자신의 사업을 홍보할 수 있는 무수한 타자 중 하나로 물화하는 것이다. 내 돌멩이는 다르요, 16과는 다른 모양이요, 하고 아무리 항변해도 그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글 자체를 읽지 않기 때문이다. 글을 올리면 보통 1분, 2분 안에 좋아요가 눌린다. 그 글의 내용은 아무리 생각해도 1, 2분으로 읽을 수 있는 길이가 아니다. 그러면 그 맘찍은 '내 잠재구독자 17번이 글을 올린 게 좋아요' 구나, 싶다. '맘찍해서 내 블로그 이름을 저 글에 남길 수 있으니 좋아요'인 것이다. 그 글을 잠재구독자 18번이 올렸든, 19번이 올렸든, 25907번이 올렸든 무슨 상관이랴.
나는 돌멩이17번이 아니다. 나는 잠재구독자17번이 아니다. 나는 당신의 블로그에 방문하여 당신의 17번째 팬이 될 무수한 소모품 중 하나가 아니다. 내겐 나만의 이름이 있다. 내 정체(?)가 의심스러워 쉽게 댓을 달지 않으셔도 좋다. 글의 의미를 알 수 없어 좋아요를 누르지 않으셔도 된다. 그저 와서 내 글을 읽어주신 것만으로 나는 감사하다. 다만 글을 읽지도 않고 방문해달라고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그 속에 담겨있는 나의 의미가 너무 작고 보잘 것 없는 것만 보인다. 그 속에 담긴 네가 너무 많아서, 나는 오히려 꺼려지고 우울해진다.
댓을 다신 분의 블로그를 안 들어가려다 들어가서 읽어보고는 깜짝 놀랐다. 글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뭔가를 청소하시는 분의 홍보용 블로그는 커녕 무언가를 보고 생각하고 아름답게 풀어내시는 분이었다. 그래서 더 괴로웠다. 이렇게 예쁘게 세상을 보시는 분이 다른 사람은 물건으로 보시나, 싶어서. 그래도 답방도 하고 답댓도 달았다. 예쁜 글을 쓰시네요, 하고. 그런데 그 댓에 서둘러 대댓이 달렸다, '구독해주세요.' 뭐가 그리 급했을까. 구독자 하나가 뭐가 그리 아쉬우셨을까. 나보다 훨씬, 정말 훠얼씬 구독자 수도 많으시던데. 글 하나에 댓글이 수십개씩 달리시던데. 그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글을 세세히 읽고 반응을 남겨주는데.
아마도 이 글도 소모품의 세상에 울리는 무수한 열일곱번째, 열여덟번째 '가용기회' 신호 중 하나로 남겠지만 구독자17은 오늘도 항변해본다. 성공과 실패로 점철된 세상에서, 성공을 위해 주변을 물화하고 달려나가기 바쁜 생각은 쉽게 눈에 띈다. 무수한 글들을 실패의 늪에서 건져내어 그 글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선, 자신도 다른이의 가치를 -적어도 다름을- 알아봐주었으면 좋겠다.
2025.3.31
슬프다